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유리왕 5

윤여동설 -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루지 못한 사랑

윤여동설 - 고구려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왕자와 낙랑왕 최리의 딸 낙랑공주의 이루지 못한 사랑 [호동왕자와 낙랑공주가 밤을 지새웠을 낙랑국왕성 전경도] 우리는 지금 고구려 대무신왕의 맏아들인 호동왕자와 낙랑왕 최리의 딸인 낙랑공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를 매우 안타깝게 ..

카테고리 없음 2008.09.05

윤여동설 - 대무신왕 - 무력을 귀신처럼 휘두른 전쟁의 신

대무신왕 - 무력을 귀신처럼 휘두른 전쟁의 신 고구려 3대 대무신왕의 아버지는 유리왕이요, 어머니는 다물국왕 송양의 작은 딸로서 유리왕 23년(A.D.4)에 태어났다. 유리왕은 처음에 송양의 큰딸을 왕비로 삼았는데, 첫 아들인 도절을 낳고는 그 후유증으로 바로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 뒤 화희와 치..

카테고리 없음 2008.09.03

윤여동설 - 주몽과 유리가 동부여에서 졸본으로 도망친 진짜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주몽과 유리가 동부여에서 졸본으로 도망친 진짜 이유 - 최초주장 고구려의 건국시조 주몽은 동부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유화부인이고, 아버지는 북부여 해모수 천제의 증손자인 해불리지(필자주 : 혹시 해불리지의 아들의 오기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이다. 해불리지가 압록강가를 지나다가 하백(어부)의 딸인 유화를 겁탈하여 임신시키게 되고, 유화의 아버지인 하백은 시집도 안간 처녀가 임신했다 하여 자기 집에서 내쫓아버린다. 그리하여 유화는 동부여로 가서 주몽을 낳게되고 그곳에서 살게된다. 세월은 흘러 주몽은 자라 동부여 왕궁의 말지기가 되고, 예씨라는 여인과 혼인을 하였는데, 예씨가 임신 중에 있을 때 갑자기 주몽이 동부여에서 졸본으로 도망치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동..

카테고리 없음 2008.08.31

윤여동설 - 해(解)씨와 고(高)씨 두 성씨로 이어진 고구려왕들의 원래 성씨와 이름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해(解)씨와 고(高)씨 두 성씨로 왕위가 이어진 고구려왕들의 원래 성씨와 이름 - 최초공개 시조 추모왕(鄒牟王) : 해추모(解鄒牟), 해주몽(解朱蒙), 해중해(解衆解) ※ 호태왕 비문에 추모왕이라 기록되어 있어, 추모란 이름이 아니라 시호일 가능성도 있고, 삼국사기에는 주몽이 나라를 세워 국호를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따라서 고(高)씨로서 성씨를 삼았다고 했으나, 실제 초기 고구려 왕실의 성씨는 해모수의 성씨인 "해(解)"씨였고, 고(高)씨로 왕실의 성씨가 바뀐 것은 6대 태조대왕 때부터이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주몽의 시호를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 기록한 것은 졸본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과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추모왕을 혼동한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이름을 추몽(鄒蒙)이라고도 기록하고 있고, 단..

카테고리 없음 2008.08.25

윤여동설 - 태조대왕을 알면 고구려의 초기역사가 보인다(2)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태조대왕을 알면 고구려의 초기역사가 보인다(2) - 최초주장 고구려의 왕권교체 - 연노부(소노부)와 계루부 고구려 705년 역사에서 왕위 계승에 있어 성씨가 바뀐 시기로 추정해 볼 수 있는 때는 해씨인 모본왕에서 고씨인 태조대왕으로 왕위가 이어지는 시기 밖에는 없다. 따라서 모본왕 이전은 해씨였을 것이고, 태조대왕 이후는 고씨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삼국사기에도 5대 모본왕을 해우 또는 해애루로 기록하고 있고, 4대 민중왕을 해색주, 3대 대무신왕을 대해주류왕이라고도 한다라고 하여 그의 성명이 해주류였음을 확인해 볼 수 있고, 또 유리왕은 그 아버지 주몽의 원래 성씨가 해씨였으므로 그 아들인 유리왕 역시 해씨인 것이다. ☆ 주몽은 북부여의 건국시조 해모수의 고손자이므로 당연히 그의 원래 ..

카테고리 없음 2008.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