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웅진구 4

윤여동설 -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는 발해 북쪽, 북경 동쪽 하북성 당산시 난주(난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는 발해 북쪽, 북경 동쪽 하북성 당산시 난주(난현) - 최초주장     백제26대 성왕은 서기 538년 봄에 이르러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는 국호까지도 남부여(南扶餘)로 바꾼다.  따라서 엄격한 의미에서는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537년까지로 끝나고, 538년부터는 남부여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인데, "남부여"라는 국호는 "옛 졸본부여의 영광을 남쪽 땅에 재현하겠다"는 명분을 세워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길 때만 잠깐 언급했을 뿐 실제 국호로 사용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백제의 성왕은 왜 이때에 이르러 사비로 도읍을 옮겨야 했던 것일까?   학자들은 그 이유를 백제가 고구려의 압박 때문에 도읍인 웅진이 위험하다고 보고 더 남쪽으로 도읍을 옮겼을 것이라고 추정..

카테고리 없음 2008.10.12

윤여동설 - 백제 문주왕이 옮긴 도읍 웅진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 노룡현을 말하는 것이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의 문주왕이 옮긴 도읍 웅진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 노룡현을 말하는 것이다 - 최초공개 [백제 웅진성의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는 노룡 영평부성도] [서문] [남문] [진황도 노룡현 영평부성터 내의 시가지(중앙)와 서쪽을 지나는 청룡하] 고구려의 장수왕은 475년(백제 21대 개로왕 21년)에 3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침공하여 도읍인 한성을 함락시키고 도망치는 개로왕을 잡아죽이게 된다. 그리하여 개로왕의 동복동생인 문주왕이 왕위에 올라 급히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는데, 우리는 이 백제의 도읍 웅진을 충남 공주라고 알고 있다. ☆ 삼국사기에는 문주왕을 개로왕의 아들이라 기록하고 있으나 사실은 개로왕의 동복동생이다. 개로왕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동생인 문주왕이 왕위를 이었다. 우..

카테고리 없음 2008.10.06

윤여동설 - 백제 방어의 요충 백강(白江)과 탄현(炭峴)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방어의 요충 백강(白江)과 탄현(炭峴)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서기 660년 백제가 멸망할 때의 기록인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20년 조를 보면, 『당 나라 고종이 조서를 내려 좌위대장군 소정방으로 신구도행군대총관을 삼아 좌위장군 유백영과 우무위장군 풍사귀와 좌효위장군 방효공 등과 더불어 군사 13만을 거느리고 백제로 와서 치게 하고 겸하여 신라왕 김춘추로서 우이도행군총관을 삼아 자기 나라 군사를 거느리고 당 나라 군사와 세력을 합하게 하였다. 소정방이 군사를 이끌고 성산(城山: 현 산동반도)으로부터 바다를 건너 나라(신라)의 서쪽 덕물도에 이르니 신라왕이 장군 김유신을 보내어 정병 5만을 거느리고 당나라 군사와 합세하게 하였다. 왕(백제 의자왕)이 이 소문을 듣고 여러 신하..

카테고리 없음 2008.04.07

윤여동설 - 백제의 백강(白江)은 지금의 한반도 금강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백강(白江)은 지금의 한반도 금강이 아니다 - 최초주장 당나라의 소정방이 타고 올라와 백제를 멸망시킨 백강(白江)은 지금의 난하하류 우리는 지금 서기 660년에 당나라의 소정방이 산동반도를 출발하여 서해바다를 건너 지금의 금강을 타고 올라가 충남 부여의 사비성을 공격해 백제를 멸망 시켰다고 역사를 해석한다. 그리하여 소정방과 김법민이 만난 덕물도를 지금의 덕적도일 것이라 하고, 당나라군이 타고 올라온 백강구를 금강 하류일 것이라 하며, 신라군과 당나라군이 합류한 기벌포를 충남 서천, 군산, 강경 쯤일 것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백제 멸망시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하는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탄현이 어디를 말하는지, 황산이 어디를 말하는지, 기벌포가 어디를 ..

카테고리 없음 2007.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