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진장성 6

윤여동설 - 태강지리지는 왜 갈석산(碣石山)에서 장성(長城)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했던 것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태강지리지는 왜 갈석산(碣石山)에서 장성(長城)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했던 것일까? - 최초주장    춘추전국시대 진장성(秦長城)은 농서(隴西)에서부터 북지(北地)를 지나 상군(上郡)까지였다고 하고,  ☆ 농서는 감숙성 난주부근, 북지는 영하회족자치구, 상군은 섬서성 북부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조장성(趙長城)은 대(代)에서부터 고궐(高闕)까지 쌓고 운중(雲中), 안문(雁門), 대군(代郡)을 설치했다고 하였으며, ☆ 지금 산서성 태원 북쪽에 운중산이 있고, 안문관이 있으며, 대현도 있다. 조장성을 지금의 태원 북쪽에 쌓았음을 알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 연장성(燕長城)은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까지 쌓고, 5군 즉 요동군, 요서군,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을 설치했다고..

카테고리 없음 2015.01.24

윤여동설 - 위만의 옛 도읍 험독(險瀆)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위만의 옛 도읍 험독(險瀆)의 위치 - 최초주장 사기 조선열전과 전한서 조선전을 보면, “燕王盧綰反 入匈奴 滿亡命 聚黨千餘人 椎結蠻夷服而東走出塞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障”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석해 보면, “연왕 노관이 (한나라에) 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위만)도 망명하였는데, 무리 천여명을 모아 추결을 하고 만이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를 넘고 패수를 건너 (조선왕 준에게 망명하고 돌아와 준이 배치해 준), 진고공지상하장에서 살았다” 라는 뜻이다. ☆ 위략에 “(조선왕) 부가 죽고 그 아들 준(準)이 왕위에 올랐다. 그 뒤 20여년이 지나 진항(진승과 항우)이 기병하여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연(燕), 제(齊), 조(趙)의 백성들이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점점 준에게 망명해오자 준..

카테고리 없음 2013.03.24

윤여동설 - 춘추전국시대에 쌓았던 진장성(秦長城), 연장성(燕長城), 조장성(趙長城)을 찾았다

윤여동설 - 춘추전국시대에 쌓았던 진장성(秦長城), 연장성(燕長城), 조장성(趙長城)을 찾았다 사기 흉노전을 보면, “진(秦)나라가 농서(隴西), 북지(北地), 상군(上郡)을 차지하고 장성을 쌓아 호(胡)를 막았다”고 하였고, : 이것이 춘추전국시대 진장성이다. ☆ 농서는 농산(隴山)의 서쪽지역으로서 지금의 감숙성 난주 부근을 말하고, 북지는 영하회족자치구, 상군은 섬서성의 북쪽 유림시 부근을 말한다. “조 무령왕(B.C.325-299)이 또한 풍속을 바꾸어 호의 복장을 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 북쪽으로 임호, 누번을 격파하고 장성을 쌓아 대(代)에서부터 음산(陰山)기슭을 따라 고궐(高闕)에 이르기까지 새(塞)를 만들고 운중(雲中), 안문(雁門), 대군(代郡)을 설치하였다"고 하였으며, : 이것이 춘..

카테고리 없음 2013.03.16

윤여동자료실 - 사기 흉노열전 번역문

윤여동자료실 - 사기 흉노열전(번역문) 흉노(匈奴)는 그 선조가 하후씨(夏后氏)의 먼 후손인 순유(淳維)라고 한다. 당우(요순) 이전에는 산융(山戎), 험윤(獫狁), 훈육(葷粥)이라 불렀다. 북만에 거주하며 가축을 따라 목축하며 옮겨 다닌다. 그들의 가축으로 많은 것은 말, 소, 양이고, 기이한 가축은 낙타, 당나귀, 노새, 버새, 도도, 탄해 등이 있다. 물과 풀을 쫓아 옮겨 다니며 성곽과 일정한 거처가 없고 농사짓지 않으나 각기 나뉘어진 영역이 있다. 글자가 없고 말로써 약속한다. 어린 아이도 능히 양을 타고 활을 당겨 새나 쥐를 쏘며, 조금 더 자라면 여우나 토끼를 쏘아 잡아먹는다. 장정들의 힘은 능히 활을 당길 수 있고 모두 무장기병이 된다. 그들의 풍속은 여유로울 때는 가축을 기르며, 짐승 사냥..

카테고리 없음 2009.08.23

윤여동설 - 연운 16주는 우리 고조선의 옛 땅이었다 -최초주장

윤여동설 - 연운16주는 우리 고조선의 옛 땅이었다 - 최초주장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하여 빼앗아 설치했다는 연5군 지역이 천년 후쯤 후진이 거란에게 할양했던 연운16주와 거의 동일한 지역이라는 것이 드디어 필자에 의해 밝혀졌다.   이는 고조선의 서쪽 경계가 어디까지였느냐를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역사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연운 16주는 후당의 금군장관으로서 하동절도사와 북경유수를 겸하고 있던 석경당이 936년에 거란의 지원을 받아 후진(後晉)을 세운 대가로 거란에 할양한 땅인데, 할양 이후 그 땅을 놓고 동이족과 한족이 세운 나라들 사이에 오랜 세월 분쟁의 불씨가 되었던 곳이다.  ★ 산서성 중북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이 장성의 흔적을 진시황 때..

카테고리 없음 2009.08.12

윤여동설 - 고조선이 연나라 진개에게 빼앗긴 땅은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조선이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진개에게 빼앗긴 땅은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주장 전국책 권제29 연1을 보면, "蘇秦將爲從 北說燕文候曰 燕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 南有呼 易水 地方二千餘里 帶甲數十萬 車七百乘 騎六千疋 粟支十年 南有碣石雁門之饒 北有棗栗之利 民雖不由田作 棗栗之實 足食於民矣 此所謂天府也 (소진이 장래 합종을 하기 위해 북쪽으로 가서 연나라 문후에게 말하기를, 연나라는 동쪽으로 조선요동이 있고, 북쪽으로는 임호누번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운중구원이 있고, 남쪽으로는 호타역수가 있어 땅이 사방 2천리입니다..................)"라고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연나라의 중심 강역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하는데, 지금의 산서성 북부와 하북성 남부에 이르는 지역이다. [..

카테고리 없음 2009.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