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거란 5

윤여동설 - 발해(대진국)는 왜 멸망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발해(대진국)는 왜 멸망했을까? - 최초주장 [신당서 발해전을 보면, 용원(동경용원부)은 일본으로 갈 때 이용하는 길이고, 남해(남경남해부)는 신라로 갈 때 이용하는 길이며, 압록(서경압록부)은 중국으로 갈 때 이용하는 길이며, 부여는 거란으로 갈 때 이용하는 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발해(대진국)의 멸망원인은 지금까지 미스테리였다. 백두산 화산폭발 때문에 갑자기 멸망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화산이 아무리 강하게 폭발했다고 하더라도 발해처럼 사방 5천리에 이르렀다는 큰 나라가 그로인하여 멸망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말이 되지를 않고, 사실 발해는 지금의 백두산 부근에 위치하고 있지도 않았었다. 발해(대진국)는 지금의 내몽골 파림우기 부근에서 건국되었는데, 그 곳이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였고..

카테고리 없음 2015.04.18

윤여동설 - 거란(요)은 부여문화권에 속했던 민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거란(요)은 부여문화권에 속했던 민족 - 최초주장 부여는 아주 먼 옛날 고조선 단군왕검의 아들 부여에게 주어졌던 나라 서쪽의 영지였고, 후일에 이르러 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가 되었다. ☆ 북부여는 졸본부여에 병합되었고, 졸본부여는 후일 고구려가 되었으며, 동부여는 5백여년 후 고구려에 통합되었다. 북부여는 해모수가 건국하여 기원전 232년에 천제의 자리에 올라, 해모수리, 해해사, 해우루, 해부루로 왕위가 이어졌고, 졸본부여는 동명왕이 기원전 108년에 건국하여 기원전 86년에 북부여를 병합하였다. 그러자 북부여 해부루왕은 북부여 땅을 빼앗기고 일부 유민들을 이끌고 동북쪽으로 이동해 가서 다시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동부여라 하게 되고, 다른 일부 역시 북부여를 떠나 흩어져 실위, 고막해,..

카테고리 없음 2015.04.12

윤여동설 - 실위는 울란바토르 동쪽에 위치했던 나라

윤여동설 - 실위는 울란바토르 동쪽에 위치했던 나라 실위(失韋 또는 室韋로도 쓴다)는 지금 몽골의 선조라 한다. 위서(후위서, 북위서) 열전 실위 조를 보면, “실위국은 물길(필자주 : 거란) 북쪽 천리에 있는데, 낙양에서 6천리 떨어져 있다. 길을 나서 화룡에서 북쪽으로 천여리를 가면 거란국에 들어서고, 또 북쪽으로 10일을 가면 철수에 이르고, 또 북쪽으로 3일을 가면 개수가 있고, 또 북쪽으로 3일을 가면 독료산이 있는데, 그 산은 높고 크며 둘레가 3백여리이다. 또 북쪽으로 3일을 가면 큰 강이 있는데 이름은 굴리이다. 또 북쪽으로 3일을 가면 인수에 이르고, 또 북쪽으로 5일을 가면 그 나라에 도착한다(失韋國 在勿吉國北千里 去洛陽六千里 路出和龍北千餘里 入契丹國 又北行十日至啜水 又北行三日有蓋水, ..

카테고리 없음 2012.08.20

윤여동설 - 지두우(地豆于)는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지두우(地豆于)의 위치 - 최초주장   지두우(地豆于)는 과연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역사연구자들이 기를 쓰고 이 지두우의 위치를 찾으려 하는 것은 장수왕 때의 고구려 강역을 밝히는데 이 지두우의 위치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위서(북위, 후위) 거란전을 보면, 고구려 장수왕은 서기 479년(북위태화3년)에 유유와 공모하여 이 지두우를 빼앗아 나누려 하였다고 했기 때문에 기록대로라면 당시 고구려는 이 지두우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두우는 과연 지금의 어디쯤에 위치했던 나라였을까?      위서 권100 열전제88을 보면,  “지두우국(地豆于國)은 실위 서쪽 1천여리에 있다. 소와 양이 많고 명마가 산출된다. 짐승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

카테고리 없음 2011.07.30

윤여동설 - 연운 16주는 우리 고조선의 옛 땅이었다 -최초주장

윤여동설 - 연운16주는 우리 고조선의 옛 땅이었다 - 최초주장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하여 빼앗아 설치했다는 연5군 지역이 천년 후쯤 후진이 거란에게 할양했던 연운16주와 거의 동일한 지역이라는 것이 드디어 필자에 의해 밝혀졌다.   이는 고조선의 서쪽 경계가 어디까지였느냐를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역사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연운 16주는 후당의 금군장관으로서 하동절도사와 북경유수를 겸하고 있던 석경당이 936년에 거란의 지원을 받아 후진(後晉)을 세운 대가로 거란에 할양한 땅인데, 할양 이후 그 땅을 놓고 동이족과 한족이 세운 나라들 사이에 오랜 세월 분쟁의 불씨가 되었던 곳이다.  ★ 산서성 중북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이 장성의 흔적을 진시황 때..

카테고리 없음 2009.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