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해부루의 동부여 5

윤여동설 – 세 부여(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의 삼각관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세 부여(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의 삼각관계 – 최초주장 단군왕검 천제 해씨 해씨 넷째아들 해모수 |→ 해모수 북부여 → 해부루 동부여(가섭원부여) 부여 → 부여 → | |→ 동명왕 졸본부여 | → 추모 고구려(해씨,고씨) 부여씨 | | → 온조 백제(부여씨) ☀ 단군왕검의 넷째 아들이었던 부여씨(扶餘氏)의 맥이 졸본부여의 동명왕과 백제 온조왕으로 이어졌으니 백제가 고조선(왕검조선)의 정통맥을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역사상 나타나는 부여(扶餘)는 넷이다. 고조선의 도읍 왕검성의 서쪽방향에 위치했으며, 단군왕검의 넷째 막내아들 부여(扶餘)에게 봉했던 원래의 부여(扶餘)가 있었고,[필자주 : 하북성 장가구시 일원] 고조선(왕검조선) 말기에 왕실의 외척으로 보이는 해모수(解慕漱)가 기원전..

카테고리 없음 2021.12.18

윤여동설 - 졸본부여와 고구려의 건국지 졸본(卒本 : 홀본)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졸본부여와 고구려의 건국지 졸본(卒本 : 홀본)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 최초공개     졸본[卒本 : 忽本(홀본)이라고도 한다)은 동명왕(東明王)이 세운 졸본부여의 건국지이기도 하고, 주몽이 세운 고구려의 건국지이기도 한 곳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졸본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들이 있었을 뿐 사실 그 정확한 위치가 밝혀지지 않고 있었는데, 필자가 지금 북경의 북쪽에 위치한 중국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이 바로 졸본임을 밝혀 냈다.   지금 후성진은 그 북쪽에 후성적벽(后城赤壁) 또는 적수애(滴水崖)라고 부르는 절벽으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산이 있고, 공기 맑고, 풍광 또한 아름다워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있는데, 그곳의 지세를 보면..

카테고리 없음 2019.03.24

윤여동설 - 해모수의 북부여(北夫餘) 도읍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赤城縣)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해모수의 북부여(北夫餘) 도읍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赤城縣) - 최초주장 [해모수의 북부여 도읍으로 추정되는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 부근의 지형] [부여와 북부여의 도읍성으로 추정되는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赤城縣) 시가지 : 동경115도49분 북위40도54분] [적성고루] 부여(夫餘, 扶餘)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나라로서 원래 고조선(왕검조선) 단군왕검의 넷째 아들인 부여에게 봉해진 영지였다. 부여는 왕검성(현 하북성 승덕시의 열하행궁)의 서쪽방향에 위치했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찾고보니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일대가 그 강역이었고, 도읍은 지금의 적성(赤城)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고조선 말기 어수선한 때 해모수가 그 땅을 차지하고 왕위에..

카테고리 없음 2019.02.16

윤여동설 - 부여(동부여)의 녹산(鹿山)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부여(동부여)의 녹산(鹿山)을 찾았다 - 최초공개 부여(동부여)가 녹산(鹿山)이라는 산 일원에 위치했음은 사서의 기록으로 전해져 알려졌다. 그리하여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동부여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하여 기록 속의 녹산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 이르러 이름만 전해진 그 녹산을 어찌 쉽게 찾을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많은 사람들은 동부여가 위치한 적도 없는 엉뚱한 한반도의 백두산 북쪽에서 동부여를 찾으려 했고, 녹산을 찾으려 했으니 아무도 찾아낼 수가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필자는 일찌감치 우리의 삼국과 가야가 한반도가 아닌 지금의 발해 북쪽 북경 부근에서 건국되었다가 멸망했음을 파악하고 있었고, 따라서 동부여 역시 한반도 북쪽이 아닌 북..

카테고리 없음 2017.09.01

윤여동설 - 동부여는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동부여는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위 : 내몽골 정람기 동북쪽에 위치한 대형고성터. 지금 중국에서 원 상도유지라고 하고 있으나 사실 이곳은 옛 예성(濊城)이었을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위 : 내몽골 정람기에 위치한 고성터로서 지금 사랑성(四郞城)이라 부르고 있다]    부여는 아주 오래된 나라의 이름이다.  옛날 고조선의 건국시조 단군 왕검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장자는 부루, 둘째는 부소, 셋째는 부우, 막내는 부여(夫餘, 扶餘)였는데, 단군왕검이 왕검성의 서쪽지역을 부여에게 영지로 내려주게 되어 나라 이름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부여는 고조선이 멸망하자 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북부여는 고구려 왕실에 혈통..

카테고리 없음 2008.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