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평곽 5

윤여동설 - 광개토태왕의 정복지 비려 염수와 개선로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광개토태왕의 정복지 비려 염수와 개선로 - 최초주장 호태왕 비문 영락 5년(A.D.395) 을미년 조를 보면, “영락 5년 을미년에 왕이 비려(碑麗)가 붙잡아간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므로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였다. 부산(富山)과 부산(負山)을 지나 염수(鹽水)에 이르러 3개 부(部) 6, 7백영(營)을 격파하고 셀 수 없을 만큼의 소, 말, 양떼를 노획하고 개선하였다. 양평(襄平) 길을 지나 동쪽으로 ○○성, 역성(力城), 북풍(北豐)을 거쳐 왕이 사냥을 준비시켜 국경도 구경하고 사냥도 즐기면서 돌아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여러 지명이 언급되고 있다. 비려(碑麗), 부산(富山), 부산(負山), 염수(鹽水), 양평(襄平), 역성(力城), 북풍(北豐) 등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카테고리 없음 2012.01.13

윤여동설 - 건안성(평곽)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난평 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건안성(평곽)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난평 부근 - 최초주장 645년 당 태종 고구려 침공시 난공불락의 요새 안시성을 먼저 쳐야 되느냐 안시성을 그대로 두고 건안성을 치고 평양성으로 향할 것이냐를 놓고 작전회의를 할 때, 이세적이 말하기를 “건안은 남쪽(필자주 : 북쪽의 오기일 것이다)에 있고, 안시는 북쪽(필자주 : 남쪽의 오기일 것이다)에 있는데, 우리의 군량은 모두 요동에 있습니다. 이제 안시를 넘어 건안을 치다가 만약 고구려 사람들이 우리의 군량 수송로를 끊게 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했다는 기록이 있음을 보면 안시성과 건안성은 모두 요동성 가까이 위치하고 있었고, 안시성이 남쪽(원문은 북쪽으로 되어 있다)에, 건안성이 북쪽(원문은 남쪽으로 되어 있다)에 위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카테고리 없음 2011.10.17

윤여동설 -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이 어디인지 아직까지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도 아닌 북연의 용성(화룡)을 찾으려 애쓰는 것은 그곳이 고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성(柳城)이고, 고구려 장수왕 때의 고구려 서쪽 경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용성의 위치를 찾으면 옛날 춘추전국시대에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하여 1천여리(2천여리라고도 한다)의 땅을 빼앗아 설치했다는 연5군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되어 고조선의 옛 땅이 어디까지였는지도 알 수 있어 우리의 고대역사 해석을 지금과는 전혀 새롭게 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고대역사에서 지금까지 확실하게 밝히지 못했던 잃어버린 고리 하나를 찾아 역사 복원에 한발 가까..

카테고리 없음 2010.06.14

윤여동설 - 발해의 마지막 불꽃 흥요국(興遼國)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발해의 마지막 불꽃 흥요국의 위치 - 최초공개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서 당나라 무후 때에 고구려(속말말갈이라고도 한다) 사람 대조영이 나라를 세우자 당나라 예종은 그를 발해군왕에 봉했다.  그리하여 그 후로 발해국이라 부르게 되었고, 부여, 숙신 등 10여 나라를 모두 차지하고 5경 15부 62주를 두었으니 땅이 사방 5천여리의 대제국이 되었다. ☆ 발해는 대흥안령산맥 부근이 중심 강역이었고, 5경이란 상경용천부(파림좌기부근), 중경현덕부(파림우기부근), 동경용원부(고륜기부근), 서경압록부(밀운수고 동북쪽 고북수진 부근), 남경남해부(옹우특기부근)를 말하는 것으로서 지금의 압록강 북쪽 만주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모두 만리장성이 시작된 지금의 산해관 북쪽 지역과 고대의 요동이었던 북경..

카테고리 없음 2007.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