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하북성 관성현 5

윤여동설 - 고려의 도읍 개경 송악산에 나타나는 어린아이 형상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려의 도읍 개경 송악산에 나타나는 어린아이 형상 - 최초공개 [고려의 도읍 개경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관성현과 그 북쪽의 송악] [개경 북쪽 송악산에 나타나는 어른(엄마?)과 무릎에 앉은 것처럼 보이는 어린아이 형상] 신증동국여지승람 개성부 상 산천 조를 보면, “송악(松嶽: 송악산)”이 개성부의 북쪽 5리에 있는데, 처음 이름은 부소(扶蘇: 부소산) 또는 곡령(鵠嶺)이라 하였다. 신라의 감간 팔원이 풍수에 능하였는데, 부소군에 이르러 살펴보니 산의 형승에서 어린아이(童)가 나타나므로(新羅監干八元善風水到扶蘇郡見山形勝而童) 강충(필자주 : 고려 태조 왕건의 선조)에게 말하기를 ‘만약 군(郡)을 산 남쪽으로 옮기고 소나무를 심어 암석이 드러나지 않게 하면 삼한을 통합할 인물이 출현할 것이다’ 하..

카테고리 없음 2019.11.02

윤여동설 - 고려 귀주대첩(龜州大捷)의 현장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고북구(古北口) 부근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려 귀주대첩(龜州大捷)의 현장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고북구(古北口) 부근 - 최초공개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이후 압록강 하류로부터 동쪽으로 화주 도련포까지 천리장성을 쌓아 거란과 여진의 침공에 대비하였다]     서기 1018년 12월 10일(무술일) 거란의 부마 소손녕이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고려를 침공하자 고려 현종은 강감찬을 상원수로, 강민첨을 부원수로 삼아 군사 20만8천3백명을 거느리고 영주(寧州: 안주)에 주둔시켜 거란의 침공을 방어하게 한다.    그리하여 강감찬은 다시 기병 1만2천명을 뽑아 흥화진(興化鎭)에 매복시키고, 또 굵은 밧줄로 쇠가죽을 꿰어 성 동쪽의 큰 냇물을 막아 물을 가두어 두고 적을 기다렸다가 적이 이르자 물을 터놓아 거란군이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서 복병을..

카테고리 없음 2011.03.25

윤여동설 - 고려 사신들의 연경(燕京) 사행로를 밝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 사신들의 연경(燕京) 사행로를 밝힌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권제37 잡지 제6 지리4 고구려 백제 조를 보면, 『통전에 이르기를 “주몽이 한나라 건소2년에 북부여[필자주 : 동부여의 오기이다]로부터 동남방[필자주 : 서남쪽의 오기이다]으로 가서 보술수를 건너 흘승골성에 이르러 자리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고로써 성씨를 삼았다” 고 하였으며, ☆ 삼국사기 찬자들이 인용했다고 밝히고 있는 통전의 기록이란 통전 권186 변방2 동이하 고구려 조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곳에는 “朱蒙棄夫餘 東南走渡普述水 至紇升骨城 遂居焉 號曰句麗 以高爲氏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의미는 ”주몽이 부여를 버리고 동남쪽으로 달아나 보술수를 건너 흘승골성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고로서 성씨를 삼았다” ..

카테고리 없음 2010.06.28

윤여동설 - 고려의 도읍 개경은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하북성 관성현(寬城縣, 寬城滿族自治縣)이 확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의 도읍 개경은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하북성 관성현(寬城縣, 寬城滿族自治縣)이 확실 - 최초주장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에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가 있다고 보여진다.즉, 현재로부터 근세, 고대,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과      상고로부터 고대, 근세, 현재로 내려오는 방법이다.  우리가 지금 한반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니 그 바로 앞 왕조인 조선이 한반도에, 또 그 앞 왕조인 고려 역시 한반도에, 후삼국도 한반도에, 삼국과 가야, 삼한과 위만조선, 고조선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존속했다고 인식하는 논리가 역사를 현재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찰하는 방법인데, 강단사학은 이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그런데 재야사학은 역사란 사건의 발생순서에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

카테고리 없음 2010.02.02

윤여동설 - 고려 남경(한양)의 위치 찾기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 남경(한양)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 고려 남경 : 고려 남경의 궁궐은 면악(面嶽)을 뒤로 하고, 동남 방향(임좌병향)으로 건축되었다고 했다] 고려 태조 왕건은 태봉왕 궁예를 몰아내고 서기 918년 6월 왕위에 올라 국호를 고려라 하고 연호를 천수라 하고는 919년 정월 송악 남쪽에 도읍을 정하고 개경이라 하게 되는데, 개경은 지금의 황해도 개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하북성 승덕시 관성현(관성만족자치현)을 말하는 것이다. 고려사절요에는 왕건에 대하여,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며, (눈은) 용안과 같이 반짝이고, 턱이 풍만하며 이마가 넓었다. 기개와 도량이 크고 깊었으며, 목소리가 우렁차고 컸으며, 너그럽고 후하여 세상을 구제할 만한 도량이 있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앞서 서기 ..

카테고리 없음 2007.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