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북평 6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 때 쌓은 요서10성의 축성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 때 쌓은 요서10성의 축성 위치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2년(A.D.49) 조를 보면,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우북평이라고도 한다),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하였더니 요동태수 채동이 은의와 믿음으로 대하므로 다시 화친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그로부터 6년 뒤인 태조대왕 3년(A.D.55) 조를 보면, “봄2월에 요서에 10개 성을 쌓아 한나라 병사(한나라의 침공)에 대비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모본왕 때 북평(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했을 때 요동군과 요서군의 일부지역을 후한으로부터 빼앗았음을 알 수 있고, 태조대왕 때 이르러 그곳을 수비하기 위하여 요서지역에 10개의 성을 쌓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물론 이때 태조대왕은..

카테고리 없음 2012.06.10

윤여동설 - 고죽국(孤竹國)과 백이숙제가 굶어 죽은 수양산(首陽山)의 위치

윤여동설 - 고죽국(孤竹國)과 백이숙제가 굶어 죽은 수양산(首陽山)의 위치 백이숙제의 나라 고죽국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일까? 주(周) 무왕이 은(殷)나라를 멸망시키자 기자(箕子)는 자신을 따르는 은나라 유민(遺民)들을 이끌고 고죽국(孤竹國)으로 갔고, 그러자 주 ..

카테고리 없음 2012.04.29

윤여동설 -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이 어디인지 아직까지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도 아닌 북연의 용성(화룡)을 찾으려 애쓰는 것은 그곳이 고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성(柳城)이고, 고구려 장수왕 때의 고구려 서쪽 경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용성의 위치를 찾으면 옛날 춘추전국시대에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하여 1천여리(2천여리라고도 한다)의 땅을 빼앗아 설치했다는 연5군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되어 고조선의 옛 땅이 어디까지였는지도 알 수 있어 우리의 고대역사 해석을 지금과는 전혀 새롭게 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고대역사에서 지금까지 확실하게 밝히지 못했던 잃어버린 고리 하나를 찾아 역사 복원에 한발 가까..

카테고리 없음 2010.06.14

윤여동설 - 지금의 북경은 옛 연경, 옛 북평이 아니라 고대의 요동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지금의 북경은 옛 연경, 옛 북평이 아니라 고대의 요동이었다 - 최초주장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북경과 연경을 동일한 장소로 이해하지만 사실 그것은 틀린 것이다.   북평은 옛날 중국 세력들이 서안이나 낙양 등에 도읍하고 있을 때 그 동북쪽인 하북성 평원 지역을 일컫던 이름이었는데, 춘추전국시대부터 선비족인 연나라가 차지하고 도읍을 하게 되어 연경(燕京)이라고 불리웠던 곳이다.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등 북방세력들이 흥기하여 남하한 후 연경을 차지하고  도읍을 건설했는데, 요나라는 남경석진부라 했고, 금나라는 중도대흥부라 했으며, 원나라는 대도라 했고, 후일 명나라의 영락제가 북경을 건설하고 “북경순천부”라 명명하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연경”이라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렇게 ..

카테고리 없음 2009.09.22

윤여동설 - 연운 16주는 우리 고조선의 옛 땅이었다 -최초주장

윤여동설 - 연운16주는 우리 고조선의 옛 땅이었다 - 최초주장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하여 빼앗아 설치했다는 연5군 지역이 천년 후쯤 후진이 거란에게 할양했던 연운16주와 거의 동일한 지역이라는 것이 드디어 필자에 의해 밝혀졌다.   이는 고조선의 서쪽 경계가 어디까지였느냐를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역사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연운 16주는 후당의 금군장관으로서 하동절도사와 북경유수를 겸하고 있던 석경당이 936년에 거란의 지원을 받아 후진(後晉)을 세운 대가로 거란에 할양한 땅인데, 할양 이후 그 땅을 놓고 동이족과 한족이 세운 나라들 사이에 오랜 세월 분쟁의 불씨가 되었던 곳이다.  ★ 산서성 중북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이 장성의 흔적을 진시황 때..

카테고리 없음 2009.08.12

윤여동설 - 고구려가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까지 진출한 기록의 진실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가 우북평·어양·상곡·태원까지 진출했다는 기록은 역사적 사실일까? - 최초주장    [위 : 요동 표시가 된 곳이 지금의 북경이다.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 일원이었고, 고구려와 백제는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여러 사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모본왕 2년(A.D.49) 조를 보면,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후한)의 북평(우북평의 오기),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했더니 요동태수 채동이 은의로서 대하므로 다시 화친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 기록의 사실여부를 놓고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고구려의 도읍 국내성이 지금의 한반도 압록강 북쪽 집안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때 고구려가 지금의 요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 멀리 북경..

카테고리 없음 2007.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