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북경 요동군설 6

윤여동설 – 고대 우산국(于山國)의 원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 우산국(于山國)의 원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년(A.D.512) 조를 보면, 『여름6월 우산국(于山國)이 귀순하고 해마다 토산물로써 세공을 바치기로 하였다. 우산국(于山國)은 명주(溟州)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 혹은 울릉도(鬱陵島)라고도 한다. 땅 둘레가 1백리인데,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항복하지 아니하였다. 이찬 이사부(異斯夫)가 하슬라(何瑟羅) 군주(軍主)가 되었는데, 우산인(于山人)들이 미련하고 사나우므로 위력으로서 복종시키기는 어려우니 계교로서 항복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곧 나무로 사자 모양을 만들어 전선(戰船)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 해안에 다달아 거짓말로 말하기를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는다면 이 맹수를 풀어 놓아 짓밟아 죽이겠다..

카테고리 없음 2023.05.07

윤여동설 – 의무려산(醫巫閭山)은 명·청대에 위치가 이동되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의무려산(醫巫閭山)은 명·청대에 위치가 이동되었다 - 최초주장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던 고구려와 백제의 원래위치] 삼국사기 권제37 잡지 제6 지리4 고구려 백제 조를 보면, 『통전에 이르기를, “주몽이 한(漢)나라 건소2년(B.C.37, 필자주 : 사실 주몽이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간 때는 기원전 58년이었다)에 북부여[필자주 : 동부여]로부터 동남방으로 가서 보술수를 건너 흘승골성에 이르러 자리 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고로써 성씨를 삼았다”고 하였으며, 고기(古記)에는 이르기를, “주몽이 부여[필자주 : 동부여이다]에서 난을 피하여 졸본에 이르렀다”고 하였으니 흘승골성과 졸본은 거의 같은 곳인 듯하다. 한서지에 이르기를, “요동군(遼東郡)은 낙양에서 3,600리 떨어져 있고..

카테고리 없음 2021.02.27

윤여동설 - 고구려 강역 서쪽변경의 신성(新城)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선화고성(宣化古城)이 확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강역 서쪽변경의 신성(新城)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선화고성(宣化古城)이 확실 - 최초공개 우리 고대역사에서 아직까지 그 위치를 확실하게 비정하지 못하고 있는 곳 중의 하나가 고구려 “신성(新城)”이다. 고구려의 동북쪽이라고도 하고, 북쪽이라고도 하고, 서쪽이라고도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성(新城)은 고구려 13대 서천왕(재위 : 270-292) 대에 이미 축성되어 있던 성이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서천왕은 276년 4월에 신성으로 가서 무려 4개월이나 머무르며 사냥을 하기도 했고, 또 288년에는 4월부터 11월까지 무려 7개월간이나 그곳 신성에 머무르다가 평양성으로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성은 왕이 수개월을 머무르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을 정도로..

카테고리 없음 2020.05.31

윤여동설 - 잃어버린 현토성(玄菟城)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잃어버린 현토성(玄菟城)을 찾았다 - 최초공개    [장가구시 회안성진 : 규모 가로세로 각 약 1.5km     좌표 동경 114도28분01초 북위 40도27분48초]                                        [위 : 무너진 현토성 성벽]    한 무제가 기원전 108년에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네 조각으로 나누어 설치했던 한사군은 낙랑군(樂浪郡), 진번군(眞番郡), 임둔군(臨屯郡), 현토군(玄菟郡)이었다.   그 중 현토군(玄菟郡)은 처음에는 기원전 107년에 옥저 땅에 설치되었으나 기원전 75년에 이르러 그 위치를 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게 된다.  이때 옮긴 현토군이 후한서에 기록되어 있는 낙양 동북 4천리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현토군으로서 바로 이 현..

카테고리 없음 2019.05.07

윤여동설 - 북경에서 낙랑 출신의 묘가 발견된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북경에서 낙랑 출신의 묘가 발견된 이유 - 최초주장 북경 남쪽 대흥구에서 1,500년전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낙랑 조선현 출신 한현도라는 사람이고 539년에 죽었다는 명문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그가 한반도의 평양 부근 출신으로서 무슨 사연이 있어 북경 부근으로 옮겨가 살다가 죽어 묻힌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북경 부근은 5군 중 요동군이었고, 영정하 서쪽은 요서군이었으며, 낙랑군은 그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북성 승덕시 부근이 전한낙랑군이었고, 흥륭부근은 후한낙랑군이었고, 보정 부근은 진(晋)낙랑군이었으며, 북위 때의 낙랑군도 보정 부근이었을 것이고, 동위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반도의 평양은 낙랑국도 아니었고, 낙랑군도 아니었..

카테고리 없음 2015.03.29

윤여동설 - 백제가 지배한 요서 진평현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가 지배한 요서 진평현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송서 백제국 전에는,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 동쪽 1천여 리에 있다. 그후 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했는데, 백제가 통치한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百濟國 本與高麗俱在遼東之東千餘里 其後高麗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晉平郡晉平縣)"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백제가 중국의 요서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기록에 나타나는 요서 진평군 진평현이 어디를 말하는지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기록은 송서 뿐이 아니라 양나라의 역사서인 양서와 양직공도에도 기록되어 있다. 양서에는, "그 나라(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다. 진(晉)나라 때..

카테고리 없음 2007.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