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濊貊 5

윤여동설 - 우리 역사에 예맥(濊貊)이라는 나라는 없었고 “예(濊)”와 “맥(貊)”이 각각 존재했었다

윤여동설 - 우리 역사에 예맥(濊貊)이라는 나라는 없었고 “예(濊)”와 “맥(貊)”이 각각 존재했었다 많은 사람들은 예(濊)와 맥(貊) 그리고 예맥(濊貊)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조금도 헷갈릴 필요가 없다. 예(濊,穢)의 원래 위치는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였고, 맥(貊)의 원래 위치는 지금의 발해 북쪽 영성(寧城), 능원(凌源)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였다. 그리하여 이 예(濊)와 맥(貊) 두 나라는 환웅국 시절 환웅천왕의 왕비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두 세력이었다. 환웅설화에 호랑이와 곰이 사람이 되어보려고 하다가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곰은 사람으로 변했다는 웅녀이야기는 바로 호랑이를 신으로 섬기는 예(濊)족 처녀와 곰을 신으로..

카테고리 없음 2018.08.03

윤여동설 - 삼국시대 예(濊, 동예)와 맥(貊)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삼국시대 예(濊, 동예)와 맥(貊)의 위치 - 최초공개 창해군(滄海郡, 蒼海郡) 고지(옛 땅)를 새로 찾고보니 예(濊, 동예)와 맥(貊)의 위치를 확실하게 비정할 수 있게 되었다. ☆ 후한서 고구려전을 보면, " 구려는 일명 맥(貊)이라 한다. 별종으로서 소수(小水: 소요수)에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에 소수맥(小水貊)이라 한다. 좋은 활이 생산되는데 소위 맥궁(貊弓)이라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의 맥의 위치에서 소요수 부근으로 이주해간 맥족을 말하는 듯하다. 구려는 원래 소요수 부근에 살던 소수맥의 나라였다가 북부여, 졸본부여에 통합되었고, 부여(夫餘)는 북부여, 졸본부여 그리고 동부여로 나누어졌다. 졸본부여(卒本夫餘)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나왔고, 동부여(東夫餘)는 북부여에서 북쪽..

카테고리 없음 2017.10.27

윤여동설 - 원래의 창해군 예(蒼海郡, 滄海郡 ,濊)와 이동 후 동예(東濊)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창해군 예(蒼海郡, 滄海郡, 濊)와 이동 후 동예(東濊)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후한서 예(濊) 전을 보면, “예(濊)는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옥저, 남쪽으로는 진한과 접했고, 동쪽은 대해에 닿았으며, 서쪽은 낙랑까지이다. 예, 옥저, 고구려는 본래 모두 조선(고조선) 땅이었다. 원삭 원년(B.C.128) 예군(濊君) 남려(南閭) 등이 우거(위만조선 3대왕)를 배반하고 28만구를 이끌고 요동(요동군)으로 내속하였으므로 (전한) 무제는 그 땅을 창해군(蒼海郡)으로 만들었다가 수년 후에 폐했다. ☆ 이때 예(濊)가 전해지지 않은 어떤 이유로 위만조선과 갈등을 빚어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 전한(前漢)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갔다는 말이고, 그 후에도 위만조선이 임둔국, 진번국 등 영향권 안에 있던 나라..

카테고리 없음 2017.10.21

윤여동설 - 하슬라(何瑟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하슬라(何瑟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하슬라(명주)에 관한 기록은 신라 17대 나물이사금 42년인 서기 397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지금 그 하슬라가 한반도 강원도 강릉을 말한다고 알고 있고, 신라 역시 한반도 경상도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신라는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가 아니라, 사실은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을 중심으로 천년왕조를 유지했던 나라였고, 한반도 경주, 김해 부근에는 대륙에서 왕망의 신(新) 나라가 멸망하자 흉노족인 투후 김일제의 후예들이 한반도로 도망쳐 와서 다시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리하여 경주와 김해 부근의 왕릉들에서 흉노문화유물들이 출토되는 것이다. 경주의 신라왕릉이라 하는..

카테고리 없음 2017.07.23

윤여동설 - 예(濊)와 맥(貊)의 진짜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예(濊)와 맥(貊)의 진짜 위치 - 최초주장 후한서 부여국 전을 보면, “부여국(필자주 : 동부여)은 현토의 북쪽 1천여리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 서쪽은 선비와 접했고, 북쪽에는 약수(弱水)가 있다. 땅이 2천리인데 본래는 예(濊)의 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부여전을 보면, “그 나라의 옥새에 ”예왕지인(濊王之印)“이란 글자가 있고, 나라 가운데에 예성이라 부르는 옛 성이 있으니 아마 이곳이 본래는 예맥(필자주 : 예의 오기로 보인다)의 땅이었으나 부여(동부여)가 그곳을 차지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 ‘망명해 온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록 속의 부여국은 시기적으로 동부여(東夫餘)를 말하는 것으로서, 예가 그 땅을 동부여에게..

카테고리 없음 2016.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