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반도백제 건국시조 무광왕 4

윤여동설 - 중국 사서들에 백제 건국시조로 기록되어 있는 “구태(仇台)”는 8대 고이왕의 할아버지였고, 반도백제 무광왕(武廣王)의 6대조였다 – 최초 주장

윤여동설 - 중국 사서들에 백제 건국시조로 기록되어 있는 “구태(仇台)”는 8대 고이왕의 할아버지였고, 반도백제 무광왕(武廣王)의 6대조였다 – 최초 주장      삼국사기 잡지 제1 제사 조를 보면, “책부원구에 이르기를 ‘백제는 연중 네 철의 중간 달마다 왕이 하늘과 5제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그 시조 구태(仇台)의 사당을 서울에 세우고 해마다 네 차례씩 제사를 지냈다’고 하였다”라고 중국 사서의 기록을 인용했으나 찜찜했던지 주를 달아 “해동고기에 의하면 혹은 시조 동명왕(東明王, 필자주 : 동명왕은 주몽이 아니라 사실은 졸본부여의 건국시조를 말하는 것이다)이라 하였고 혹은 시조 우태(優台)라 하였는데, 북사와 수서에는 모두 동명의 후손 구태(仇台)가 대방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하였고, 여기에는 ..

카테고리 없음 2024.10.19

윤여동설 – 반도백제(무광왕백제)의 도읍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전주(全州)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반도백제(무광왕백제)의 도읍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전주(全州) - 최초주장    왕건의 고려는 등주, 래주, 빈주, 체주와 마주보는 위치인 발해 북쪽 대륙에 위치했던 나라로서, 도읍 개경은 하북성 관성현(관성만족자치현)이었다.   그리고 견훤의 후백제 역시 한반도의 전북 전주(全州)에 도읍했던 나라가 아니라 발해 북쪽 대륙백제의 완산(전주)에 도읍했던 나라였다. 지금의 북경 동쪽 하북성 당산시가 고대 완산(전주)이었던 곳이다.  따라서 한반도에 왕건의 고려나 견훤의 후백제는 없었다.  그렇다면 한반도 전주에 후백제의 왕궁터가 있을 리 없고, 한반도에 견훤왕의 왕릉 역시 조성되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만약 한반도 전주에서 백제시대 왕궁터와 왕릉급 고분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무광왕의 반도백제 흔..

카테고리 없음 2023.10.28

윤여동설 – 반도백제의 도읍이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반도백제의 도읍이전 – 최초주장 지금 많은 사람들은 삼국사기 기록 속 백제의 흔적들을 한반도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백제의 첫 도읍 위례성(慰禮城)과 한성(漢城)을 한반도 서울 부근에서 찾고 있고, 남한성(南漢城)을 경기도 광주(廣州) 부근에서 찾고 있으며, 웅진(熊津)을 충남 공주라 하고, 마지막 도읍 사비(泗沘)를 충남 부여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이 전해지고 있고, 충남 공주에서 백제 무령왕릉이 발견되었으며, 부여에서 창왕명석조사리감과 창왕명사리기명문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서,“百濟 武廣王 遷都 枳慕蜜地 新營精舍 以貞觀..

카테고리 없음 2023.10.07

윤여동설 - 익산 쌍릉은 무광왕이 세운 반도백제의 왕과 왕후의 능일 가능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익산 쌍릉은 무광왕이 세운 반도백제의 왕과 왕후의 능일 가능성 - 최초주장 한반도 전북 익산시 석왕동에 가면 사적 제87호로 지정된 익산쌍릉이라는 유적지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발굴을 하였으나 이미 도굴된 상태로서 관의 장식 일부와 치아, 그리고 도기편 등만 일부 수습되어 아직까지 그 고총의 주인공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단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고총이 사서의 기록에 나타나는 고조선의 준왕(위만에게 왕검성을 빼앗기고 좌우근신을 이끌고 남하하여 금마(金馬)에 다시 한(韓)을 세우고 마한, 진한, 변한을 다스렸다고 전해진다)의 능이라고 하기도 하고, 백제 30대 무왕의 능이라고도 하는 등 주장들만 무성할 뿐 실제 그 고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아직 확실하게 모르고 있어 다시 재발굴을 하려고 ..

카테고리 없음 2017.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