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해주몽 3

윤여동설 – 주몽에게는 아들 유리와 졸본부여 둘째공주와의 사이에서 낳은 또 하나의 딸이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주몽에게는 아들 유리와 졸본부여 둘째공주와의 사이에서 낳은 또 하나의 딸이 있었다 - 최초주장 [고구려의 첫 도읍 졸본으로 비정되는 지금의 하북성 적성현 후성진의 풍광]     고구려의 왕위계승이 중간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그 단서를 여러 사서들의 기록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후한서 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에는 다섯 부족이 있는데, 소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계루부이다. 본래는 소노부에서 왕이 되었으나 점점 미약해진 뒤에는 계루부에서 왕위를 대신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고구려전에도, “고구려에는 본래 다섯 부족이 있는데, 연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계루부이다. 원래 연노부에서 왕이 되었으나 점점 미약해져 지금은 계루부에서 대신한다..........연..

카테고리 없음 2021.01.17

윤여동설 - 부여씨와 해씨, 고씨의 패권경쟁이 곧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부여씨와 해씨, 고씨의 패권경쟁이 곧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 - 최초주장 부여는 원래 단군왕검의 넷째아들 부여에게 주어진 영지로부터 유래했으므로 국호를 부여라 했고, 고조선의 서쪽지역에 위치했다. 원래 부여왕실의 성씨는 부여씨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세월이 흐르자 부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게 된다. 그리하여 해씨인 해모수가 부여의 왕위를 찬탈하게 되자 그에 반발한 부여씨 동명왕이 다시 왕위를 제자리로 돌려놓게 되고, 패한 해씨들은 북쪽으로 도망쳐 예를 밀어내고 다시 나라를 세우게 되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동부여라 한다. ☆ 동부여에게 그 땅을 빼앗긴 예는 동쪽으로 이동하여 임둔을 밀어내고 다시 그 땅에 예(동예)를 건설하는데, 이때 밀려난 임둔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혹시 이들이 베링..

카테고리 없음 2015.12.04

윤여동설 - 추모왕(주몽왕) 탄생설화와 고구려 건국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추모왕(주몽왕) 탄생설화와 고구려 건국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를 보면 주몽을 추모(鄒牟) 또는 중해(衆解)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가장 정확할 것으로 여겨지는 호태왕 비문에도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추모왕(鄒牟王)"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왕의 시호는 동명성왕이 아니라 추모왕이었음에 틀림없다. ☆ 삼국사기에는 주몽을 동명성왕이라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서 졸본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과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추모왕을 혼동한 결과이다. 이는 당시의 기록인 국강상광개토경 평안호태왕 비문에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동명성왕이라 기록하지 않고 추모왕이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또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

카테고리 없음 2009.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