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민중왕 3

윤여동설 - 고구려 민중왕의 능이 조성된 석굴은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민중왕의 능이 조성된 석굴은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주장          [하북성 적성현 양전향에 있는 백운산 구련동] [북경 서북쪽 연경 고애거]    민중왕은 고구려 제4대 왕이다.   3대 대무신왕이 서기 44년 10월에 41세의 나이로 죽고, 대무신왕의 아들로서 태자로 봉해져 있던 해우[해애루라고도 한다. 5대 모본왕]가 너무 어려 정사를 처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태자의 숙부였던 해색주가 대신 왕위에 올랐는데 이가 곧 민중왕이다.   그 형인 대무신왕이 41세에 죽었으므로 민중왕이 왕위에 오를 때 그의 나이는 약 35-40세 쯤이 되었을 것인데, 재위 5년인 서기 48년에 죽었다.   대무신왕이나 민중왕 모두 40대 초반에 죽었으니 형제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고 만 것이다...

카테고리 없음 2010.09.26

윤여동설 - 해(解)씨와 고(高)씨 두 성씨로 이어진 고구려왕들의 원래 성씨와 이름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해(解)씨와 고(高)씨 두 성씨로 왕위가 이어진 고구려왕들의 원래 성씨와 이름 - 최초공개   시조 추모왕(鄒牟王) : 해추모(解鄒牟), 해주몽(解朱蒙), 해중해(解衆解)※ 호태왕 비문에 추모왕이라 기록되어 있어, 추모란 이름이 아니라 시호일 가능성도 있고, 삼국사기에는 주몽이 나라를 세워 국호를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따라서 고(高)씨로서 성씨를 삼았다고 했으나, 실제 초기 고구려 왕실의 성씨는 해모수의 성씨인 "해(解)"씨였고, 고(高)씨로 왕실의 성씨가 바뀐 것은 6대 태조대왕 때부터이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주몽의 시호를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 기록한 것은 졸본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과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추모왕을 혼동한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이름을 추몽(鄒蒙)이라고도 기록하고 있..

카테고리 없음 2008.08.25

윤여동설 - 태조대왕을 알면 고구려의 초기역사가 보인다(2)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태조대왕을 알면 고구려의 초기역사가 보인다(2) - 최초주장 고구려의 왕권교체 - 연노부(소노부)와 계루부 고구려 705년 역사에서 왕위 계승에 있어 성씨가 바뀐 시기로 추정해 볼 수 있는 때는 해씨인 모본왕에서 고씨인 태조대왕으로 왕위가 이어지는 시기 밖에는 없다. 따라서 모본왕 이전은 해씨였을 것이고, 태조대왕 이후는 고씨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삼국사기에도 5대 모본왕을 해우 또는 해애루로 기록하고 있고, 4대 민중왕을 해색주, 3대 대무신왕을 대해주류왕이라고도 한다라고 하여 그의 성명이 해주류였음을 확인해 볼 수 있고, 또 유리왕은 그 아버지 주몽의 원래 성씨가 해씨였으므로 그 아들인 유리왕 역시 해씨인 것이다. ☆ 주몽은 북부여의 건국시조 해모수의 고손자이므로 당연히 그의 원래 ..

카테고리 없음 2008.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