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蒼海郡 3

윤여동설 - 예(濊)와 동예(東濊)의 위치가 서로 다른 것을 몰랐던 김부식과 삼국사기 찬자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예(濊)와 동예(東濊)의 위치가 서로 다른 것을 몰랐던 김부식과 삼국사기 찬자들 - 최초주장 삼국사기 권제35잡지 제4명주(溟州) 조를 보면, “명주는 본래 고구려의 하서량(하슬라라고도 한다)이었는데, 후에 신라에 속하였다. 가탐의 고금군국지에 이르기를, ‘지금 신라의 북쪽 경계에 있는 명주는 대개 예(濊)의 옛 땅’이라 하였으니 이전 사서에 ‘부여를 예의 땅’이라고 한 것은 잘못인 듯하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삼국사기 찬자들은 부여(동부여)가 예의 땅을 차지했다는 후한서 부여국전이나 삼국지 부여전의 기록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했는데, 이로 미루어보면 김부식과 삼국사기 찬자들은 예와 동예의 위치변동에 대하여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는 예가 원래부터 신라의 북쪽 명주 일원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카테고리 없음 2019.02.10

윤여동설 - 삼국시대 예(濊, 동예)와 맥(貊)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삼국시대 예(濊, 동예)와 맥(貊)의 위치 - 최초공개 창해군(滄海郡, 蒼海郡) 고지(옛 땅)를 새로 찾고보니 예(濊, 동예)와 맥(貊)의 위치를 확실하게 비정할 수 있게 되었다. ☆ 후한서 고구려전을 보면, " 구려는 일명 맥(貊)이라 한다. 별종으로서 소수(小水: 소요수)에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에 소수맥(小水貊)이라 한다. 좋은 활이 생산되는데 소위 맥궁(貊弓)이라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의 맥의 위치에서 소요수 부근으로 이주해간 맥족을 말하는 듯하다. 구려는 원래 소요수 부근에 살던 소수맥의 나라였다가 북부여, 졸본부여에 통합되었고, 부여(夫餘)는 북부여, 졸본부여 그리고 동부여로 나누어졌다. 졸본부여(卒本夫餘)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나왔고, 동부여(東夫餘)는 북부여에서 북쪽..

카테고리 없음 2017.10.27

윤여동설 - 원래의 창해군 예(蒼海郡, 滄海郡 ,濊)와 이동 후 동예(東濊)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창해군 예(蒼海郡, 滄海郡, 濊)와 이동 후 동예(東濊)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후한서 예(濊) 전을 보면, “예(濊)는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옥저, 남쪽으로는 진한과 접했고, 동쪽은 대해에 닿았으며, 서쪽은 낙랑까지이다. 예, 옥저, 고구려는 본래 모두 조선(고조선) 땅이었다. 원삭 원년(B.C.128) 예군(濊君) 남려(南閭) 등이 우거(위만조선 3대왕)를 배반하고 28만구를 이끌고 요동(요동군)으로 내속하였으므로 (전한) 무제는 그 땅을 창해군(蒼海郡)으로 만들었다가 수년 후에 폐했다. ☆ 이때 예(濊)가 전해지지 않은 어떤 이유로 위만조선과 갈등을 빚어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 전한(前漢)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갔다는 말이고, 그 후에도 위만조선이 임둔국, 진번국 등 영향권 안에 있던 나라..

카테고리 없음 2017.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