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황성 5

윤여동설 - 고구려 초기의 일식관측지는 북경 연경(延慶) 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초기의 일식관측지는 북경 연경(延慶) 부근 - 최초주장                     [위: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  [조선초에 고구려 석각천문도를 바탕으로 다시 제작했다는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조선 초에 제작된 돌에 새긴 천문도이다.   그런데 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구려 평양성에 석각천문도가 있었는데 전쟁통에 잃어버렸고 사본만이 전해져 이를 바탕으로 조선초에 새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고구려 평양성에 돌에 새긴 천문도가 설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양부 고적 조를 보면, “첨성대 유지(遺址)가 평양부 남쪽 3리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 고구려에서 석각천문도를 바로 ..

카테고리 없음 2011.02.12

윤여동설 - 호태왕비의 원래 위치는 하북성 승덕시 부근인가?

윤여동설 - 호태왕비의 원래 위치는 하북성 승덕시 부근인가? 고구려의 도읍 졸본, 국내성, 환도성은 지금의 북경 부근이고, 평양성(平壤城), 황성, 장안성은 한반도의 북한 평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중국 길림성 집안을 고구려의 국내성이라 하나 이는 잘못된 것이고, 그곳의 태왕릉이라는 고총 역시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능이 아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광개토태왕은 고구려 19대 왕으로서 16대 고국원왕의 손자였다. 고구려의 도읍 이전 기록을 살펴보면, 고구려는 졸본에서 건국되어 2대 유리왕 22년(A.D.3)에 국내(국내위나암, 국내성)로 도읍을 옮겼다가 10대 산상왕 13년(A.D.209)에 다시 환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런데 ..

카테고리 없음 2011.02.06

윤여동설 - 고구려 장안성(長安城) 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장안성(長安城)의 위치 - 최초주장    고구려 20대 장수왕이 황성으로부터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긴 후 25대인 평원왕 때에 이르러 고구려는 또 다시 장안성(長安城)으로 옮기게 된다.  삼국사기 평원왕 28년(A.D.586) 조를 보면, "移都長安城(장안성으로 도읍을 이사했다)"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어 이때 장안성으로 옮겼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렇다면 고구려는 장수왕이 평양성으로 옮긴 427년부터 586년까지 160년간 평양성에 도읍한 후 이때 다시 장안성으로 옮겼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평양성과 장안성은 바로 이웃해 있었다고 보여지므로 평원왕은 같은 평양시내에 또 하나의 왕궁인 장안성(장안궁)을 짓고 그곳으로 옮겨 살았을 것이다.     하여튼 이때의 국제정세는 수나라가 ..

카테고리 없음 2008.08.04

윤여동설 - 고구려 황성(黃城)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황성의 위치 - 최초공개     고국원왕은 서기 342년 8월 평양성으로부터 환도성으로 옮겨 살았는데, 그 해 11월 연나라 모용황의 침공을 받고 환도성을 함락 당하고, 어머니인 태후 주씨와 왕비가 포로로 잡혀가고 선왕의 유골을 탈취 당하게 되자 그 다음 해인 343년 7월에 평양 동쪽의 황성으로 옮겨 살게 된다.   삼국사기에는 황성(黃城)의 위치에 대하여 "지금의 서경 목멱산 가운데에 있었다" 라고 주를 달아 놓았는데, 고려 때의 서경이란 평양을 말하는 것이다.  삼국사기 기록대로라면 이때 고국원왕이 환도성을 함락 당하고 평양성이 아닌 평양의 동쪽 목멱산에 위치한 황성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고국원왕은 334년 8월에 평양성을 증축해 놓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환..

카테고리 없음 2008.08.01

윤여동설 - 고구려 왕릉들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조성했을까?

윤여동설 - 고구려 왕릉들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조성했을까?                                       우리는 지금 고구려가 28명의 왕들이 왕위를 이었던 것은 알고 있으나 확실한 고구려 왕릉은 한곳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평양의 고구려 왕릉을 추모왕릉(주몽왕릉)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북한 학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고, 집안의 태왕릉을 광개토왕릉, 장군총을 장수왕릉이라 하고 있으나 이 역시 확실한 것은 아니다.   보장왕의 능은 당나라 장안에 조성했다고 했으므로 실제 고구려 강역 내에는 27명의 왕릉만이 조성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요녕성 환인을 졸본이라 했고, 길림성 집안을 국내성이라 했으며, 북한 평양을 평양성, 황성, 장안성이라 ..

카테고리 없음 2008.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