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옥저 6

윤여동설 - 고려의 철령(鐵嶺)은 지금의 내몽골 적봉 남쪽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의 철령(鐵嶺)은 지금의 내몽골 적봉 남쪽 - 최초주장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요수(遼水)는 옛 요동이었던 지금의 북경 서쪽을 흐르는 영정하를 말하는 것이며, 압록강(鴨綠江)은 지금의 북경 북쪽, 동쪽을 흐르는 백하, 밀운수고, 조백하를 말하는 것이고, 살수(薩水)는 북경 동북쪽 고북구를 지나 밀운수고로 흘러드는 조하를 말하는 것이며, 패수(浿水)는 난하 중, 상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려의 철령(鐵嶺)을 찾으면 우리 고대 역사에서 아직 확실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밝혀낼 수 있게 된다. 고대 한(漢) 무제의 침공을 받아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될 때 초기현토군이 설치되었던 옥저지역이 지금의 어디인지를 알 수 있게 되어..

카테고리 없음 2020.03.08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의 초기강역과 제후국의 위치 확인하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의 초기강역과 제후국의 위치 확인하기 - 최초공개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군기(檀君記)를 보면, 고조선의 초기강역 즉 고조선(왕검조선)이 건국된 지 약 10여년 후의 기록에 그 강역에 대하여, “북쪽으로는 대황(大荒)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알유를 거느리고, 남쪽으로는 해대(海岱)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창해(蒼海)에 닿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 기록에서 대황이란 커다란 사막지역 또는 큰 황무지라는 의미이고, 알유란 중국의 전설 속 괴물로서 중국의 북쪽 지역에 살았으며, 용의 머리와 호랑이의 발톱을 가지고 있고,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아마 흉노족을 말하는 듯 하고, 해대란 청주지역 즉 지금의 산동반도 부근을 말하는 것이며, 창해란 지금의 발해 요동만 부근, 또..

카테고리 없음 2013.09.28

윤여동설 - 옥저(沃沮)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옥저(沃沮)의 위치 - 최초공개              옥저에 대한 사서의 기록들은 매우 혼란스럽다.     그리하여 역사 연구자에 따라 옥저가 4개(옥저, 동옥저, 남옥저, 북옥저)의 나라로 나누어져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3개(동옥저, 남옥저, 북옥저)의 나라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사람에 따라 이렇듯 주장들이 다르게 되었는지 사서의 기록들을 확인해 보자.   후한서 동옥저 전을 보면,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다.  동쪽은 대해까지이고, 북쪽은 읍루와 부여, 남쪽은 예, 맥과 접했다. 그 땅이 동서는 좁고, 남북은 긴데 땅이 사방 천리의 절반쯤 된다. [옥저의 위치]                                                ..

카테고리 없음 2011.11.18

윤여동설 - 옥저(북옥저,남옥저,동옥저)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옥저(북옥저,남옥저,동옥저)의 위치 - 최초공개 옥저는 셋이 있었는데, 북옥저와 남옥저 그리고 동옥저였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이 옥저의 위치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후한서 동옥저전을 보면,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다. 동쪽은 대해까지이고 북쪽은 읍루와 부여, 남쪽은 예맥과 접했다” “(한)무제가 조선(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옥저땅으로 현토군을 만들었다. 뒤에 이맥의 침략을 받아 군을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고는 옥저를 현으로 고쳐 낙랑동부도위에 속하게 하였다” “또 북옥저가 있는데 일명 치구루라고도 하는데, 남옥저에서 8백여리 떨어져 있다. 그 풍속은 모두 남옥저와 같으며, 국경의 북쪽(필자주 ; 원본은 남쪽으로 되어 있으나 오기이므로 필자가 바로 잡았다)으로 읍루와 접..

카테고리 없음 2011.01.24

윤여동설 - 위나라 관구검의 환도성 침공로와 동천왕의 파천로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위나라 관구검의 환도성 침공로와 동천왕의 파천로 찾기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1대 동천왕 20년(A.D.246) 조를 보면,  “가을8월 위(魏)나라가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毌丘儉)을 보내 1만여 명을 거느리고 현토(玄菟)로 나와서 침입하였다.   왕이 보․기병 2만으로 비류수(沸流水) 상류에서 맞받아 쳐서 적군 3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다시 군사를 이끌고 양맥(梁貊) 골짜기에서 싸워 적군을 쳐부수어 또 3천여 명을 죽이고 붙잡았다. 왕이 모든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위나라의 많은 군사가 도리어 우리의 적은 군사만도 못하도다. 관구검은 위나라의 명장이지만 오늘에는 그의 목숨이 나의 손아귀 속에 있도다’하고 곧 철기군 5천을 거느리고 쫓아가서 쳤다.   관구검이 ..

카테고리 없음 2010.06.21

윤여동설 - 미인들의 나라 동옥저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미인들의 나라 동옥저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후한서 동옥저(後漢書 東沃沮)전 동옥저(東沃沮)는 고구려 개마대산(蓋馬大山)의 동쪽에 있다. 동쪽은 큰 바다까지이고, 북쪽은 읍루(挹婁)와 부여(夫餘), 남쪽은 예맥(濊貊)과 접했다. 그 땅이 동서는 좁고, 남북은 긴데, 땅이 사방 천리의 절반쯤 된다. 토질은 비옥하며,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어, 오곡이 잘 자라 밭에 씨를 뿌리면 농사가 잘된다. 읍락에는 우두머리(長帥)가 있다. 사람들의 성질은 정직하고, 강건하며, 용감하다. 창을 잘 다루어 보병전을 잘한다.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은 (고)구려와 유사하다. 장사지낼 때에는 큰 나무 곽을 만드는데, 길이가 10여장이나 되며, 한쪽 끝 부분을 열어놓아 문을 만든다. 새로 사람이 죽게되..

카테고리 없음 2009.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