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관세음응험기 6

윤여동설 –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기록 속 백제무광왕(百濟武廣王)은 무왕(武王)을 말하는게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기록 속 백제무광왕(百濟武廣王)은 무왕(武王)을 말하는게 아니다 - 최초주장 觀世音應驗記(관세음응험기)를 보면, “百濟 武廣王 遷都 枳慕密地 新營精舍 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정사(절)를 새로 지었다. 以 貞觀 十三年 歲次 己亥 冬十一月 그런데 정관 13년(A.D.639) 기해년 겨울 11월에 天大雷雨 遂災帝釋精舍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제석정사에 불이 났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은 기록 속의 백제무광왕(百濟武廣王)이 백제 30대 무왕(武王)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백제 무왕 때 지모밀지(필자주 : 지금의 한반도 전북 익산 금마)로 도읍을 옮기려 했었는데, 무슨 사정이 생겨 그곳으로 도읍을 완전히 옮기지는 못했고, 부도읍 정도로 활용했었을 것..

카테고리 없음 2021.06.13

윤여동설 - 백제 무광왕, 모도왕, 곤지왕자, 동성왕, 무령왕의 관계를 명쾌하게 밝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무광왕, 모도왕, 곤지왕자, 동성왕, 무령왕의 관계를 명쾌하게 밝힌다 - 최초주장 [반도백제 무광왕과 왕비의 능으로 추정되는 익산 쌍릉의 위치] [대륙백제] 13대 근초고왕 12대 계왕 ↓ ↓ [반도백제] 14대 근구수왕 시조 무광왕 ..............................I.................... ↓ ↓ ↓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실명) ↓ ↓ 17대 아신왕 ?(실명) ↓ ↓ 18대 전지왕 ?(실명) I............................................ ↓ ↓ ↓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모도왕 ...............I................... ↓ ↓ ↓ 21대 개로왕(근개루왕) 22대 문주왕 곤지 ...

카테고리 없음 2013.08.17

윤여동설 - 익산 미륵사탑출토 사리봉안기의 비밀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익산 미륵사탑출토 사리봉안기의 비밀 - 최초공개 "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새로이 절을 지었다. 그런데 정관 13년(A.D.639) 기해년 겨울 11월에 벼락이 떨어져 제석정사에 불이 났다" 라는 관세음응험기 기록 속의 무광왕(武廣王)에 대하여, 우리는 정관 13년인 서기 639년이 삼국사기 기록 속의 백제 무왕 재위기간이라 하여 백제 무광왕이 바로 백제 30대 무왕(武王)과 동일 인물일 것이라 생각한다. ☆ 지금 학자들은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절을 지은 시기와 절에 벼락이 떨어져 불탄 시기를 동일시기로 보고 있으나 절을 지은 시기와 불탄 시기를 왜 동일시기로 보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절을 지은 지 수백년 후에 절에 벼락이 떨어져 불탔다면 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절..

카테고리 없음 2009.01.21

윤여동설 - 백제 왕릉들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조성했을까?

윤여동설 - 백제 왕릉들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조성했을까?      [삼국시대 왕릉 중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주인공이 밝혀진 충남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 내부]   백제 역사는 밝혀진 것이 거의 없는 비밀의 역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닌데,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도 당나라로 끌려가 그곳에서 죽어 낙양 북망산에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의자왕 이외에는 그 왕릉들의 조성 위치에 대해 단 한 줄의 기록도 없다.    왕릉의 조성위치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기록을 남기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사절요 현종 8년(A.D.1017) 12월 조를 보면, "교서를 내려 고구려, 신라, 백제왕의 능묘는 모두 소재지의 주와 현으로 하여금 수리하게 하고, 땔감을 베는 것을 금하고 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리도록 하라"고 했다는 기록이 ..

카테고리 없음 2008.05.20

윤여동설 - 칠지도 명문의 올바른 해석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칠지도는 반도백제 무광왕(武廣王)이 왜왕이 된 그 아들에게 하사한 것이다 - 최초주장 지금 일본의 석상신궁(石上神宮)에는 칠지도(七支刀)라는 칼이 전하고 있는데, 그 칼의 전면에는, "泰(和)四年五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鍊鐵七支刀世辟百兵宜供供侯王☆☆☆☆作(태(화)4년5월16일병오정양조백련철칠지도세벽백병의공공후왕****작)" 이라 되어 있는데, 칠지도가 처음 만들어진 시기와 왕에게 받쳐진 때 그리고 제작자를 금상감으로 새겨 놓았고, 그 칼의 후면에는, "先世以來未有此刀 百濟王世子奇生聖音 故爲倭王 旨造 傳示後世(선세이래미유차도백제왕세자기생성음고위왜왕지조전시후세)"라는 명문이 금상감으로 새겨져 있는데, 칼에 글자를 새긴 이유와 받은 사람 그리고 하사한 이유가 적혀 있다. 그런데 일본 학자들은 일본서기 ..

카테고리 없음 2008.05.15

윤여동설 - 한반도 최초의 절은 백제 무광왕이 세운 제석정사일 가능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최초의 절은 백제 무광왕이 세운 제석정사일 가능성 - 최초주장 [불에 타 폐허가 되었다는 제석사지에 깨어진 탑의 심초석만 남아 있다] [반도백제 무광왕릉과 왕비릉으로 추정되는 익산 쌍릉] 삼국사기 기록 상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중에서 불교가 맨 처음 전래된 나라는 고구려로서 17대 소수림왕 2년인 372년으로 기록되고 있다. 기록을 보면, "2년(A.D.372) 여름 6월 진(前秦)나라왕 부견이 사신과 중 순도를 파견하여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으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 토산물로서 답례했다" "4년(A.D.374) 중 아도가 왔다" "5년(A.D.375) 봄 2월 처음으로 초문사를 창건하여 순도가 있게 하고, 이불란사를 창건하여 아도가 있게 하니 이것이 해동불법의 시초이다" 라고..

카테고리 없음 2007.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