윤여동설 - 고구려는 왜 백제(大陸百濟)를 백잔(百殘)이라 불렀을까? - 최초주장 광개토대왕 비문 영락 6년 병신년 조를 보면, "百殘新羅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倦)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OO新羅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이라고 새겨져 있다. ☆ 위 기사 중 괄호 속의 글자는 원래 倦(게으를 권)자였으나 지금까지 이 글자가 글자 모양이 비슷한 倭(왜)자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신묘년 기사의 해석을 놓고 한·일 간에 논란이 많았는데, 사실 이 조문은 왜와는 아무 관련도 없다. 압록강 너머 집안에 있는 호태왕 비는 413년 10월에 광개토대왕이 죽자 아들인 장수왕이 그 다음해인 414년 갑인년 9월 29일에 아버지인 광개토대왕 평생의 훈적을 새겨 능 앞에 세운 훈적비로서 당시 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