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주몽왕 6

윤여동설 - 백제 온조왕의 고향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온조왕의 고향을 찾았다 - 최초공개 비류와 온조의 진짜 부모는 누구? 백제의 건국시조 비류왕과 온조왕의 부모에 대한 옛 기록들은 매우 혼란스럽다. 고구려의 건국시조 주몽과 졸본부여 둘째공주 사이에서 출생했다는 설, 주몽과 월군여인 사이에서 출생했다는 설, 북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인 우태와 졸본사람인 연타발의 딸 소서노 사이에서 출생했다는 설, 구태와 공손도 딸의 후예설 등이 있는데, 필자가 연구해 보니 비류와 온조는 졸본부여 건국시조 동명왕의 작은 아들의 아들 즉 동명왕의 손자인 우태와 소서노 사이에서 출생했다. 즉 비류와 온조는 졸본부여 동명왕의 증손자였던 것이다. 졸본부여 건국시조 동명왕 | ......................................................

카테고리 없음 2012.07.08

윤여동설 - 추모왕(주몽왕) 탄생설화와 고구려 건국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추모왕(주몽왕) 탄생설화와 고구려 건국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를 보면 주몽을 추모(鄒牟) 또는 중해(衆解)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가장 정확할 것으로 여겨지는 호태왕 비문에도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추모왕(鄒牟王)"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왕의 시호는 동명성왕이 아니라 추모왕이었음에 틀림없다. ☆ 삼국사기에는 주몽을 동명성왕이라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서 졸본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과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추모왕을 혼동한 결과이다. 이는 당시의 기록인 국강상광개토경 평안호태왕 비문에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동명성왕이라 기록하지 않고 추모왕이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또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

카테고리 없음 2009.04.12

윤나영 - 고구려 유리왕의 일생(1)

윤나영 - 고구려 유리왕의 일생(1) - 삼국건국의 아침(윤나영 지음, 경향미디어)에서 발췌- 고구려 유리왕은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왕(추모왕)의 장자로서 태어난 곳은 동부여이고, 때는 기원전 58년이었으며, 유리가 태어나기 전인 이해 봄에 그 아버지 주몽은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갔다. 그리고 유리왕의 할머니인 유화가 죽은 해는 기원전 24년이었고, 유리(후일의 유리왕)가 어머니인 예씨와 친구인 옥지, 구추, 도조와 동부여를 탈출하여 졸본에 도착한 때는 기원전 19년 4월이었다. 따라서 유리는 약 40세의 나이에 졸본으로 아버지 주몽을 찾아와 고구려의 태자에 봉해졌다는 말이 되고, 예씨 역시 20세쯤의 꽃다운 나이에 주몽과 헤어졌다가 60세쯤의 노파가 되어서야 주몽과 재회했던 것이다. ☆ 노총각 유리..

카테고리 없음 2008.12.08

윤여동설 - 해(解)씨와 고(高)씨 두 성씨로 이어진 고구려왕들의 원래 성씨와 이름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해(解)씨와 고(高)씨 두 성씨로 왕위가 이어진 고구려왕들의 원래 성씨와 이름 - 최초공개 시조 추모왕(鄒牟王) : 해추모(解鄒牟), 해주몽(解朱蒙), 해중해(解衆解) ※ 호태왕 비문에 추모왕이라 기록되어 있어, 추모란 이름이 아니라 시호일 가능성도 있고, 삼국사기에는 주몽이 나라를 세워 국호를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따라서 고(高)씨로서 성씨를 삼았다고 했으나, 실제 초기 고구려 왕실의 성씨는 해모수의 성씨인 "해(解)"씨였고, 고(高)씨로 왕실의 성씨가 바뀐 것은 6대 태조대왕 때부터이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주몽의 시호를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 기록한 것은 졸본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과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추모왕을 혼동한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이름을 추몽(鄒蒙)이라고도 기록하고 있고, 단..

카테고리 없음 2008.08.25

윤여동설 - 태조대왕을 알면 고구려의 초기역사가 보인다(2)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태조대왕을 알면 고구려의 초기역사가 보인다(2) - 최초주장 고구려의 왕권교체 - 연노부(소노부)와 계루부 고구려 705년 역사에서 왕위 계승에 있어 성씨가 바뀐 시기로 추정해 볼 수 있는 때는 해씨인 모본왕에서 고씨인 태조대왕으로 왕위가 이어지는 시기 밖에는 없다. 따라서 모본왕 이전은 해씨였을 것이고, 태조대왕 이후는 고씨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삼국사기에도 5대 모본왕을 해우 또는 해애루로 기록하고 있고, 4대 민중왕을 해색주, 3대 대무신왕을 대해주류왕이라고도 한다라고 하여 그의 성명이 해주류였음을 확인해 볼 수 있고, 또 유리왕은 그 아버지 주몽의 원래 성씨가 해씨였으므로 그 아들인 유리왕 역시 해씨인 것이다. ☆ 주몽은 북부여의 건국시조 해모수의 고손자이므로 당연히 그의 원래 ..

카테고리 없음 2008.03.16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 존속설과 부흥운동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 존속설과 부흥운동 - 최초주장 우리 민족 역사에서 가장 광대한 강역을 일구었던 고구려의 멸망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 우리가 지금도 매우 넓은 강역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데 당나라 사람인 가언충이라는 사람은 고구려비기라는 예언서에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 만에 80대장에게 멸망당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다고 하고, 고구려가 멸망한 서기 668년이 건국된 지 꼭 900년이 되는 해였다고도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이상한 것은 어떻게 서기 668년이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이 되는 해라고 말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우리의 역사 상식으로는 ..

카테고리 없음 2007.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