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오란찰포 4

윤여동설 - 내몽골 파림좌기는 요(거란) 상경임황부가 아니라 발해의 상경용천부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내몽골 파림좌기는 요(거란) 상경임황부가 아니라 발해의 상경용천부이다 - 최초주장 (위 : 파림좌기의 발해 상경용천부 터로서 중국에서는 이곳을 요 상경임황부 터라고 하고 있는데 거짓말이다) 요동(遼東)과 요서(遼西)라는 의미는 요수(遼水)를 중심으로 그 동쪽과 서쪽이라는 의미일 것인데, 거란족이 도읍을 임황(상경임황부가 된다)에 정하고는 국호를 “요(遼)”라고 하게 된다. 국호를 새로 정할 때 아무 인연도 없고, 역사, 지리적 관계도 없이 아무렇게나 정했을 리는 만무하고 거란족과 “요(遼)”가 무언가 특별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국호를 “요(遼)”라고 정했을 것인데, 사서들은 거란족이 "요택(遼澤)"에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조선(이씨조선을 말함)의 경우에도 처음에 국호를 정할 때 ..

카테고리 없음 2010.08.02

윤여동설 - "송막(松漠)"의 위치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송막(松漠)”의 위치를 밝힌다 - 최초공개        역사 연구를 하다보면 “송막(松漠)” 또는 “송막지간(松漠之間)”이라는 지명이 자주 언급된다.  특히 거란의 역사를 보면 어김없이 “송막지간(松漠之間)”이 언급되고, 고구려가 멸망한 직후인 서기 696년에 거란인 송막도독 이진충과 귀성주자사 손만영이 영주도독 조문홰를 죽이고 당나라에 반기를 들었다가 실패한 기록도 보인다.   또 남송의 홍호가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휘종과 흠종의 송환을 위해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어 냉산(冷山)이라는 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돌아와서 송막기문(松漠記聞)이라는 견문록을 써 송막이라는 지명이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는데, 그 송막 또는 송막지간이라는 곳이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카테고리 없음 2010.07.05

윤여동설 -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이 어디인지 아직까지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도 아닌 북연의 용성(화룡)을 찾으려 애쓰는 것은 그곳이 고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성(柳城)이고, 고구려 장수왕 때의 고구려 서쪽 경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용성의 위치를 찾으면 옛날 춘추전국시대에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하여 1천여리(2천여리라고도 한다)의 땅을 빼앗아 설치했다는 연5군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되어 고조선의 옛 땅이 어디까지였는지도 알 수 있어 우리의 고대역사 해석을 지금과는 전혀 새롭게 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고대역사에서 지금까지 확실하게 밝히지 못했던 잃어버린 고리 하나를 찾아 역사 복원에 한발 가까..

카테고리 없음 2010.06.14

윤여동설 - 근초고왕이 옮긴 백제의 도읍 한성(漢城)은 진황도 도산남쪽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근초고왕이 옮긴 백제의 도읍 한성(漢城)은 진황도 도산남쪽 - 최초공개 -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26년(A.D.371) 조를 보면, "고구려가 군사를 동원하여 침공해 왔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패하가에 군사를 숨겨놓고 기다리다가 그들이 도착하자 급히 치니 고구려 군사가 패배하였다. 겨울에 왕이 태자와 함께 정병 3만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침입하여 평양성을 공격하니 고구려왕 사유(고국원왕)가 힘을 다하여 항전하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으니,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왔다.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移都漢山)"라고 기록하고 있어 이때 백제가 도읍을 "한산"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것을 알게 한다. ☆ 그런데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백제가 신미년(A.D.371)에 도읍을 "한산(漢山)"이 아닌 "북한..

카테고리 없음 2008.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