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대광정자산태백산설 6

윤여동설 - 진짜 묘향산(妙香山)을 찾은 듯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진짜 묘향산(妙香山)을 찾은 듯하다 - 최초주장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안도 영변대도호부(寧邊大都護府) 산천 조를 보면, “묘향산(妙香山)은 영변대도호부의 동쪽 130리에 있다. 일명 태백산(太伯山)이라고도 하는데, 옛 기록에는 그 산에 360개의 암자가 있다”고 하였다(在府東一百三十里一名太伯山古記其山有三百六十菴) 이색의 기문에, “향산(香山)은 압록강 남쪽 기슭, 평양부의 북쪽에 있어 요양과 경계하고 있으니 산의 크기가 비할 바가 없으며, 장백산에서 갈라진 것이다. 그곳에 향나무가 많아 겨울에도 푸르며, 선불(仙佛)의 옛 자취가 남아 있다”고 하였다. 고려 고종 3년에 금산(金山)의 군사가 이 산에 들어와 보현사(普賢寺)를 불태웠는데 관군이 추격하여 2천4백여명의 목을 베었고, 적장 지노(只奴)..

카테고리 없음 2020.02.29

윤여동설 - 단군왕검의 황후 하백녀(河伯女)의 고향 비서갑(斐西岬)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윤여동설 - 단군왕검의 황후 하백녀(河伯女)의 고향 비서갑(斐西岬)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고조선의 건국시조 단군왕검은 비서갑(斐西岬)에 사는 하백(河伯)의 딸과 혼인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즉 고조선(왕검조선)의 초대 황후가 곧 하백의 딸이었다는 말이다. [단군왕검의 왕후가 되었던 비서갑 하백녀의 모습일까?] 이암(李嵒)의 단군세기(檀君世紀)를 보면, “무진년 제요도당(요 임금) 때에 왕검이 단국(檀國 : 환웅국)으로부터 아사달(阿斯達 : 아사달 부근의 태백산의 오기일 것이다)의 단목지허(檀木之墟 : 신단수터 즉 단목이 있던 터)에 이르니 온 나라 사람들이 받들어 천제의 아들로 삼게 되었다..... 비서갑(斐西岬)의 하백녀(河伯女)를 거두어 아내로 삼아 양잠을 관장하게 하니 순방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

카테고리 없음 2019.03.29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의 도읍 왕검성(王儉城)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의 도읍 왕검성(王儉城)의 위치 - 최초주장  [옛 고조선(왕검조선)의 왕검성 터에 세운 청나라의 열하행궁(피서산장)]   규원사화(揆園史話)를 보면,   “여러 고을 땅의 길흉을 판단하여 도읍을 태백산 동남쪽(필자주 : 원문은 서남쪽인데 필자가 고쳤다. 왕검성과 아사달의 위치를 헷갈려 기록한 듯하다) 우수하벌판에 정하고 임검성(필자주 : 첫도읍 아사달의 오기이다)이라고 했다.....................   우수하가에 산지 10년에 도읍을 백산(白山 : 태백산)의 남쪽, 패수(浿水)의 북쪽으로 옮기니 이곳이 평양(平壤)이며 제2의 임검성(필자주 : 두번째 도읍 왕검성을 말하는 것이다)이다.   지금의 속말 땅은 기후가 춥고 토질이 나빠서 들이 넓기는 하나 농사짓기가 ..

카테고리 없음 2019.01.27

윤여동설 - 태백산(太白山)과 행인국(荇人國)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태백산(太白山)과 행인국(荇人國)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건국시조 주몽 조를 보면, “해부루가 죽으니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이때에 태백산(太白山)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여인을 만나 사정을 물으니 그 여자가 말하기를 ‘나는 하백의 딸이요 이름은 유화이다’ 라고 대답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 속의 유화라는 여인이 바로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어머니 되는 사람으로서 부모의 허락 없이 외갓 남자와 사통하였다고 하여 그 아버지 하백이 태백산 남쪽 우발수로 귀양을 보냈다는 것인데, 기록 속의 우발수를 찾으려면 먼저 태백산을 찾아야만 한다. 고대의 태백산은 과연 지금의 어느 산을 말하는 것일까? 고대의 태백산(太白山)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에 위치한 칠로도산 산맥 중..

카테고리 없음 2018.12.15

윤여동설 - 태백산과 환웅의 신시(神市)는 지금의 내몽골 적봉 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태백산과 환웅의 신시(神市)는 지금의 내몽골 적봉 부근 - 최초주장 삼국유사 고조선 왕검조선 조를 보면,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桓雄)이란 이가 있었는데, 수차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내고 있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가히 홍익인간 할 만 했다. 이에 천부인 3개를 주어 인간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太白山)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그곳을 신시(神市)라 하였고, 이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환웅천왕이 도읍한 곳이 태백산 아래 신시(神市)였음을 알게 한다. 아마 이때 환웅은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가 있는 곳에 올라 좌우를 둘러보며, 과연..

카테고리 없음 2017.08.19

윤여동설 - 고구려의 세번째 도읍 환도성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의 세 번째 도읍 환도성의 위치 - 최초주장 고구려 10대 산상왕은 서기198년에 이르러 환도성을 쌓았다. 이는 이때 후한이 말기 현상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인데, 산상왕은 상황에 따라서는 요동 쪽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서 이 환도성을 활용할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후한의 멸망이 거의 기정 사실화되자 209년 10월에 이르러 환도성으로 옮겨살며 요동 쪽으로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나타나게 된다. ☆ 우리는 지금 집안 북쪽에 위치한 산성자산성을 환도산성일 것이라 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때 고구려의 도읍은 국내성이었는데, 그 위치는 지금의 중국 북경시 연경현 영녕진 부근이었다. [고구려의 국내성으로 비정되는 연경현 영녕고성] 앞서 8대 신대왕은 172년에 ..

카테고리 없음 2008.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