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고구려 대무신왕 5

윤여동설 - 고구려 대무신왕의 동부여 침공로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대무신왕의 동부여 침공로 - 최초공개 [독석구에 있는 옛 장성인데, 중국에서는 명대에 쌓은 장성이라 한다. 그러나 필자는 옛날 고구려 때 북방 유목민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쌓은 장성의 흔적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고구려 대무신왕과 동부여 대소왕의 악연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그를 보면, 유리왕 28년(A.D.9) 가을8월 동부여 대소왕이 사신을 보내어 왕을 책망하며 동부여를 상국으로 모실 것을 강요하자, 왕의 아들인 무휼(후일의 대무신왕)이 누란(累卵)을 이야기 하다. 유리왕 32년(A.D.13) 겨울11월 동부여가 고구려를 침공하자 무휼(후일의 대무신왕)이 군사를 숨겨 놓았다가 동부여 군사들이 학반령에 이르자 급습하여 전멸시킨다. 대무신왕 3..

카테고리 없음 2015.03.22

윤여동설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윤여동설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고구려 대무신왕에게는 호동이라는 아주 잘 생긴 왕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전해지고 있어 우리는 그들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지금까지 매우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의 사랑은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앞서 전한 왕실의 외척이었던 왕망은 서기 9년 1월 10일에 이르러 쇠약해진 전한(前漢)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나라인 신(新)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에 오르는데, 이 혼란기를 틈타 낙랑군태수(조선사람이 그 땅을 되찾아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였던 최리는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했던 한사군의 한 군이었던 전한낙랑군 땅과 낙랑동부도위 땅을 ..

카테고리 없음 2009.01.29

윤여동설 - 최리의 낙랑국은 중국 하북성 승덕시 일원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최리의 낙랑국은 중국 하북성 승덕시 일원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낙랑국(樂浪國)  전한(前漢) 때 처음으로 낙랑군(樂浪郡)을 두었다.    응소(應邵)는 이것이 "고조선국(古朝鮮國)"이라 했다.  신당서(新唐書)의 주에는, "평양성(平壤城)은 옛 한(漢)나라의 낙랑군(樂浪郡)"이라고 했다.  국사(國史 : 삼국사기)에는,  "혁거세 30년에 낙랑 사람들이 신라에 투항해 왔다. 또 제3대 노례왕(弩禮王 : 유리왕) 4년에 고구려의 제3대 무휼왕(無恤王 : 대무신왕)이 낙랑을 멸망시키니 그 나라 사람들은 대방(帶方: 북대방)과 함께 신라에 투항해 왔다.    또 무휼왕(無恤王) 27년에 광호제(光虎帝 : 후한 광무제)가 사자를 보내어 낙랑을 치고 그 땅을 빼앗아 군현을..

카테고리 없음 2009.01.23

윤여동설 - 고구려 3대 대무신왕 무휼의 일생 (2)

윤여동설 - 고구려 3대 대무신왕 무휼의 일생(2)     유리왕이 서기 18년 10월에 죽자 태자인 15세의 무휼이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이가 곧 전쟁의 신 대무신왕이다.   대무신왕이 왕위에 오른 바로 그 다음해인 서기 19년 정월에 백제의 백성 1천여 호가 귀순해 오는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때 백제에는 가뭄이 심해 패수와 대수 사이에 사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하고, 또 그 다음해인 서기 20년 3월에는 죽은 아버지 유리왕의 사당을 세운다. ☆ 삼국사기에는 이때 동명왕묘를 세웠다고 잘못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9월에는 골구천에서 사냥을 하다가 신마를 잡아 거루라고 이름 붙였고, 10월에는 동부여왕 대소가 머리는 하나요, 몸뚱이가 둘인 붉은 까마귀를 보내왔는데, 대소왕은 이를 ..

카테고리 없음 2008.09.10

윤여동설 - 고구려 대무신왕 무휼의 일생(1)

윤여동설 - 고구려 대무신왕 무휼의 일생(1)     고구려 3대왕인 대무신왕의 성은 해씨요, 이름은 무휼이다.  서기 4년에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 국내위나암에서 유리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고, 어머니는 다물국왕 송양의 작은 딸이다.  11세에 태자로 봉해졌고, 15세의 나이로 유리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의 3대 왕위에 올랐다가 재위 27년째인 서기 44년 10월에 죽어 대수촌 벌판에 묻혔다.    앞서 대무신왕의 아버지 유리왕은 기원전 19년 4월에 동부여에서 졸본으로 도망쳐 와서 고구려의 태자로 봉해졌고, 그 해 9월 고구려 건국 시조 추모왕(주몽왕)이 죽자 뒤를 이어 고구려의 2대 왕위에 올랐는데, 이때 유리왕의 나이는 40세였고 아직 혼인을 하지 못한 노총각이었다.   그리하여 왕위에 오른 다음 ..

카테고리 없음 2008.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