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해부루왕 6

윤여동설 - “곤연(鯤淵)”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윤여동설 - “곤연(鯤淵)”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부여왕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으므로 산천에 기도하여 후사를 구하였는데, 어느 날 왕이 타는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자 큰 돌을 보고는 마주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그 돌을 옮겼더니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금빛 개구리형상이었다. 왕이 기뻐하며 ‘이는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주시는 것이로다’하고는 거두어 기르고 이름을 금와라 하였다. 그가 장성하자 태자를 삼았다”라고 동부여 금와왕 탄생설화가 기록되어 있는데 기록 속에서 “곤연(鯤淵)”이 언급된다. “곤(鯤)”이란 북해에 살고 있다는 전설 속의 큰 물고기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어느 때가 되면 “붕(鵬)”이라는 새로 변하여 9만리를 날아가 남쪽으로 간다고..

카테고리 없음 2015.01.10

윤여동설 - 동부여의 진짜 위치와 왕위계승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동부여의 진짜 위치와 왕위계승 - 최초공개 후한서 부여국전을 보면, “부여국은 현토의 북쪽 1천여리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 서쪽은 선비와 접하였고, 북쪽에는 약수가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부여전에도 거의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후한서에서 말하는 부여국은 시기적으로 동부여를 말하는 것이다. [후한서와 삼국지가 말해주는 동부여의 위치] 약수 선비 동부여 읍루 현토군 고구려 따라서 후한서와 삼국지에 기록되어 있는 부여의 위치를 찾으면 동부여의 위치를 찾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동부여는 과연 지금의 어디에 위치했던 것일까? 삼국유사 동부여 조를 보면, “북부여의 왕인 해부루의 대신 아란불의 꿈에 천제가 내려와서 말하기를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카테고리 없음 2011.01.29

윤여동설 - 혁거세는 어떻게 천년왕조 신라의 건국시조가 될 수 있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혁거세는 어떻게 천년왕조 신라의 건국시조가 될 수 있었을까? - 최초주장 파소(사소라고도 한다)라는 이름을 가진 동부여 공주가 어느 남자와 정을 통해 임신이 되자 그를 어찌할 수 없어 동부여에서 도망쳐 눈수, 동옥저를 거쳐 진한 나을촌에 와서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소벌도리가 그를 알고 데려다 길렀고 아이가 자라자 6부의 촌장들이 추대하여 신라의 왕위에 올렸는데 이가 곧 신라 시조 혁거세이다. 따라서 삼국유사에서 양산 아래 나정 우물 부근에서 흰 말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여자 혼자서 아이를 낳기 위해 남자들이 엎드려 절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고,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가자 거기에 자줏빛 알 한 개가 있었다는 것은 방금 태어난 어린아이가 있었다는 ..

카테고리 없음 2007.10.18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 존속설과 부흥운동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 존속설과 부흥운동 - 최초주장 우리 민족 역사에서 가장 광대한 강역을 일구었던 고구려의 멸망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 우리가 지금도 매우 넓은 강역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데 당나라 사람인 가언충이라는 사람은 고구려비기라는 예언서에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 만에 80대장에게 멸망당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다고 하고, 고구려가 멸망한 서기 668년이 건국된 지 꼭 900년이 되는 해였다고도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이상한 것은 어떻게 서기 668년이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이 되는 해라고 말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우리의 역사 상식으로는 ..

카테고리 없음 2007.10.09

윤여동설 - 삼국 건국시조 탄생설화의 새 해석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 건국시조 탄생설화의 새 해석 - 최초주장 [위 : 신라 시조 혁거세의 어머니 파소(사소라고도 한다)공주로 추정되는 천후성모상] 고구려 건국시조 추모왕의 혈통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를 보면 주몽을 "추모 또는 중해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호태왕 비문에도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추모왕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시호는 동명성왕이 아니라 추모왕이었음에 틀림없다. ☆ 삼국사기에는 주몽을 동명성왕이라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서 졸본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과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추모왕을 혼동한 결과이다. 이는 국강상광개토경 평안호태왕 비문에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동명성왕이라 기록하지 않고 추모왕이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 할 ..

카테고리 없음 2007.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