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반도백제 무광왕 8

윤여동설 – 한산(漢山) 부아악(負兒嶽)이 알려주는 백제(百濟)의 진짜 강역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산(漢山) 부아악(負兒嶽)이 알려주는 백제(百濟)의 진짜 강역 – 최초주장 [어머니가 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이 있어 부아악(負兒嶽)이라 불렸을 것인데, 이러한 형상이 한반도가 아닌 발해 북쪽 하북성 당산시 천안시 건창영진(建昌營鎭)에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보면,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 살만한 곳(도읍할 만한 곳)을 살폈는데, 비류는 바닷가(필자주 : 미추홀을 말한다)가 좋겠다고 하였으나 열신하들이 간하기를 “이 하남의 땅은 북대한수(北帶漢水)하고, 동거고악(東據高岳) 하며, 남망옥택(南望沃澤)이요, 서조대해(西阻大海) 하니, 이러한 천험의 지리는 얻기 어려운 지세이니 여기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하였으나 ..

카테고리 없음 2023.07.22

윤여동설 –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기록 속 백제무광왕(百濟武廣王)은 무왕(武王)을 말하는게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기록 속 백제무광왕(百濟武廣王)은 무왕(武王)을 말하는게 아니다 - 최초주장 觀世音應驗記(관세음응험기)를 보면, “百濟 武廣王 遷都 枳慕密地 新營精舍 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정사(절)를 새로 지었다. 以 貞觀 十三年 歲次 己亥 冬十一月 그런데 정관 13년(A.D.639) 기해년 겨울 11월에 天大雷雨 遂災帝釋精舍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제석정사에 불이 났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은 기록 속의 백제무광왕(百濟武廣王)이 백제 30대 무왕(武王)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백제 무왕 때 지모밀지(필자주 : 지금의 한반도 전북 익산 금마)로 도읍을 옮기려 했었는데, 무슨 사정이 생겨 그곳으로 도읍을 완전히 옮기지는 못했고, 부도읍 정도로 활용했었을 것..

카테고리 없음 2021.06.13

윤여동설 - 백제 왕들의 시호에 붙인 "근(近)"자의 비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왕들의 시호에 붙인 "근(近)"자의 비밀 - 최초주장 [본 역사천재들의 모임 블로그 “근초고왕을 알면 백제가 보인다(3)(2008.1.31등록)”에 게시되어 있던 글을 별도로 떼어내어 다시 올리는데, 이는 대륙백제와 반도백제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백제의 왕 중에 시호에 "근(近)"자를 붙인 왕은 세 명인데, 근초고왕, 근구수왕, 근개루왕(개로왕)이 바로 이들이다. 13대 근초고왕은 5대 초고왕의 시호에 근자를 붙인 것이고, 14대 근구수왕은 6대 구수왕의 시호에 근자를 붙였으며, 21대 근개루왕(개로왕)은 4대 개루왕의 시호에 근자를 붙여 시호로 정한 것인데, 우리는 지금까지 이들이 왜 선왕의 시호에 근자를 붙여 시호로 정하게 되었는지 그 확실한 이유를 ..

카테고리 없음 2020.08.07

윤여동설 - 백제 22첨로(檐魯)에 대한 새로운 가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22첨로(檐魯)에 대한 새로운 가설 - 최초주장 양서 백제전을 보면, "號所治城曰固麻 謂邑曰檐魯 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有二十二檐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之(치성을 고마라 부르고, 읍을 첨로라 하는데 이는 중국의 군현과 같은 말이다. 그 나라에는 22첨로가 있는데, 모두 (왕의) 자제와 종족에게 나누어주었다)"라고 기록하고 있고, 남사 백제전에는, "號所都城曰固麻 謂邑曰檐魯 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土有二十二檐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之(도성을 고마(固麻)라 부르고, 읍을 첨로(檐魯)라 하는데 이는 중국의 군현과 같은 말이다. 그 나라 땅에는 22첨로가 있는데 모두 (왕의) 자제와 종족들에게 나누어주었다)"라고 기록하고 있고, 양직공도 백제국사조에도, "所治城曰固麻 謂邑曰檐魯 於中國郡縣 有二十二檐魯(필자주 :..

