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모용황 6

윤여동설 - 고구려 환도성(丸都城)은 지금의 북경 북쪽 발해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환도성(丸都城)은 지금의 북경 북쪽 발해진(渤海鎭) - 최초주장 요사지리지는 환주(桓州)에 대하여, “환주(桓州)는 고구려 때 도성이었고, 옛날에는 현이 셋이었는데 환도(桓都), 신향(神鄕), 패수(浿水? 필자주 : 환도성 부근에는 패수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3현이었다.[필자주 : 浿水는 淇水의 오기인 듯] 고구려왕(산상왕을 말함)이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자 백성들이 신국(新國)이라고 불렀고, 고국원왕 때에 불탔다” 고 기록하고 있어 고구려 환도성(丸都城)에 대한 역사기록과 일치한다. 따라서 요사지리지의 기록대로라면 요나라 때의 환주(桓州)가 곧 고구려의 환도성(丸都城)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환도성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환도성은 고구려 산..

카테고리 없음 2011.09.24

윤여동설 - 비운의 고구려 고국원왕 - 드라마 근초고왕

윤여동설 - 비운의 고구려 고국원왕 - 드라마 근초고왕 고구려 16대 고국원왕의 이름은 쇠(釗 : 사유라고도 한다)이다. 정복군주 미천왕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태후 주씨이다. 서기 331년 봄2월에 미천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앞서 미천왕은 어릴 적 백부인 봉상왕이 돌고(미천왕의 아버지)를 역모로 몰아 죽이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당시 도읍인 평양성으로부터 옛 도읍인 졸본부근으로 도망쳐 신분을 숨기고 남의 집 머슴살이와 소금장사를 하고 있다가 국상 창조리가 봉상왕을 제거하고 추대하여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미천왕은 지리에도 밝았고 국제정세를 읽는 능력이 탁월했던 왕으로서 311년에 요동 서안평을 빼앗았고, 313년에는 낙랑군(후한 광무제가 살수 이남에 설치했던 낙랑군)을 빼앗았으며, 314..

카테고리 없음 2011.05.15

윤여동설 - 전연 모용황의 고구려 환도성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전연 모용황의 고구려 환도성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방산 유리하진 부근의 고죽성터와 용성(화룡성)터 추정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6대 고국원왕 12년(A.D.342) 조를 보면, “봄2월 환도성을 보수하고 또 국내성을 쌓았다. 가을 8월 왕이 환도성으로 옮겨왔다. 겨울 10월 연나라(전연) 임금 황(모용황)이 용성(龍城: 화룡)으로 도읍을 옮겼다. 입위장군 한(모용한)이 황(모용황)에게 청하기를 ‘고구려를 먼저 빼앗은 다음 우문(우문선비)을 쳐부숴야만 중원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고구려로 가는 길은 두 길이 있는데, 북쪽 길은 평탄하고 넓으며(?), 남쪽 길은 험하고 좁기 때문에(?) 군사들이 북쪽(?) 길로 가자고 하였다. 한이 말하기를 ‘적국이 우리의 대군이 반드시..

카테고리 없음 2010.07.12

윤여동설 -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북연의 도읍 용성(화룡)이 어디인지 아직까지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도 아닌 북연의 용성(화룡)을 찾으려 애쓰는 것은 그곳이 고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성(柳城)이고, 고구려 장수왕 때의 고구려 서쪽 경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용성의 위치를 찾으면 옛날 춘추전국시대에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하여 1천여리(2천여리라고도 한다)의 땅을 빼앗아 설치했다는 연5군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되어 고조선의 옛 땅이 어디까지였는지도 알 수 있어 우리의 고대역사 해석을 지금과는 전혀 새롭게 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고대역사에서 지금까지 확실하게 밝히지 못했던 잃어버린 고리 하나를 찾아 역사 복원에 한발 가까..

카테고리 없음 2010.06.14

윤여동설 - 환도성(丸都城)과 안시성(安市城)은 같은 곳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도성(丸都城)과 안시성(安市城)은 같은 곳이다 - 최초주장 [학자들이 환도산성으로 비정하고 있는 집안 부근의 산성자산성 환도산성 표지석과 성벽인데 사실 이곳은 환도성이 아니다] 삼국유사 왕력 고구려 16대 국원왕(고국원왕) 조를 보면, “임인년(A.D.342) 8월 안시성으로 도읍을 옮기니 이것이 환도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흥법 순도조려 조에도, “상고해보면 고구려의 도읍은 안시성이며, 이곳을 혹은 안정홀(安丁忽 , 필자주 : 安寸忽의 오기인가?)이라고도 하는데 요수 북쪽에 있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우리를 매우 헷갈리게 한다. 왜냐하면 환도성은 서기 198년 고구려 산상왕 2년 2월에 처음으로 쌓았다고 하고, 서기 209년 산상왕 13년 10월에 국내성(국내위나암)으로부터 옮..

카테고리 없음 2010.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