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요서 4

윤여동설 - 고대 진수(秦水)와 고대 왜(倭)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대 진수(秦水)와 고대 왜(倭)의 위치 - 최초공개 후한서 권90 오환선비열전 제80 선비 전을 보면, “(희평6년:A.D.177)겨울에 선비가 요서지역을 침입하였다. 광화원년(A.D.178) 겨울에 또 (선비가) 주천을 침입하였다. 그로 인하여 변방의 피해가 막심하였다. (선비는) 종족의 무리가 나날이 많아져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고 수렵을 해도 먹을거리가 부족했다. 단석괴가 순행을 하다가 오후에 이르러 진수를 보았는데 넓이가 수백 리였고, 물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었다. 물속에 물고기가 있었으나 잡을 수가 없었다. 왜인들이 그물로 물고기를 잘 잡는다는 말을 듣고는, 동쪽의 왜인국을 공격하여 천여가를 잡아 이들을 진수로 이주시키고는 물고기를 잡아 양식에 보태도록 영을 내렸다(熹平六年)冬鮮卑..

카테고리 없음 2016.06.03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 때 쌓은 요서10성의 축성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 때 쌓은 요서10성의 축성 위치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2년(A.D.49) 조를 보면,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우북평이라고도 한다),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하였더니 요동태수 채동이 은의와 믿음으로 대하므로 다시 화친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그로부터 6년 뒤인 태조대왕 3년(A.D.55) 조를 보면, “봄2월에 요서에 10개 성을 쌓아 한나라 병사(한나라의 침공)에 대비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모본왕 때 북평(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했을 때 요동군과 요서군의 일부지역을 후한으로부터 빼앗았음을 알 수 있고, 태조대왕 때 이르러 그곳을 수비하기 위하여 요서지역에 10개의 성을 쌓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물론 이때 태조대왕은..

카테고리 없음 2012.06.10

윤여동설 - 비운의 고구려 고국원왕 - 드라마 근초고왕

윤여동설 - 비운의 고구려 고국원왕 - 드라마 근초고왕 고구려 16대 고국원왕의 이름은 쇠(釗 : 사유라고도 한다)이다. 정복군주 미천왕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태후 주씨이다. 서기 331년 봄2월에 미천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앞서 미천왕은 어릴 적 백부인 봉상왕이 돌고(미천왕의 아버지)를 역모로 몰아 죽이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당시 도읍인 평양성으로부터 옛 도읍인 졸본부근으로 도망쳐 신분을 숨기고 남의 집 머슴살이와 소금장사를 하고 있다가 국상 창조리가 봉상왕을 제거하고 추대하여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미천왕은 지리에도 밝았고 국제정세를 읽는 능력이 탁월했던 왕으로서 311년에 요동 서안평을 빼앗았고, 313년에는 낙랑군(후한 광무제가 살수 이남에 설치했던 낙랑군)을 빼앗았으며, 314..

카테고리 없음 2011.05.15

윤여동설 - 신라 법흥왕에게 시집간 백제 동성왕의 딸 보과공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법흥왕에게 시집간 백제 동성왕의 딸 보과공주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14년(A.D.553) 계유년 조를 보면, “겨울 10월에 왕이 백제 왕녀에게 장가들어 작은 왕비로 삼았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백제본기 성왕 31년(A.D.553) 조에도, “겨울 10월 왕의 딸이 신라에 시집을 갔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기록대로라면 이때 백제 성왕의 딸이 신라 진흥왕에게 시집갔다고 하는 셈인데, 사실 이때는 역사적으로 나제동맹이 깨어져 신라와 백제의 관계가 매우 악화되어 있을 때였으므로 어떻게 그러한 정치적인 상황과는 상관없이 백제의 성왕이 딸을 신라 진흥왕에게 시집보낼 수 있었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화랑세기 필사본에 의하여 신라로 시집간 백제공주가 26대 성왕의..

카테고리 없음 2009.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