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한산 6

윤여동설 - 백제 한산부아악(漢山負兒嶽)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한산부아악(漢山負兒嶽)의 위치 공개 - 최초공개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조를 보면, “.............이리하여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서 살만한 곳을 살피다가 비류가 바닷가에서 살고 싶어 하니 열 신하가 간하여 말하기를 ‘이 하남의 땅은 북대한수(북쪽으로 한수가 띠를 두르고)하고, 동거고악(동쪽은 높은 산이 있으며) 하며, 남망옥택(남쪽으로는 평야가 바라보이고)하고, 서조대해(서쪽은 대해로 막혀 있으니)하니 그 천험의 지리가 얻기 어려운 지세이오니,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으나 비류가 그를 듣지 않고 그 백성들을 나누어 미추홀(弥鄒忽)로 돌아가 살았다. 온조는 하남위례성(필자주 : 한수 남쪽의 위례성이라는 의미)에 도읍을 정하고..

카테고리 없음 2014.09.28

윤여동설 - 백제는 대방고지(帶方故地)에서 건국되지 않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는 대방고지(帶方故地)에서 건국되지 않았다 - 최초주장 백제의 건국지를 말할 때 일반적으로 “대방고지(帶方故地 : 대방옛땅)” 또는 “패대지간(浿帶之間 : 패수와 대수 사이지역)” 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백제는 대방옛땅에서 건국되지 않았고, 패수(浿水)와 대수(帶水) 사이에서 건국되지도 않았으며, 대수와 패수를 건넌 진번(眞番) 남쪽 한산(漢山) 부근에서 건국되었다. ☆ 한사군 중 진번군의 설치위치에 대하여 논란이 있는데, 북한산이 위치하고 있는 그 북쪽 부근이 진번군이었다. 수서 백제전을 보면, “동명의 후손에 구태라는 자가 있었는데,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비로소 대방고지(帶方故地)에 나라를 세웠다. 한 나라 요동태수 공손도의 딸을 아내로 삼았는데, 나라가 점점 번..

카테고리 없음 2014.09.19

윤여동설 - 소서노와 비류 온조의 남하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소서노와 비류 온조의 남하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보면, “주몽이 두 아들을 낳았는데 큰아들은 비류요, 둘째는 온조였다. 주몽이 북부여에서 낳은 아들(유리를 말함)이 와서 태자가 되매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염려하여 드디어 오간, 마려 등 열명의 신하들을 데리고 남쪽지방으로 떠나니 백성들 중에서 따르는 자가 많았다. 이리하여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서 살만한 곳을 살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 기이 제2 남부여 전백제 북부여 조에는, “고전기(古典記)에 이르기를, ”동명왕의 세째아들 온조는 전한 홍가 3년 계유년에 졸본부여에서 위례성으로 와서 도읍을 정하고 왕이라 일컬었다. 14년 병진년에 도읍을 한산(漢山:지금의 광..

카테고리 없음 2011.06.24

윤여동설 - 백제의 한성(漢城)은 한곳이 아니라 남한성과 북한성이 있었다

윤여동설 - 백제의 한성(漢城)은 한곳이 아니라 남한성과 북한성이 따로 있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한성(漢城)”을 “백제의 5백년 도읍지”라 인식하고 있는데, 그것이 과연 역사적 진실인 것일까? 백제의 온조왕은 기원전 18년에 위례성(하남위례성)에 도읍하고 국호를 십제(十濟)라 했다가 기원전 5년에 도읍을 한수의 남쪽(필자주 : 한수의 하류로 옮겼다고 했어야 정확한 표현이었다) 남한성으로 옮기게 된다. ☆ 백제 건국설화를 보면, 온조왕은 미추홀로 가서 나라를 세웠던 형인 비류왕이 죽자 그 신하들과 백성들을 십제에 귀속시키고 미추홀의 백성들이 즐겁게 따랐다 하여 국호를 백제로 바꾸었다고 전하는데, 아마 비류왕과 온조왕은 쌍둥이 형제였던 듯 하다. 이때 온조왕이 도읍을 옮기게 된 이유는 그가 전해인 기원전..

카테고리 없음 2010.10.25

윤여동설 - 근초고왕이 옮긴 백제의 도읍 한성(漢城)은 진황도 도산남쪽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근초고왕이 옮긴 백제의 도읍 한성(漢城)은 진황도 도산남쪽 - 최초공개 -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26년(A.D.371) 조를 보면, "고구려가 군사를 동원하여 침공해 왔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패하가에 군사를 숨겨놓고 기다리다가 그들이 도착하자 급히 치니 고구려 군사가 패배하였다. 겨울에 왕이 태자와 함께 정병 3만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침입하여 평양성을 공격하니 고구려왕 사유(고국원왕)가 힘을 다하여 항전하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으니,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왔다.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移都漢山)"라고 기록하고 있어 이때 백제가 도읍을 "한산"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것을 알게 한다. ☆ 그런데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백제가 신미년(A.D.371)에 도읍을 "한산(漢山)"이 아닌 "북한..

카테고리 없음 2008.09.26

윤여동설 - 백제의 건국지 위례성과 미추홀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건국지 위례성과 미추홀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기원전 42년 기묘년에 소서노는 어린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졸본의 압록강 나루에서 배에 몸을 실었다. 이때 소서노의 나이 25세였고, 비류는 4-5세정도, 온조는 2-3세 정도였다.[필자주 : 혹은 비류와 온조가 쌍둥이 형제였을 가능성도 있다] 원래 소서노는 졸본부여의 호족 연타발의 딸로서 졸본부여 왕족인 우태에게 시집가 두 아들을 낳았는데, 둘째 아들 온조를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인 우태가 갑자기 죽어 젊은 나이에 아들 둘 딸린 과부가 되어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졸본에서 주몽왕과 재혼한 후 자신이 우태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졸본부여의 태자로 봉하려 하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자 졸본을 떠나 압록강을 타고 내..

카테고리 없음 2008.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