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북경 고대 요동설 6

윤여동설 – 한사군(漢四郡)과 삼한(三韓)의 진짜위치와 가짜위치 비교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한사군(漢四郡)과 삼한(三韓)의 진짜위치와 가짜위치 비교 - 최초공개    우리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강하게 의문을 갖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한4군(漢四郡)과 삼한(三韓)의 위치문제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한4군이 지금의 어디에 위치했었느냐에 따라 지리적으로 그 남쪽에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삼한 즉 마한, 진한, 변한도 어디에 위치했었느냐가 정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반도 북부에 한4군이 위치했었다면 삼한 역시 한반도 남부에 위치했었다는 말이 되고,   발해 북쪽 대륙에 한4군이 위치했었다면, 그와 접경하고 있던 우리의 삼한도 발해 북쪽에 위치했다고 해야하고, 또한 삼한의 뒤를 이은 삼국과 가야 그리고 삼국의 뒤를 이은 고려와 발해국도 발해 북쪽 대륙에 ..

카테고리 없음 2024.11.16

윤여동설 – 고구려 동천왕이 밀우에게 식읍으로 주었던 거곡(巨谷) 청목곡(靑木谷)과 유옥구에게 식읍으로 주었던 압록(鴨淥) 두눌하원(杜訥河原)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윤여동설 – 고구려 동천왕이 밀우에게 식읍으로 주었던 거곡(巨谷) 청목곡(靑木谷)과 유옥구에게 식읍으로 주었던 압록(鴨淥) 두눌하원(杜訥河原)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1대 동천왕 20년(A.D.246) 조를 보면,  “가을8월 위(魏, 曹魏)나라에서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毌丘儉)을 보내 1만여명으로서 현토(玄菟)로 나와 침입하였다. 왕이 보, 기병 2만명을 거느리고 비류수(沸流水) 강가에서 맞받아쳐 그를 쳐부수고 적군 3천여명의 머리를 베었다.   다시 군사를 인솔하고 양맥의 골짜기(梁貊之谷)에서 싸워 또 적군을 쳐부수어 3천여명을 죽이고 사로잡았다.   왕이 모든 장수들에게 ”위나라의 대병이 도리어 우리의 소병만도 못하며, 관구검이 비록 위나라의 명장이지만 오늘에..

카테고리 없음 2024.04.20

윤여동설 –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는 한반도(韓半島)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따라서 이 기록을 한반도에 대입시켜 해석하는 것은 모두 엉터리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는 한반도(韓半島)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따라서 이 기록을 한반도에 대입시켜 해석하는 것은 모두 엉터리 - 최초주장 [대륙역사강역표시도] 우리 고대 역사해석에 있어 뜨거운 화두는 싫던 좋던 고대의 요동군(遼東郡)과 한사군(漢四郡)의 위치를 정확히 찾는 일이다. 고대의 요동군을 찾으면 고구려와 중국 세력들이 그 땅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었던 장소가 과연 지금의 어디였는지를 알 수 있게 되고, 한사군을 찾으면 옛 고조선(古朝鮮)의 강역과 도읍이었던 왕검성(王儉城)이 지금의 어디였는지를 찾을 수 있게 되며, 또 고구려의 평양성(平壤城), 고려의 서경(西京)이 지금의 어디였는지를 알 수 있게 되고, 백제, 신라, 가야의 위치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우..

카테고리 없음 2023.01.06

윤여동설 – 요동(遼東)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던 고구려 평양성(平壤城)과 백제 웅진성(熊津城)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요동(遼東)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던 고구려 평양성(平壤城)과 백제 웅진성(熊津城)의 위치 – 최초공개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기념 [위 :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지역을 말하는 것으로서 고구려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는 북경 동북쪽 231km로 나타난다. 고대의 10리는 약 2.3km로서 1천여리에 해당한다]      [위 : 고구려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 조감도]  [위 : 고구려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 성벽]     [위 : 고구려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의 정문 려정문(麗正門)]     [위 : 고구려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 현판]  [위 : 고구려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승덕시 피..

카테고리 없음 2022.02.04

윤여동설 - 고려 윤관장군이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9성을 쌓았던 곳은 옛 북옥저(北沃沮) 땅이었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려 윤관장군이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9성을 쌓았던 곳은 옛 북옥저(北沃沮) 땅이었다 – 최초공개 고려는 1107년 10월에 이르러, 여진(女眞) 정벌을 위해 17만의 별무반을 출동시키기로 결정하고, 윤관 장군을 원수로, 오연총을 부원수로 삼는다. 그리고 여진 정벌을 위해 출병하는 장수들을 전송하기 위하여 예종은 11월9일 개경을 출발하여 15일에 서경에 도착했고, 12월에 이르러 왕은 윤관 장군과 오연총에게 부월을 하사함으로써 군사들의 출발을 명령했다. 그리하여 왕의 명을 받은 윤관장군은 별무반을 이끌고 북쪽으로 진군하여 여진을 축출하고 그곳에 아홉 개의 성을 쌓는다. 소위 고려 동북9성인데, 영주성(英州城)을 몽라골현(몽라골령이라고도 한다) 아래에 9백50칸 규모로 쌓았고, 웅주성(雄州城)..

카테고리 없음 2021.12.05

윤여동설 - 해두국(海頭國)은 어디에 위치했을까?

윤여동설 - 해두국(海頭國)은 어디에 위치했을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5년(A.D.22) 조를 보면,  “여름4월 부여왕 대소의 동생이 갈사수(曷思水) 가에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다.   이는 금와왕의 막내아들인데 그의 이름은 실명되어 알 수 없다.  앞서 그는 대소왕이 피살되자 장차 나라가 망할 것으로 짐작하고 자기를 따르는 무리 1백여명과 함께 압록곡에 이르렀을 때 해두왕(海頭王)이 사냥 나온 것을 보고 그를 죽이고 그 백성을 빼앗았었다.  이때에 이르러 (갈사수 가에) 도읍을 정하고 갈사왕이 되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압록강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해두국이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갈사수 역시 압록강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강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갈사국은 고구..

카테고리 없음 2011.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