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마수산 7

윤여동설 - 백제의 초기강역은 지금의 하북성 도산(都山)을 중심으로 난하 동쪽, 청룡하 서쪽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초기강역은 지금의 하북성 도산(都山)을 중심으로 난하 동쪽, 청룡하 서쪽이었다 - 최초주장     백제의 건국지는 한산(漢山) 부근이었다.   처음에 비류와 온조 그리고 신하들이 한산(漢山) 부아악(負兒嶽)에 올라 도읍할 장소를 물색했는데, 신하들이 한수(漢水) 남쪽에 도읍할 것을 건의했으나 비류는 그곳을 마다하고 미추홀(弥鄒忽)로 갔고, 온조는 신하들이 건의한 한산 부근의 위례성(慰禮城)에 도읍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그를 알 수 있다.   [부아악(負兒嶽) : 어린아이를 업고 있는 형상의 산이라는 의미]   그런데 온조왕 2년(B.C.17) 조를 보면, “봄 정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말갈이 우리 북부 국경에 이어져 있고 그곳 사람들이 용기가 있고 거짓이 많으니 의당 병기..

카테고리 없음 2018.06.15

윤여동설 -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은 지금의 북경 부근, 요수는 영정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은 지금의 북경 부근, 요수는 영정하 - 최초주장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를 보면, “요동군은 진나라가 설치하였는데 유주에 속한다. 호수는 55,972호이고, 인구는 272,539명이며, 18개 현을 관할한다. 양평현,신창현,무려현,망평현,방현,후성현,요대현,요양현,험독현,거취현,고현현,안시현,무차현,평곽현,서안평현,문현,번한현,답씨현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후한서 지제23 군국5를 보면, “요동군은 낙양동북 3,60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후한서에는 요동군 이외에도 낙랑군은 낙양동북 5,000리에, 현토군은 낙양동북 4,000리에, 요서군은 낙양동북 3,300리에, 상곡군은 낙양동북 3,200리에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또 우북평군은 낙..

카테고리 없음 2013.12.02

윤여동설 - 수 양제의 고구려 침공로와 당 태종의 고구려 침공로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수 양제의 고구려 침공로와 당 태종의 고구려 침공로 - 최초주장 수 양제와 당 태종은 직접 고구려를 침공했던 사람들이다. 군사들의 출발지가 탁군(涿郡)과 정주(定州)로 달랐을 뿐 고구려 요동성(遼東城)을 향하여 진군했던 것도 같고, 진군 도중에 갈석산(碣石山)에 올랐던 것도 같으며, 결국 고구려 침공에 실패했던 것도 같다. 삼국사기 고구려 영양왕 22년(A.D.611)조를 보면, “봄2월에 수나라 양제가 조서를 내려 고구려를 치게 하였다. 여름4월에 양제의 행차가 탁군(涿郡 : 지금의 탁주시 부근)의 임삭궁(臨朔宮)에 이르니 사방의 군사들이 모두 탁군으로 모여들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4년(A.D.645) 조를 보면, “봄 정월에 당 태종이 정주(定州)를 떠나서..

카테고리 없음 2012.06.18

윤여동설 - 당 태종의 고구려 요동(遼東) 침공로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당 태종의 고구려 요동(遼東) 침공로 - 최초공개  [당 태종이 고구려 요동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진을 쳤다는 마수산. 산의 형태가 말의 머리모양을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당 태종이 서기 645년에 고구려를 침공했던 침공로는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었고, 진군 도중에 당 태종이 올랐다는 갈석산의 위치 역시 아직 오리무중이며, 당 태종이 고생하며 지났다는 요택이 어디를 말하는지 분명치 않았으며, 당나라군이 요수를 건너 진을 쳤다는 마수산(말머리산) 역시 아직도 그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당 태종이 군사들을 이끌고 출발한 곳은 정주(定州)였다.   그리하여 반도사관론자들은 당 태종이 지금의 하북성 보정시 정주를 출발하여 동북쪽..

카테고리 없음 2012.05.19

윤여동설 - 백제의 마수산(마수성)은 하북성 평천(平泉)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마수산(마수성)은 하북성 평천(平泉) - 최초주장 [마수산(馬首山] : 하북성 평천 부근의 말머리 형상 지형] 당태종 고구려 침공 때 주둔했던 마수산(馬首山)을 찾은 김에 우리의 백제에도 동일한 이름의 마수산(馬首山)이라는 산이 있었으므로 백제의 마수산도 찾아보기로 하자.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8년(B.C.11) 7월 조를 보면, “축마수성(築馬首城)”이라고 하여 이때 마수성이라는 성을 쌓았음을 알 수 있고, 또 다루왕 3년(A.D.30) 10월 조를 보면, "동부 흘우가 말갈과 마수산(馬首山) 서쪽에서 싸워 승리하여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다. 왕이 기뻐하여 흘우에게 상으로 말10마리와 벼5백석을 주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백제의 마수산이 말갈과의 접경 지역이었음을 ..

카테고리 없음 2010.10.18

윤여동설 - 당 태종 고구려 침공시의 주둔지 마수산(馬首山)을 찾았다

윤여동설 - 당 태종 고구려 침공시의 주둔지 마수산(馬首山 : 말머리산)을 찾았다 [마수산으로 비정되는 곳으로서 말이 구유에 입를 넣고 먹이를 먹고 있는 것 같다. 하필 그곳에 도로가 나고 건물이 지어져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서기 645년 당 태종은 고구려 침공을 하기 위..

카테고리 없음 2010.10.11

윤여동설 - 당 태종이 고생하며 건넌 "요택(요동늪)"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당 태종이 고생하며 건넌 “요택(요동늪)”을 찾았다 - 최초공개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와 철군할 때 고생 하며 건넜다고 전해지는 요택(요동늪)은 과연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요택이 지금의 요하 하류의 저습지를 말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엉터리 중의 엉터리 주장이다. 왜냐하면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요하를 말하는게 아니라 북경 서쪽을 흐르는 영정하이었고, 북경 부근이 옛 요동군이었기 때문이다. 서기 645년 당 태종의 고구려 침공 기록을 보면, 이때 당 태종은 정주(定州)에서 출발하여 요동을 향하여 가다가 (필자주 : 이때 갈석산에도 올랐다고 한다) 요택(요동늪)을 통과하고, 요수(遼水)를 건너 요동성에 도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러한 기록을..

카테고리 없음 2010.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