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태조대왕 6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은 형제가 아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6대 태조대왕, 7대 차대왕, 8대 신대왕은 형제가 아니었다 - 최초주장 재사 ○ (시조로부터 5대 모본왕까지는 해씨, 6대부터 28대까지는 고씨로서 재사의 혈손) ↓ ○ ( )는 왕위 재위기간 .................................|..................................... ↓ ↓ ↓ 6대 태조대왕(궁) ?(실명) ?(실명)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A.D.53-146) 6대 태조대왕, 7대 차대왕, 8대 신대왕이 ↓ ↓ 재사의 아들로서 형제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7대 차대왕(수성) ?(실명) 연령 등을 감안할 때 (A.D.146-165) 이 세 사람을 형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자 그런데 후한서 구려 조에는, 8대 신대왕(백고) 수..

카테고리 없음 2012.10.01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의 동부여 유화태후릉 참배루트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의 동부여 유화태후릉 참배루트를 밝힌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6대 태조대왕 69년(A.D.121) 조를 보면,  “겨울 10월 왕이 부여(동부여)에 가서 태후의 사당에 제사지냈다(冬十月 王幸扶餘 祀太后廟)” 라고 기록되어 있고,   “11월 왕이 부여로부터 돌아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태후란 고구려의 건국시조 주몽왕(추모왕)의 어머니인 유화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때에 이르러 고구려의 태조대왕이 직접 동부여까지 가서 유화태후의 능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앞서 주몽이 동부여에서 무슨 큰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잡히면 죽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졸본부여로 급히 도망치게 되는데, 이때 주몽은 어머니인 유화와 임신한 부인 예씨를 동부여에 그대로 남겨..

카테고리 없음 2011.03.01

윤여동설 - 옥저(북옥저,남옥저,동옥저)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옥저(북옥저,남옥저,동옥저)의 위치 - 최초공개 옥저는 셋이 있었는데, 북옥저와 남옥저 그리고 동옥저였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이 옥저의 위치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후한서 동옥저전을 보면,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다. 동쪽은 대해까지이고 북쪽은 읍루와 부여, 남쪽은 예맥과 접했다” “(한)무제가 조선(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옥저땅으로 현토군을 만들었다. 뒤에 이맥의 침략을 받아 군을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고는 옥저를 현으로 고쳐 낙랑동부도위에 속하게 하였다” “또 북옥저가 있는데 일명 치구루라고도 하는데, 남옥저에서 8백여리 떨어져 있다. 그 풍속은 모두 남옥저와 같으며, 국경의 북쪽(필자주 ; 원본은 남쪽으로 되어 있으나 오기이므로 필자가 바로 잡았다)으로 읍루와 접..

카테고리 없음 2011.01.24

윤여동설 - 정확하게 그린 고구려의 왕위계승도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정확하게 그린 고구려의 왕위계승도 - 최초공개                                 고구려시조 주몽(추모왕)                                     (재위 B.C.37-B.C.19)                                                          .............................................................................                            ↓                                           ↓                2대 유리명왕                             추모왕의 ..

카테고리 없음 2010.11.19

윤여동설 - 태조대왕을 알면 고구려의 초기역사가 보인다(2)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태조대왕을 알면 고구려의 초기역사가 보인다(2) - 최초주장 고구려의 왕권교체 - 연노부(소노부)와 계루부 고구려 705년 역사에서 왕위 계승에 있어 성씨가 바뀐 시기로 추정해 볼 수 있는 때는 해씨인 모본왕에서 고씨인 태조대왕으로 왕위가 이어지는 시기 밖에는 없다. 따라서 모본왕 이전은 해씨였을 것이고, 태조대왕 이후는 고씨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삼국사기에도 5대 모본왕을 해우 또는 해애루로 기록하고 있고, 4대 민중왕을 해색주, 3대 대무신왕을 대해주류왕이라고도 한다라고 하여 그의 성명이 해주류였음을 확인해 볼 수 있고, 또 유리왕은 그 아버지 주몽의 원래 성씨가 해씨였으므로 그 아들인 유리왕 역시 해씨인 것이다. ☆ 주몽은 북부여의 건국시조 해모수의 고손자이므로 당연히 그의 원래 ..

카테고리 없음 2008.03.16

윤여동설 - 태조대왕을 알면 고구려의 초기 역사가 보인다(1)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태조대왕을 알면 고구려의 초기역사가 보인다(1) - 최초주장 고구려 6대 태조대왕 궁은 고구려의 초기 역사를 밝히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재사라는 인물은 유리왕의 어떻게 된 아들이고, 그의 시호를 왜 건국시조에게나 붙일 수 있는 태조왕(太祖王) 혹은 국조왕(國祖王)이라 했는지, 고구려 왕실의 성씨가 원래의 성씨였던 해씨에서 왜 고씨로 바뀌게 되었는지, 후한서나 삼국지에 기록되어 있는 고구려가 "본래 소노부(연노부)에서 왕이 되었으나 점점 미약해져 계루부에서 왕위를 대신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무슨 의미인지 아직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위서 고구려전의 "옛날에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부인이 임신을 하였다. 주몽이 도망친 후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여해라 하였다...

카테고리 없음 2008.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