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화룡 5

윤여동설 - 전국시대 연나라의 태자 단(丹)과 형가(荊軻)가 살았던 곳은 지금의 어디일까?

윤여동설 - 전국시대 연나라의 태자 단(丹)과 형가(荊軻)가 살았던 곳은 지금의 어디일까? [전국책 권제29 연1을 보면, "소진이 장차 합종을 하기 위하여 북쪽으로 유세를 떠나 연 문후에게 말하기를 "연나라는 동쪽으로 조선, 요동이 있고, 북쪽으로 임호, 누번이 있으며, 서쪽으로 운중, 구원이 있고, 남쪽으로 호타, 역수가 있으며, 땅이 사방 2천리입니다.................남쪽으로 갈석, 안문의 풍요로움이 있고, 북쪽으로 대추, 밤의 이익이 있어 만약 무슨 일이 있어 농사를 짓지 못한다 하여도 대추와 밤을 먹는다면 백성들의 먹거리가 족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전국시대 연나라의 위치를 비정해 볼 수 있습니다.] 형가(荊軻)는 전국시대 연나라 태자 단(丹)과 공모한 후 진왕을..

카테고리 없음 2013.05.10

윤여동설 - 북연의 풍홍이 고구려로 망명하여 머물렀던 평곽과 북풍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북연의 풍홍이 고구려로 망명하여 머물렀던 평곽과 북풍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수왕 15년(A.D.427) 조를 보면,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에 이르러 고구려 장수왕이 황성으로부터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겼음을 알 수 있고, 장수왕 23년(A.D.435) 조를 보면, “위(북위)나라 사람들이 연나라를 빈번히 공격하니 연(북연)나라에서는 위험이 날로 절박하였다. 연나라 임금 풍홍이 ‘만일 사태가 위급하게 되면 동쪽의 고구려에 잠시 의탁하고 있다가 후일을 도모해야겠다’ 생각하고는 비밀리에 상서 양이를 우리나라에 보내 망명을 요청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장수왕 24년(A.D.436) 조에는, “여름 4월에 위나라가 연나라의 백랑성(..

카테고리 없음 2012.10.19

윤여동설 - 실위는 울란바토르 동쪽에 위치했던 나라

윤여동설 - 실위는 울란바토르 동쪽에 위치했던 나라 실위(失韋 또는 室韋로도 쓴다)는 지금 몽골의 선조라 한다. 위서(후위서, 북위서) 열전 실위 조를 보면, “실위국은 물길(필자주 : 거란) 북쪽 천리에 있는데, 낙양에서 6천리 떨어져 있다. 길을 나서 화룡에서 북쪽으로 천여리를 가면 거란국에 들어서고, 또 북쪽으로 10일을 가면 철수에 이르고, 또 북쪽으로 3일을 가면 개수가 있고, 또 북쪽으로 3일을 가면 독료산이 있는데, 그 산은 높고 크며 둘레가 3백여리이다. 또 북쪽으로 3일을 가면 큰 강이 있는데 이름은 굴리이다. 또 북쪽으로 3일을 가면 인수에 이르고, 또 북쪽으로 5일을 가면 그 나라에 도착한다(失韋國 在勿吉國北千里 去洛陽六千里 路出和龍北千餘里 入契丹國 又北行十日至啜水 又北行三日有蓋水, ..

카테고리 없음 2012.08.20

윤여동설 - 전연 모용황의 고구려 환도성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전연 모용황의 고구려 환도성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방산 유리하진 부근의 고죽성터와 용성(화룡성)터 추정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6대 고국원왕 12년(A.D.342) 조를 보면, “봄2월 환도성을 보수하고 또 국내성을 쌓았다. 가을 8월 왕이 환도성으로 옮겨왔다. 겨울 10월 연나라(전연) 임금 황(모용황)이 용성(龍城: 화룡)으로 도읍을 옮겼다. 입위장군 한(모용한)이 황(모용황)에게 청하기를 ‘고구려를 먼저 빼앗은 다음 우문(우문선비)을 쳐부숴야만 중원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고구려로 가는 길은 두 길이 있는데, 북쪽 길은 평탄하고 넓으며(?), 남쪽 길은 험하고 좁기 때문에(?) 군사들이 북쪽(?) 길로 가자고 하였다. 한이 말하기를 ‘적국이 우리의 대군이 반드시..

카테고리 없음 2010.07.12

윤여동설 -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이 어디인지 아직까지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도 아닌 북연의 용성(화룡)을 찾으려 애쓰는 것은 그곳이 고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성(柳城)이고, 고구려 장수왕 때의 고구려 서쪽 경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용성의 위치를 찾으면 옛날 춘추전국시대에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하여 1천여리(2천여리라고도 한다)의 땅을 빼앗아 설치했다는 연5군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되어 고조선의 옛 땅이 어디까지였는지도 알 수 있어 우리의 고대역사 해석을 지금과는 전혀 새롭게 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고대역사에서 지금까지 확실하게 밝히지 못했던 잃어버린 고리 하나를 찾아 역사 복원에 한발 가까..

카테고리 없음 2010.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