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미천왕 3

윤여동설 - 비운의 고구려 고국원왕 - 드라마 근초고왕

윤여동설 - 비운의 고구려 고국원왕 - 드라마 근초고왕 고구려 16대 고국원왕의 이름은 쇠(釗 : 사유라고도 한다)이다. 정복군주 미천왕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태후 주씨이다. 서기 331년 봄2월에 미천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앞서 미천왕은 어릴 적 백부인 봉상왕이 돌고(미천왕의 아버지)를 역모로 몰아 죽이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당시 도읍인 평양성으로부터 옛 도읍인 졸본부근으로 도망쳐 신분을 숨기고 남의 집 머슴살이와 소금장사를 하고 있다가 국상 창조리가 봉상왕을 제거하고 추대하여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미천왕은 지리에도 밝았고 국제정세를 읽는 능력이 탁월했던 왕으로서 311년에 요동 서안평을 빼앗았고, 313년에는 낙랑군(후한 광무제가 살수 이남에 설치했던 낙랑군)을 빼앗았으며, 314..

카테고리 없음 2011.05.15

윤여동설 - 낙랑의 끈질긴 생명력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낙랑의 끈질긴 생명력 - 최초공개 최리의 낙랑국이 서기 37년에 고구려 대무신왕의 침공을 받고 항복함으로써 이때 낙랑국이 멸망했으나, 서기 44년에 후한의 광무제가 고구려를 침공하여 살수 이남의 옛 낙랑 땅 일부를 되찾아 다시 설치했던 후한낙랑군. 그런데 이 후한낙랑군도 서기 313년에 이르러 고구려 미천왕에게 그 땅을 빼앗기고 축출됨으로써 우리 역사에서는 더 이상 낙랑군이나 낙랑국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북제의 위수가 지은 위서(魏書) 권5 고종기 제5 화평(和平) 3년(A.D.462) 조를 보니, “봄 정월 계미일에 낙랑왕 만수가 죽었다 (春正月 癸未 樂浪王萬壽薨)”라고 기록되어 있어, 400여 년 전에 이미 멸망했을 낙랑국 왕이라는 의미의 “낙랑왕”이 갑자기 등장한다. 그리고 이어서..

카테고리 없음 2009.08.20

윤여동설 - 고구려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 고구려와 낙랑의 접촉 기록은 3대 대무신왕 15년(A.D.32) 4월 조에, 낙랑왕 최리가 언급되고,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면서 시작되는데, 사실은 서기 30년에 이미 낙랑동부도위 땅을 고구려가 빼앗았던 듯하다. 그리고 대무신왕 20년(A.D.37) 조에, "왕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는 기록이 나타나고 다시 27년(A.D.44) 조에, "가을 9월 한나라(후한) 광무제가 군사를 보내 바다를 건너와 낙랑을 치고 그 지역을 빼앗아 군현을 만드니 살수 이남이 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라는 기록이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기록의 의미를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낙랑..

카테고리 없음 2009.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