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발해국 4

윤여동설 - 발해국이 “부여, 옥저, 변한, 조선 등 바다 북쪽에 있던 여러 나라의 땅을 거의 차지하였다”는 신당서의 기록은 역사적 사실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발해국이 “부여, 옥저, 변한, 조선 등 바다 북쪽에 있던 여러 나라의 땅을 거의 차지하였다”는 신당서의 기록은 역사적 사실일까? - 최초주장 신당서 발해전을 보면,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서 고구려에 부용되어 있었으며 성은 대씨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무리를 이끌고 읍루(挹婁)의 동모산(東牟山)을 차지하였다. 그 땅이 영주(營州)에서 동쪽으로 2천리에 있으며 남쪽은 신라와 닿아 니하(泥河)를 국경으로 삼았고, 동쪽은 바다에 닿았으며, 서쪽은 거란까지이다. ......(중략)............땅이 사방 5천리이며, 호구는 10여만이고, 승병은 수만명이다. 문자를 제법안다. 부여, 옥저, 변한(?), 조선 등 바다 북쪽에 있던 여러 나라의 땅을 거의 차지하였다. 중종 때에 시어사 장행급을 ..

카테고리 없음 2018.05.13

윤여동설 - 말갈 동쪽의 바다(대해)는 동해가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말갈 동쪽의 바다(대해)는 동해가 아니다 - 최초주장 [대흥안령 동쪽의 바다(대해) 흔적 : 지금은 수없이 많은 내륙의 호수들만 남아있다] 우선 말갈(숙신, 읍루, 물길)의 위치에 관한 사서들의 기록을 보면, “읍루는 옛 숙신국이다. 부여의 동북쪽 1천여리에 있는데, 동쪽은 대해(大海)에 닿고, 남쪽은 북옥저와 접했으며, 북쪽은 그 끝을 알 수 없다[후한서 읍루전]” “읍루는 부여의 동북쪽 1천여리에 있다. (동쪽은) 대해에 닿았으며, 남쪽은 북옥저와 접하였는데, 북쪽은 그 끝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삼국지 읍루전]” “숙신씨는 일명 읍루라고도 하는데 불함산 북쪽에 있다. 부여에서 60일쯤 가야하는 거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대해에 닿았고 서쪽으로는 구만한국과 접해 있으며, 북쪽 끝은 약수에까..

카테고리 없음 2015.05.30

윤여동설 - 발해국의 중심강역은 연해주가 아니라 대흥안령산맥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발해국의 중심강역은 연해주가 아니라 대흥안령산맥이었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 말갈 발해(발해국) 조를 보면, 통전(通典)에 이르기를, "발해(발해국)는 본래 속말말갈이다. 그 추장 조영(祚榮)에 이르러서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스스로 진단(震旦)이라고 했다. 선천 연간(현종의 임자년:712)에 비로소 말갈(靺鞨)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오로지 발해(渤海)라고 일컬었다. 개원 7년(己未:719)에 조영이 죽자, 그 시호를 고왕(高王)이라 했다. 세자가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명황은 그를 책봉하여 왕위를 잇게 했다. 사사로이 연호를 고치고 드디어 해동(海東)의 큰 나라가 되었다. 그 땅에는 5경(五京), 15부(十五府), 62주(六十二州)가 있었다. 후당 천성 초년에 거란(契丹)이 이곳을 쳐서 깨뜨렸..

카테고리 없음 2009.05.03

윤여동설 - 중국 사서들이 말해주는 발해국의 중심강역은 과연 어디인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중국 사서들이 말해주는 발해국의 중심 강역은 과연 어디인가? - 최초주장  신당서 북적전 발해(新唐書 北狄傳 渤海)   발해(渤海 : 발해국)는 본래 속말말갈(粟末靺鞨)로서 고(구)려에 부용 되어 있었으며, 성은 대(大)씨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무리를 이끌고 읍루(挹婁)의 동모산(東牟山)을 차지하였다.  그 땅이 영주(營州)에서 동쪽으로 2천리에 있으며, 남쪽은 신라와 닿아 이하(泥河)를 국경으로 삼고, 동쪽은 바다에 닿았고, 서쪽은 거란까지이다.  성곽을 쌓고 사니 고(구)려의 패잔병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만세 통천(A.D.696) 중에 거란의 이진충이 영주도독 조홰(조문홰?)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사리 걸걸중상(乞乞仲像)이라는 자가 말갈의 추장 걸사비우(乞四比羽) 및 고(구)..

카테고리 없음 2008.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