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동예 7

윤여동설 - 예(濊)와 동예(東濊)의 위치가 서로 다른 것을 몰랐던 김부식과 삼국사기 찬자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예(濊)와 동예(東濊)의 위치가 서로 다른 것을 몰랐던 김부식과 삼국사기 찬자들 - 최초주장 삼국사기 권제35잡지 제4명주(溟州) 조를 보면, “명주는 본래 고구려의 하서량(하슬라라고도 한다)이었는데, 후에 신라에 속하였다. 가탐의 고금군국지에 이르기를, ‘지금 신라의 북쪽 경계에 있는 명주는 대개 예(濊)의 옛 땅’이라 하였으니 이전 사서에 ‘부여를 예의 땅’이라고 한 것은 잘못인 듯하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삼국사기 찬자들은 부여(동부여)가 예의 땅을 차지했다는 후한서 부여국전이나 삼국지 부여전의 기록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했는데, 이로 미루어보면 김부식과 삼국사기 찬자들은 예와 동예의 위치변동에 대하여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는 예가 원래부터 신라의 북쪽 명주 일원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카테고리 없음 2019.02.10

윤여동설 - 우리 역사에 예맥(濊貊)이라는 나라는 없었고 “예(濊)”와 “맥(貊)”이 각각 존재했었다

윤여동설 - 우리 역사에 예맥(濊貊)이라는 나라는 없었고 “예(濊)”와 “맥(貊)”이 각각 존재했었다 많은 사람들은 예(濊)와 맥(貊) 그리고 예맥(濊貊)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조금도 헷갈릴 필요가 없다. 예(濊,穢)의 원래 위치는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였고, 맥(貊)의 원래 위치는 지금의 발해 북쪽 영성(寧城), 능원(凌源)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였다. 그리하여 이 예(濊)와 맥(貊) 두 나라는 환웅국 시절 환웅천왕의 왕비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두 세력이었다. 환웅설화에 호랑이와 곰이 사람이 되어보려고 하다가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곰은 사람으로 변했다는 웅녀이야기는 바로 호랑이를 신으로 섬기는 예(濊)족 처녀와 곰을 신으로..

카테고리 없음 2018.08.03

윤여동설 - 원래의 창해군 예(蒼海郡, 滄海郡 ,濊)와 이동 후 동예(東濊)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창해군 예(蒼海郡, 滄海郡, 濊)와 이동 후 동예(東濊)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후한서 예(濊) 전을 보면, “예(濊)는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옥저, 남쪽으로는 진한과 접했고, 동쪽은 대해에 닿았으며, 서쪽은 낙랑까지이다. 예, 옥저, 고구려는 본래 모두 조선(고조선) 땅이었다. 원삭 원년(B.C.128) 예군(濊君) 남려(南閭) 등이 우거(위만조선 3대왕)를 배반하고 28만구를 이끌고 요동(요동군)으로 내속하였으므로 (전한) 무제는 그 땅을 창해군(蒼海郡)으로 만들었다가 수년 후에 폐했다. ☆ 이때 예(濊)가 전해지지 않은 어떤 이유로 위만조선과 갈등을 빚어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 전한(前漢)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갔다는 말이고, 그 후에도 위만조선이 임둔국, 진번국 등 영향권 안에 있던 나라..

카테고리 없음 2017.10.21

윤여동설 - 하슬라(何瑟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하슬라(何瑟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하슬라(명주)에 관한 기록은 신라 17대 나물이사금 42년인 서기 397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지금 그 하슬라가 한반도 강원도 강릉을 말한다고 알고 있고, 신라 역시 한반도 경상도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신라는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가 아니라, 사실은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을 중심으로 천년왕조를 유지했던 나라였고, 한반도 경주, 김해 부근에는 대륙에서 왕망의 신(新) 나라가 멸망하자 흉노족인 투후 김일제의 후예들이 한반도로 도망쳐 와서 다시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리하여 경주와 김해 부근의 왕릉들에서 흉노문화유물들이 출토되는 것이다. 경주의 신라왕릉이라 하는..

카테고리 없음 2017.07.23

윤여동설 - 예(濊)와 맥(貊)의 진짜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예(濊)와 맥(貊)의 진짜 위치 - 최초주장 후한서 부여국 전을 보면, “부여국(필자주 : 동부여)은 현토의 북쪽 1천여리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 서쪽은 선비와 접했고, 북쪽에는 약수(弱水)가 있다. 땅이 2천리인데 본래는 예(濊)의 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부여전을 보면, “그 나라의 옥새에 ”예왕지인(濊王之印)“이란 글자가 있고, 나라 가운데에 예성이라 부르는 옛 성이 있으니 아마 이곳이 본래는 예맥(필자주 : 예의 오기로 보인다)의 땅이었으나 부여(동부여)가 그곳을 차지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 ‘망명해 온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록 속의 부여국은 시기적으로 동부여(東夫餘)를 말하는 것으로서, 예가 그 땅을 동부여에게..

카테고리 없음 2016.05.28

윤여동설 - 무천(舞天)의 나라 예(濊)는 원래 어디에 있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무천(舞天)의 나라 예(濊)는 원래 어디에 있었을까? - 최초주장                                                               후한서 예(後漢書 濊 : 동예)전    "예(濊)는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옥저, 남쪽으로는 진한과 접했고, 동쪽은 대해에 닿았으며, 서쪽은 낙랑까지이다.  예, 옥저, 고구려는 본래 모두 조선(필자주 : 고조선을 말한다) 땅이었다.  옛날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기자는 예의와 농사짓는 법과 양잠하는 법을 가르쳤다. 또 8조의 가르침(八條之敎)을 제정하니 그 나라 사람들이 마침내 서로 도둑질하지 않게 되어 문을 닫지 않게 되었고, 부인들은 정조를 지키게 되었다.  음식을 먹을 때는 변두( 豆)를 사용한다. ..

카테고리 없음 2009.03.26

윤여동설 - 초기 현토군과 낙랑동부도위와의 관계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초기 현토군과 낙랑동부도위와의 관계 - 최초공개 후한서 동옥저 전을 보면, "(한) 무제가 조선을 멸망시키고 옥저 땅으로 현토군을 만들었다. 뒤에 이맥의 침략을 받아 군을 고구려(필자 주 : 구려의 오기이다)의 서북쪽으로 옮기고는 옥저를 현으로 고쳐 낙랑의 동부도위에 속하게 했다. (후한) 광무제 때에 이르러 도위의 관직을 없애고 후에 모두 그 거수를 봉하여 옥저후로 삼았다. 그 땅이 작아 큰 나라 사이에 끼어 핍박을 받다가 마침내 (고)구려의 신하가 되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옥저 땅에 초기 현토군의 치소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하고, 후한서 예전에는, "원봉3년(B.C.108)에 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임둔·현토·진번으로 나누었는데, 소제 시원 5년(B.C.82)에 이르러 임둔과 진번을..

카테고리 없음 2008.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