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송산리고분군 4

윤여동설 - 원형과 다르게 변형된 공주 송산리 6호분 모형관의 북벽 등감 위 창살모형

윤여동설 - 원형과 다르게 변형된 공주 송산리 6호분 모형관의 북벽 등감 위 창살모형 유적이나 유물의 모형을 만든다는 것은 원래의 유적이나 유물이 일반에게 공개되어 훼손이 우려될 경우, 그를 방지하기 위하여 원형과 똑같이 만들어 여러 사람이 원래의 유적이나 유물대신 그것을 감..

카테고리 없음 2016.06.11

윤여동설 - 백제 무령왕릉 또 하나의 미스테리

윤여동설 - 백제 무령왕릉 또 하나의 미스테리       결혼식을 할 때 신랑은 동쪽(左)에 서고, 신부는 서쪽(右)에 서는 것이 원칙이고, 회갑, 칠순, 팔순연에도 남편은 동쪽에 앉고, 부인은 서쪽에 앉는다.    이를 남좌여우(男左女右)원칙이라고 하는데, 그리하여 죽은 부부의 무덤을 조성할 때도 남편은 동쪽(左)에, 부인은 서쪽(右)에 매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좌측(왼쪽)이 동쪽을 말하고, 우측(오른쪽)이 서쪽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거꾸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옛날 조선시대에 경상좌도는 경상동도라는 의미이고, 경상우도는 경상서도라는 의미였음을 생각해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고, 강좌라고 하면 강의 동쪽을 말하는 것임을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머리방향은 능선일 경..

카테고리 없음 2016.05.20

윤여동설 - 백제 무령왕 금제왕관장식에 목련꽃 활짝 피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무령왕 금제왕관장식에 목련꽃이 활짝 피었다 - 최초주장 충남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중 가장 화려한 것은 단연 금제왕관장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무령왕릉이 발굴된 지 수십년이 되었건만 금제왕관장식이 과연 무엇을 형상화 한 것인지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그것이 타오르는 불꽃을 형상화했다느니, 신령스런 영기(靈氣)문양이라느니, 연꽃이라느니 주장들이 제각각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아무리 보아도 나뭇가지에 꽃이 핀 모양을 형상화 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삼국사기 백제본기 고이왕 조를 보면, "28년(A.D.261) 봄 정월 초하루날에 왕이 자주색으로 된 큰소매 달린 도포와 푸른 비단바지를 입고, 금꽃으로 장식한 오라관을..

카테고리 없음 2009.02.26

윤여동설 - 공주 송산리 6호분은 무령왕 소비(小妃)의 능인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공주 송산리 6호분은 무령왕 소비(小妃)의 능인가? - 최초주장 [공주 송산리 고분군 전경] [공주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 개봉전 모습] 충남 공주에서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백제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낸 역사적 사건이었다. 도굴되지 않은 채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어 백제의 높은 문화수준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고, 특히 중요한 것은 지석이 함께 부장되어 있어 한반도에서 삼국시대 왕릉 중 유일하게 주인공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왕릉이 되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무령왕의 이름은 사마(혹은 융이라고도 한다)로서 모대왕의 둘째 아들이다. 신장이 8척이요 눈썹과 눈이 그림 그린 것 같았고, 인자관후하니 민심이 귀부했다. 모대왕이 재위 23년(A.D.501)에 죽으니 즉위했다"..

카테고리 없음 2008.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