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고조선 준왕 6

윤여동설 - 고조선 준왕의 남하로에 대한 반도사관과 대륙사관의 인식차이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조선 준왕의 남하로에 대한 반도사관과 대륙사관의 인식차이 - 최초주장 삼국지 한전을 보면, “한(韓)은 대방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를 한계로 했고, 남쪽은 왜와 접하니 면적이 사방 4천리쯤 된다. 세 종족이 있으니 첫째는 마한, 둘째는 진한, 셋째는 변한인데 진한은 옛 진국(辰國)이다...........(중략)............ 진왕은 월지국을 통치한다.........(중략)................. 조선후 준(準王)이 왕을 참칭하다가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빼앗겼다. 준(준왕)은 그의 근신과 궁인들을 거느리고 도망쳐 바다를 경유하여 한(韓)의 지역에 거주하며 스스로 한왕(韓王)이라 칭하였다. 그 뒤 준(준왕)의 후손은 절멸되었으나 지금 한인(韓..

카테고리 없음 2015.08.22

윤여동설 - 위만의 고조선으로의 망명로와 왕검성 공격로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위만의 고조선으로의 망명로와 왕검성 공격로 - 최초주장 삼국지 한(韓) 전을 보면 위만이 고조선으로 망명해오는 과정과 왕검성을 탈취하는 과정을 위략의 기록을 인용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를 보면, “위략에 이르기를, 옛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는 주(周)나라가 쇠약해지고, 연(燕)나라가 스스로 높여 왕을 칭하고 동쪽으로 침략하려는 것을 보고, 조선후 역시 스스로 왕을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역격하여 주왕실을 보존시켜 주려고 하였으나 그의 대부 예(禮)가 간하므로 중지하였다. 그리고는 예를 파견하여 서쪽의 연나라를 설득하니 연나라도 전쟁을 멈추고 조선(朝鮮 : 고조선)을 침공하지 않았다. 그 뒤에 자손이 점점 교만해지고 포악해지자 연나라는 장군 진개를 보내 조선의 서쪽지방을 침공하여..

카테고리 없음 2015.08.09

윤여동설 - 위만의 옛 도읍 험독(險瀆)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위만의 옛 도읍 험독(險瀆)의 위치 - 최초주장 사기 조선열전과 전한서 조선전을 보면, “燕王盧綰反 入匈奴 滿亡命 聚黨千餘人 椎結蠻夷服而東走出塞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障”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석해 보면, “연왕 노관이 (한나라에) 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위만)도 망명하였는데, 무리 천여명을 모아 추결을 하고 만이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를 넘고 패수를 건너 (조선왕 준에게 망명하고 돌아와 준이 배치해 준), 진고공지상하장에서 살았다” 라는 뜻이다. ☆ 위략에 “(조선왕) 부가 죽고 그 아들 준(準)이 왕위에 올랐다. 그 뒤 20여년이 지나 진항(진승과 항우)이 기병하여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연(燕), 제(齊), 조(趙)의 백성들이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점점 준에게 망명해오자 준..

카테고리 없음 2013.03.24

윤여동설 - 험독과 왕험(왕검성)은 같은 곳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험독(險瀆)과 왕험(王險:왕검성)은 같은 곳이 아니다 - 최초주장 사기 조선전을 보면, “조선왕 만(위만)은 옛 연나라 사람이다. 전연 때 진번조선을 침략하여 빼앗아 관리를 보내 장새를 쌓고 다스렸다. 진(秦)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번조선 지역을) 요동외요에 속하게 했는데, 한나라가 흥기하자 그 땅이 멀고 지키기가 어렵다 하여 다시 요동고새를 수리하고 패수(浿水)를 경계로 삼아 연나라에 속하게 했다. 연왕 노관이 (한나라에) 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위만)도 무리 수천인을 모아 추결과 만이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도망쳐 요새를 넘고 패수를 건너 (고조선에 망명한 후) 진나라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서 살았다. 점점 진번조선의 만이들과 옛 연나라,제나라 망명자들을 받아들여 왕이 되고 왕..

카테고리 없음 2010.04.04

윤여동설 - 고조선의 준왕이 한(韓)을 세운 진짜 "금마(金馬)"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조선의 준왕이 한을 세운 진짜 “금마(金馬)”를 찾았다 - 최초공개 삼국지 한 전에 인용된 위략(魏略)의 기록을 보면, “옛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는 주나라가 쇠약해지고 연(燕)나라가 스스로 높여 왕이라 칭하고 동쪽으로 침략하려는 것을 보고, 조선후 역시 스스로 왕호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거꾸로 공격하여 주 왕실을 보존해 주려 하였는데, 그 대부 예가 간하므로 중지하고, 대부 예를 서쪽으로 파견하여 연나라를 설득하니 연나라도 전쟁을 멈추고 침공하지 않았다. 그 뒤에 자손이 점점 교만하고 포학해지자 연나라는 장군 진개를 파견하여 조선의 서쪽 지방을 침공하고 2천여 리(사기 흉노전에는 1천여리라고 했다)의 땅을 빼앗아 만번한(滿番汗 ; 滿潘汗이라고도 한다)을 경계로 삼아 마침내 조선의..

카테고리 없음 2009.12.27

윤여동설 - 방 4천리 강역의 삼한은 한반도 남한에 위치할 수 없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방 4천리 강역의 삼한(三韓)은 한반도 남한에 위치할 수 없다 - 최초주장     사서들의 기록을 보면 한(韓: 삼한)이 방4천리에 이르는 넓은 강역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우리는 지금  1천리에 지나지 않는 한반도 남한에 삼한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역사를 해석한다.   삼국지 한전의 주를 보면,   『위략에 이르기를,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 한 뒤 몽염을 시켜 장성을 쌓게 하여 요동에까지 이르렀을 때 조선왕 부(否)가 왕위에 올랐는데, 진나라가 공격할까 두려워하여 복속하는 체 했으나 조회에는 나가지 않았다.   부가 죽고 그 아들 준(準)이 즉위했다.  그 뒤 20여 년이 흘러 진항(진승과 항우)이 병기하여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연나라·제나라·조나라 백성들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

카테고리 없음 2007.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