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고구려 평양성 5

윤여동설 - 수 양제 고구려 침공 때의 좌12군, 우12군의 행군로는?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수 양제 고구려 침공 때의 좌12군, 우12군의 행군로는? - 최초공개 수 양제는 611년 2월 조서를 내려 고구려 침공을 공식화 하고, 군사를 탁군(涿郡)으로 모이도록 발표한 후, 자신도 도읍인 장안을 떠나 4월에 탁군의 임삭궁에 도착한다. 그리고는 전쟁 준비를 완벽하게 한 후 612년 정월에 이르러 군사들을 탁군에서 출발 시키게 되는데, 총 군사의 수효는 1,133,800명으로서 출발에만 40일이 소요되었고, 늘어선 군사들의 깃발이 960리에 이르렀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소위 말하는 수 양제 고구려 2차 침공이다. 이때 수 양제는 고구려 침공에 총 24군(여기에서의 한 개 군이 정확히 몇 명으로 구성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을 동원하였는데, 좌12군, 우12군으로 나누..

카테고리 없음 2010.04.11

윤여동설 - 고구려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 고구려와 낙랑의 접촉 기록은 3대 대무신왕 15년(A.D.32) 4월 조에, 낙랑왕 최리가 언급되고,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면서 시작되는데, 사실은 서기 30년에 이미 낙랑동부도위 땅을 고구려가 빼앗았던 듯하다. 그리고 대무신왕 20년(A.D.37) 조에, "왕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는 기록이 나타나고 다시 27년(A.D.44) 조에, "가을 9월 한나라(후한) 광무제가 군사를 보내 바다를 건너와 낙랑을 치고 그 지역을 빼앗아 군현을 만드니 살수 이남이 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라는 기록이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기록의 의미를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낙랑..

카테고리 없음 2009.02.18

윤여동설 - 고구려의 황성(黃城)과 장안성(長安城)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의 황성(黃城)과 장안성(長安城)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공개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부근의 지형도인데, 이 부근이 고조선의 왕검성, 고구려의 평양성, 황성, 장안성 그리고 고려의 서경으로 비정되는 곳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중심 강역은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쪽 북경 동쪽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이었고, 난하가 옛 패수이다.   백제는 대륙인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하북성 난하 부근에서 13대 근초고왕과 12대 계왕의 아들이었던 무광왕이 왕위다툼을 벌이다가, 패한 무광왕이 서기 365년경 한반도로 건너와 지모밀지에 도읍하고 다시 백제(반도백제)를 건국함으로써 한반도에 백제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고,   대륙백제는 근초고왕의 후손들이 왕위를 이어..

카테고리 없음 2008.02.03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비밀을 밝혀줄 고려도경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비밀을 밝혀줄 고려도경 - 최초공개 [이글은 윤여동 밝힘 "고려와 조선 역사의 특급비밀" 책에서 발췌한 것임] 송나라 휘종 때 사람인 서긍이 서기 1123년 사신 일행으로 고려에 왔다가 돌아가서 쓴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의 위치에 대하여, “고려는 남쪽은 요해, 서쪽은 요수까지이고, 북쪽(사실은 서북쪽)은 거란 옛 땅, 동쪽(사실은 동북쪽)은 금나라와 접했다. 그리고 일본, 유구, 담라, 흑수, 모인 등의 나라와 개의 이빨과 같이 서로 맞물려 있다. 신라와 백제가 자신들의 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병합이 되었으니 현재의 나주와 광주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고려는 우리 송나라 수도(당시 송나라의 도읍은 개봉이었다)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산도에서 육로를 거치..

카테고리 없음 2007.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