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계백장군 4

윤여동설 - 황산벌전투와 계백장군

윤여동설 - 황산벌전투와 계백장군 [한반도 충남 논산시 부적면에 조성되어 있는 가짜 백제 계백장군묘] 백제장군 계백에 대하여 전해진 기록은 삼국사기 계백열전(삼국사기 권제47 열전 제7)의, 『계백은 백제 사람인데, 벼슬이 달솔(백제 16관품 중 2품)에 이르렀다. 당 현경5년 경신년(A.D.660)에 (당) 고종이 소정방으로 신구도대총관을 삼아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신라와 함께 백제를 쳤다. 이때에 계백이 장군이 되어 결사대 5천명을 뽑아서 이를 방어하게 되었는데, 그가 말하기를 “한 개 나라로서 당나라, 신라의 대병과 마주하게 되었으니 나라의 존망을 가늠할 수 없다. 나의 처자가 사로잡혀 노비가 될까 염려되니 살아서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 결연히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고는 드디어 자기의 처자..

카테고리 없음 2011.07.20

윤여동설 - 백제의 탄현(炭峴)과 황산(黃山)을 찾았다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탄현(炭峴)과 황산(黃山)을 찾았다 - 최초주장 “.............당나라군과 신라군이 이미 백강(白江)과 탄현(炭峴)을 지났다는 소식을 듣고 장군 계백(階伯)으로 하여금 결사대 5천을 거느리고 황산(黃山)으로 나가서 신라군과 싸우도록 했는데, 네 번 싸워서 모두 이겼으나 군사가 적고 힘이 모자라 결국은 패하고 계백이 죽음을 당했다” 위 기록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20년(A.D.660) 조의 황산벌 전투에 관한 기록으로서 이때 신라군은 5만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백제가 멸망한지 1,3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전쟁기록 속에 나타나는 탄현과 황산을 정확히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탄현과 황산을 찾는다고 뛰어들게 되어 각각..

카테고리 없음 2010.11.01

윤여동설 -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는 발해 북쪽, 북경 동쪽 하북성 당산시 난주(난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는 발해 북쪽, 북경 동쪽 하북성 당산시 난주(난현) - 최초주장     백제26대 성왕은 서기 538년 봄에 이르러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는 국호까지도 남부여(南扶餘)로 바꾼다.  따라서 엄격한 의미에서는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537년까지로 끝나고, 538년부터는 남부여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인데, "남부여"라는 국호는 "옛 졸본부여의 영광을 남쪽 땅에 재현하겠다"는 명분을 세워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길 때만 잠깐 언급했을 뿐 실제 국호로 사용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백제의 성왕은 왜 이때에 이르러 사비로 도읍을 옮겨야 했던 것일까?   학자들은 그 이유를 백제가 고구려의 압박 때문에 도읍인 웅진이 위험하다고 보고 더 남쪽으로 도읍을 옮겼을 것이라고 추정..

카테고리 없음 2008.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