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도산 3

윤여동설 - 백제의 초기강역은 지금의 하북성 도산(都山)을 중심으로 난하 동쪽, 청룡하 서쪽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초기강역은 지금의 하북성 도산(都山)을 중심으로 난하 동쪽, 청룡하 서쪽이었다 - 최초주장     백제의 건국지는 한산(漢山) 부근이었다.   처음에 비류와 온조 그리고 신하들이 한산(漢山) 부아악(負兒嶽)에 올라 도읍할 장소를 물색했는데, 신하들이 한수(漢水) 남쪽에 도읍할 것을 건의했으나 비류는 그곳을 마다하고 미추홀(弥鄒忽)로 갔고, 온조는 신하들이 건의한 한산 부근의 위례성(慰禮城)에 도읍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그를 알 수 있다.   [부아악(負兒嶽) : 어린아이를 업고 있는 형상의 산이라는 의미]   그런데 온조왕 2년(B.C.17) 조를 보면, “봄 정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말갈이 우리 북부 국경에 이어져 있고 그곳 사람들이 용기가 있고 거짓이 많으니 의당 병기..

카테고리 없음 2018.06.15

윤여동설 - 고구려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 고구려와 낙랑의 접촉 기록은 3대 대무신왕 15년(A.D.32) 4월 조에, 낙랑왕 최리가 언급되고,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면서 시작되는데, 사실은 서기 30년에 이미 낙랑동부도위 땅을 고구려가 빼앗았던 듯하다. 그리고 대무신왕 20년(A.D.37) 조에, "왕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는 기록이 나타나고 다시 27년(A.D.44) 조에, "가을 9월 한나라(후한) 광무제가 군사를 보내 바다를 건너와 낙랑을 치고 그 지역을 빼앗아 군현을 만드니 살수 이남이 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라는 기록이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기록의 의미를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낙랑..

카테고리 없음 2009.02.18

윤여동설 - 근초고왕이 옮긴 백제의 도읍 한성(漢城)은 진황도 도산남쪽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근초고왕이 옮긴 백제의 도읍 한성(漢城)은 진황도 도산남쪽 - 최초공개 -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26년(A.D.371) 조를 보면, "고구려가 군사를 동원하여 침공해 왔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패하가에 군사를 숨겨놓고 기다리다가 그들이 도착하자 급히 치니 고구려 군사가 패배하였다. 겨울에 왕이 태자와 함께 정병 3만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침입하여 평양성을 공격하니 고구려왕 사유(고국원왕)가 힘을 다하여 항전하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으니,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왔다.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移都漢山)"라고 기록하고 있어 이때 백제가 도읍을 "한산"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것을 알게 한다. ☆ 그런데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백제가 신미년(A.D.371)에 도읍을 "한산(漢山)"이 아닌 "북한..

카테고리 없음 2008.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