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압록수 7

윤여동설 - 고구려 미천왕 을불설화 현장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미천왕 을불설화 현장찾기 - 최초공개      미천왕[주 : 고구려 15대왕]의 이름은 을불[혹은 우불이라고도 한다]이니 서천왕의 아들 고추가 돌고의 아들이다.   앞서 봉상왕이 아우인 돌고가 다른 마음을 가졌다고 의심하여 죽이니 돌고의 아들 을불이 자기에게도 해가 미칠까 두려워 도망했었다. 처음에는 수실촌 사람 음모의 집으로 가서 머슴살이를 하였는데, 음모는 을불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심하게 일을 시켰다. 그 집 옆에 있는 늪에서 개구리가 울었는데, 음모는 을불을 시켜 밤새도록 기와조각을 던져 개구리가 울지 못하게 하고, 낮이면 온 종일 땔나무를 하여 오라고 독촉하여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하므로 고생을 견디다 못해 1년 만에 그 집을 떠나서 동촌 사람 재모와 함께 소금장사를 ..

카테고리 없음 2016.03.21

윤여동설 - 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의 고향은 지금의 어디였을까?

윤여동설 - 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의 고향은 지금의 어디였을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시조 추모왕(주몽왕) 조를 보면,   “해부루가 죽고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앞서 해부루왕이) 어느 날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여자를 만나 물으니 ‘나는 하백의 딸로서 이름은 유화입니다. 동생들을 데리고 놀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자칭 천제 해모수(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나를 웅심산(熊心山) 아래 압록강(鴨綠江)가에 있는 집안으로 유인하여 동침하고 가버린 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의 부모는 내가 중매도 없이 남자와 관계한 것을 꾸짖고 우발수로 보내 귀양살이를 하게 하였습니다’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의 고향이 웅심산아래 압록강변이었음을 알게 하고, 하백(河伯..

카테고리 없음 2014.03.09

윤여동설 - 고구려의 살수(薩水)는 지금의 북경 동북쪽 조하(潮河)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의 살수(薩水)는 지금의 북경 동북쪽 조하(潮河)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20년(A.D.37) 조를 보면, “왕이 낙랑을 습격하여 이를 멸망시켰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27년(A.D.44) 조를 보면, “가을 9월 한나라 광무제가 군사를 보내 바다를 건너 낙랑을 정벌하여 그 땅을 취하여 군현으로 만드니 살수(薩水)이남 지역이 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고구려 대무신왕이 최리의 낙랑국을 쳐서 멸망시키고 그 낙랑국 땅을 차지하자 7년 뒤에 후한의 광무제가 군사를 보내 옛 낙랑국 땅의 일부인 살수이남 땅을 고구려로부터 다시 탈환하여 낙랑군을 부활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필자는 전한 무제가 기원전 108년에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땅..

카테고리 없음 2011.03.06

윤여동설 - 위만조선의 도읍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위만조선의 도읍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 최초공개 원봉 2년(B.C.109) 한나라는 섭하를 보내어 (조선의) 우거를 회유하였으나 끝까지 수긍하지 않고, 조서를 받들지 않았다. 섭하는 돌아올 때 국경인 패수(필자 주 : 이때 한나라와 위만조선의 국경이 패수일 수는 없고 살수이어야 맞다. 만약 패수일 경우 패수 동쪽에 바로 위만조선의 도읍 왕검성이 위치했었다는 말이 된다. 사실이 이러했다면 위만조선은 도읍을 동쪽으로 멀리 옮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인데, 위만조선은 멸망할 때까지 왕검성에 도읍하고 있었다)에 이르자 사람을 시켜 전송나온 조선의 비왕장을 죽이고 즉시 강을 건너 요새로 돌아와서 천자에게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고 보고하였다. 천자는 그것을 잘한 것으로 여겨 나..

카테고리 없음 2008.12.05

윤여동설 -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 국내성(國內城)의 진짜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 국내성(國內城)의 진짜 위치 - 최초주장           [영녕고성(고구려 국내성 추정지, 규모 가로세로 각900m, 좌표 동경116도09분35초 북위40도31분25초)]      고구려 2대왕인 유리왕은 그 아버지인 추모왕(주몽왕)으로부터 꽤나 넓어진 강역을 물려받았다.  고구려는 졸본부여의 국호를 고구려로 바꾼 나라였다. ☆ 주몽은 기원전 58년 봄에 동부여에서 남쪽으로 도망쳐 졸본으로 가서 딸만 셋이 있던 졸본부여 왕의 둘째 공주와 혼인을 했는데, 그 해 10월에 졸본부여의 왕이 죽으면서 그 왕위를 물려받게 되어 졸본부여의 왕위에 올랐다가 기원전 37년에 이르러 졸본부여의 국호를 고구려로 바꾸어 대제국 고구려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고구려의 건국 시조 추..

카테고리 없음 2008.07.25

윤여동설 - 고구려의 건국지 졸본(홀본)의 진짜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의 건국지 졸본(홀본)의 진짜 위치 - 최초주장 [이곳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이 진짜 고구려의 건국지 졸본(홀본)이다] 많은 사람들은 고구려의 건국지 졸본(홀본)이 지금의 한반도 압록강 북쪽 요녕성 환인(桓仁)이고, 그곳의 험준한 산꼭대기에 있는 오녀산산성을 졸본성일 것이라 믿고 있다. 학자들이 환인의 오녀산산성이 고구려의 첫 도읍 졸본성일 것이라고 추정하게 된 것은, 환인의 동남쪽이며 호태왕비(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가 서있는 길림성 집안(集安)을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 국내성(국내위나암)으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침 집안의 서북쪽 멀지 않은 환인의 험준한 오녀산 정상에 오래된 산성이 있자 그곳을 졸본성일 것이라고 추정했던 것인데, 사실 그곳 오녀산산성에서 고구려의 ..

카테고리 없음 2008.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