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내몽골 정람기 4

윤여동설 - 부여(동부여)의 녹산(鹿山)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부여(동부여)의 녹산(鹿山)을 찾았다 - 최초공개 부여(동부여)가 녹산(鹿山)이라는 산 일원에 위치했음은 사서의 기록으로 전해져 알려졌다. 그리하여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동부여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하여 기록 속의 녹산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 이르러 이름만 전해진 그 녹산을 어찌 쉽게 찾을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많은 사람들은 동부여가 위치한 적도 없는 엉뚱한 한반도의 백두산 북쪽에서 동부여를 찾으려 했고, 녹산을 찾으려 했으니 아무도 찾아낼 수가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필자는 일찌감치 우리의 삼국과 가야가 한반도가 아닌 지금의 발해 북쪽 북경 부근에서 건국되었다가 멸망했음을 파악하고 있었고, 따라서 동부여 역시 한반도 북쪽이 아닌 북..

카테고리 없음 2017.09.01

윤여동설 - 고구려 대무신왕의 동부여 침공로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대무신왕의 동부여 침공로 - 최초공개 [독석구에 있는 옛 장성인데, 중국에서는 명대에 쌓은 장성이라 한다. 그러나 필자는 옛날 고구려 때 북방 유목민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쌓은 장성의 흔적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고구려 대무신왕과 동부여 대소왕의 악연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그를 보면, 유리왕 28년(A.D.9) 가을8월 동부여 대소왕이 사신을 보내어 왕을 책망하며 동부여를 상국으로 모실 것을 강요하자, 왕의 아들인 무휼(후일의 대무신왕)이 누란(累卵)을 이야기 하다. 유리왕 32년(A.D.13) 겨울11월 동부여가 고구려를 침공하자 무휼(후일의 대무신왕)이 군사를 숨겨 놓았다가 동부여 군사들이 학반령에 이르자 급습하여 전멸시킨다. 대무신왕 3..

카테고리 없음 2015.03.22

윤여동자료실 - 중국학자들이 말하는 금 항주성(恒州城)터와 원 상도성(上都城)터 구경

윤여동자료실 - 중국학자들이 말하는 금 항주성(恒州城)터와 원 상도성(上都城)터 구경 [위 : 중국에서 금 항주성터라고 하고 있는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 고성터이다. 항주성이라 하기전에는 "시랑성(侍郞城)" 이라고 불렀었다고 한다.] [위 : 지금 중국학자들이 원 상도성터라고 하는 내몽골 정람기부근의 고성터] 송사 몽고열전에는 “유병충(劉秉忠)을 시켜 환주(桓州) 동쪽 난수(灤水) 북쪽 용강에 성곽을 쌓고 '개평(開平)'이라 하였다가 (원) 상도(上都)라고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의 난하 상류 섬전하 강가인 정람기 부근에 중국 학자들이 원 상도유지라고 하는 큰 성터가 있다. 과연 이곳이 진짜 원 상도였을까?

카테고리 없음 2010.11.26

윤여동설 - 동부여는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동부여는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위 : 내몽골 정람기 동북쪽에 위치한 대형고성터. 지금 중국에서 원 상도유지라고 하고 있으나 사실 이곳은 옛 예성(濊城)이었을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위 : 내몽골 정람기에 위치한 고성터로서 지금 사랑성(四郞城)이라 부르고 있다]    부여는 아주 오래된 나라의 이름이다.  옛날 고조선의 건국시조 단군 왕검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장자는 부루, 둘째는 부소, 셋째는 부우, 막내는 부여(夫餘, 扶餘)였는데, 단군왕검이 왕검성의 서쪽지역을 부여에게 영지로 내려주게 되어 나라 이름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부여는 고조선이 멸망하자 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북부여는 고구려 왕실에 혈통..

카테고리 없음 2008.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