카테고리 없음 2020.08.01

윤여동설 - 바로 잡아야 할 착각(錯覺)의 한반도 역사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바로 잡아야 할 착각(錯覺)의 한반도 역사 - 최초주장  [흉노족들이 남겨 놓은 경주 석굴암을 지금 우리는 신라 김대성이 만든 작품으로 이해한다]  [흉노족들이 세운 절인데, 지금 우리는 신라 김대성이 세운 불국사라 한다]  [흉노족 왕의 시신을 육탈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건축물인데, 이를 천문을 관측하던 신라의 첨성대라 한다]    [흉노인들이 유상곡수(流觴曲水)를 하며 놀던 곳을 우리는 지금 신라인들이 시를 읊으며 놀던 포석정이라 한다]   [흉노족왕릉에 세워진 능비를 지금 우리는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능비라 한다]        [흉노족왕들이 쓰던 왕관을 지금 우리는 신라의 왕들이 쓰던 왕관이라 한다]    사실 한반도에 환국(桓國)은 없었고, 환웅의 단국과 신시(神市)도 없었으며,..

카테고리 없음 2020.01.01

윤여동설 - 무광왕(武廣王)이 세운 반도백제와 남제왕 70세 때인 519년 기해년에 지은 익산 미륵사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무광왕(武廣王)이 세운 반도백제와 남제왕 70세 때인 519년 기해년에 지은 익산 미륵사지 - 최초주장    우리는 지금 관세음응험기에, "백제 무광왕(武廣王)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정사(절)를 새로 지었다(百濟 武廣王 遷都 枳慕密地 新營精舍)"라고 기록되어 있어 "백제 무광왕(百濟武廣王)"의 존재에 대하여는 알게 되었으나 그 무광왕의 신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전해진 기록이 없어 과연 그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연구해 보니 무광왕(武廣王)은 대륙백제 제12대 계왕의 아들로서 대륙에서 20여 년간 13대 근초고왕과 왕위다툼을 하다가 패하자 한반도로 도망쳐 백제(반도백제)를 다시 세우고 지모밀지에 도읍한 후 왕위에 오른 인물 즉 반도백제의 건국시조였다.  [대륙백제][장자파]  ..

카테고리 없음 2019.04.05

윤여동설 - 익산 미륵사의 창건연도는 639년이 아니라 519년 기해년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익산 미륵사의 창건연도는 639년이 아니라 519년 기해년이다 - 최초주장 익산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사리봉안기 삼가 생각해보면, 법왕(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셔서 감응하시고, 현신 하시는 것은 물 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습니다. 왕궁에서 태어나셨으나 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곡의 사리를 남겨 3천 세계를 이익 되게 하셨으므로, 정신을 맑게 하고 오색으로 빛나는 사리를 돌면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할 것입니다. 우리 백제왕후께서는 좌평 사탁적덕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동안 선을 베풀어 금생에 좋은 보은을 받아 만민을 기르는 동량이 되셨으므로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시고, 기해 년(己亥年)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모시게 되었습니다. 원하오니, 세세토록 공양하겠으니 겁겁..

카테고리 없음 2016.12.30

윤여동설 - 한반도 김제 벽골제는 신라가 쌓은 것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전북 김제 벽골제는 신라가 쌓은 것이 아니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16대 흘해이사금 21년(A.D.330) 조를 보면, "벽골지(碧骨池)를 처음 만들었는데 그 둑의 길이가 1,800보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원성왕 6년(A.D.790) 조를 보면, "봄 정월 벽골제(벽골지의 뚝)를 증축하는데, 전주 등 일곱 주의 사람을 징발하여 공사를 일으켰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는 지금 이 기록을 한반도 전북 김제 부량면에 있는 옛 저수지 뚝에 비정해 역사를 해석함으로써 그 뚝을 김제벽골제라 부르며, 이 저수지 뚝이 신라 흘해이사금 때 쌓은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기 위해서는 신라 초기인 서기 330년에 전북 김제 지역이 신라 땅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한반도..

카테고리 없음 2008.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