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동명왕 7

윤여동설 - 백제 온조왕의 고향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온조왕의 고향을 찾았다 - 최초공개 비류와 온조의 진짜 부모는 누구? 백제의 건국시조 비류왕과 온조왕의 부모에 대한 옛 기록들은 매우 혼란스럽다. 고구려의 건국시조 주몽과 졸본부여 둘째공주 사이에서 출생했다는 설, 주몽과 월군여인 사이에서 출생했다는 설, 북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인 우태와 졸본사람인 연타발의 딸 소서노 사이에서 출생했다는 설, 구태와 공손도 딸의 후예설 등이 있는데, 필자가 연구해 보니 비류와 온조는 졸본부여 건국시조 동명왕의 작은 아들의 아들 즉 동명왕의 손자인 우태와 소서노 사이에서 출생했다. 즉 비류와 온조는 졸본부여 동명왕의 증손자였던 것이다. 졸본부여 건국시조 동명왕 | ......................................................

카테고리 없음 2012.07.08

윤여동설 - 소서노와 비류 온조의 남하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소서노와 비류 온조의 남하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보면, “주몽이 두 아들을 낳았는데 큰아들은 비류요, 둘째는 온조였다. 주몽이 북부여에서 낳은 아들(유리를 말함)이 와서 태자가 되매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염려하여 드디어 오간, 마려 등 열명의 신하들을 데리고 남쪽지방으로 떠나니 백성들 중에서 따르는 자가 많았다. 이리하여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서 살만한 곳을 살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 기이 제2 남부여 전백제 북부여 조에는, “고전기(古典記)에 이르기를, ”동명왕의 세째아들 온조는 전한 홍가 3년 계유년에 졸본부여에서 위례성으로 와서 도읍을 정하고 왕이라 일컬었다. 14년 병진년에 도읍을 한산(漢山:지금의 광..

카테고리 없음 2011.06.24

윤여동설 - 백제는 건국된지 768년 만에 멸망했다?

윤여동설 - 백제는 건국된 지 768년 만에 멸망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어 서기 668년에 당나라의 침공을 받고 도읍인 평양성을 함락당하고 보장왕이 항복함으로서 멸망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고구려가 건국된 지 705년 만에 멸망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당나라의 가언충이라는 사람은 서기 668년 시점에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이 되었다고 당 고종에게 보고한 내용이 사서에 기록되어 전하고 있어 이 기록의 사실여부에 대하여 고려시대 때부터 논란이 되어 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가언충은 고구려의 역사를 말할 때 북부여의 건국시조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하고 천제의 자리에 오른 기원전 232년부터를 고구려의 역사로 보고 서기668년에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이 되었다고 말..

카테고리 없음 2011.04.22

윤여동설 - 동명왕(東明王)은 주몽이 아니라, 백제 온조왕의 증조할아버지를 말한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동명왕(東明王)은 졸본부여의 건국시조로서 백제 온조왕의 증조할아버지이다 - 최초주장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부여(扶餘)에는 북부여와 졸본부여 그리고 동부여가 있었다.  부여(扶餘)는 원래 단군왕검의 막내아들 부여(扶餘)에게 봉해진 나라였다.   따라서 그 후예들은 국호를 부여(扶餘)라 했고, 성씨도 부여(扶餘)씨로 자처하게 된다.   그런데 2천여년 후 부여는 성씨가 다른 해씨 즉 해모수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해모수가 부여왕실과 무슨 관계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해(解)씨를 성씨로 삼은 것을 보면 부여의 직계혈손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필자주 : 외손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이때 부여에 역성혁명이 일어나 부여씨에서 해씨로 왕실의 성씨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는데, 부여라는 국호는 ..

카테고리 없음 2010.01.16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 존속설과 부흥운동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 존속설과 부흥운동 - 최초주장 우리 민족 역사에서 가장 광대한 강역을 일구었던 고구려의 멸망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 우리가 지금도 매우 넓은 강역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데 당나라 사람인 가언충이라는 사람은 고구려비기라는 예언서에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 만에 80대장에게 멸망당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다고 하고, 고구려가 멸망한 서기 668년이 건국된 지 꼭 900년이 되는 해였다고도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이상한 것은 어떻게 서기 668년이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이 되는 해라고 말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우리의 역사 상식으로는 ..

카테고리 없음 2007.10.09

윤여동설 - 삼국 건국시조 탄생설화의 새 해석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 건국시조 탄생설화의 새 해석 - 최초주장 [신라 시조 혁거세의 어머니 파소(사소라고도 한다)공주로 추정되는 천후성모상] 고구려 건국시조 추모왕의 혈통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를 보면 주몽을 "추모 또는 중해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호태왕 비문에도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추모왕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시호는 동명성왕이 아니라 추모왕이었음에 틀림없다. ☆ 삼국사기에는 주몽을 동명성왕이라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서 졸본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과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추모왕을 혼동한 결과이다. 이는 국강상광개토경 평안호태왕 비문에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동명성왕이라 기록하지 않고 추모왕이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

카테고리 없음 2007.10.07

윤여동설 - 잃어버린 나라 동부여는 대흥안령 서쪽 내몽골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잃어버린 나라 동부여는 대흥안령 서쪽 내몽골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부여는 셋이다. 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가 그것이다. ☆ 후일 백제의 성왕이 웅진으로부터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고 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타나고 있으나, 이후에도 백제는 남부여라 하지 않고 백제라는 국호를 계속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백제는 졸본부여의 후예가 세운 나라였다. 북부여의 건국시조는 천제 해모수이고, 졸본부여의 건국시조는 동명왕이며, 동부여의 건국시조는 해부루왕이다. 삼국유사 기이 제1 북부여 조에는, "고기에 말하기를, '전한 선제 신작 3년 임술(B.C.59) 4월 8일에 천제가 흘승골성(訖升骨城: 요나라 의주 경계에 있다)에 내려왔다. 오룡거를 타고 도읍을 정..

카테고리 없음 2007.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