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속말말갈 8

윤여동설 - 의문의 기록 삼국사기 기록 속 백제 신라와 말갈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의문의 기록 삼국사기 기록 속 백제 신라와 말갈의 위치 - 최초주장    삼국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곤혹스러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신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말갈과의 수많은 접촉기록인데, 이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석할 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년(B.C.17) 조를 보면,   봄정월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말갈이 우리의 북부 국경에 연접되어 있으며 그곳 사람들이 용기가 있고, 거짓이 많으니 우리는 병기를 수리하고 식량을 비축하여 그들을 방비할 계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하고,   또 13년(B.C.6) 조를 보면,   여름5월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나라의 동쪽에는 (신라가 있고, 서쪽에는) 낙랑이 ..

카테고리 없음 2016.10.07

윤여동설 - 신라 최초의 소경 아시촌(阿尸村)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최초의 소경 아시촌(阿尸村) 찾기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22대 지증왕 15년(A.D.514) 조를 보면,   “봄 정월에 소경을 아시촌(阿尸村)에 설치하고, 가을 7월에 6부와 남쪽지방 사람들로 그곳을 채웠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신라 최초로 아시촌소경(阿尸村小京)을 강역의 북쪽에 설치했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런데 이 아시촌소경에 관한 기록은 이후에 전혀 언급되지 않고, 후대에 5소경(중원소경, 북원소경, 금관소경, 서원소경, 남원소경)을 설치할 때에도 일체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아시촌소경이 구체적으로 신라 땅 어디에 설치되었고, 언제까지 존속되었으며, 무슨 이유로 그 이후의 기록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 신증동국여지승..

카테고리 없음 2015.12.12

윤여동설 - 한반도 북쪽 백두산이 고대부터 중국 땅이었다고? 웃기는 소리

윤여동설 - 한반도 북쪽 백두산이 고대부터 중국 땅이었다고? 웃기는 소리      중국 동북삼성 역사학자들이 한반도 북쪽의 백두산이 옛날부터 중국 땅이었다고 주장하는 책을 펴냈다고 한다.   그러나 산해경에서 말하는 불함산 등 우리 고대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원래의 태백산은 지금 칠로도산 산맥의 최고봉인 대광정자산(2,067m)을 말하는 것이고,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인데,   한반도 북쪽의 백두산이 어떻게 고대부터 중국 땅일 수 있었다는 말일까?   지금의 북경 서쪽 영정하(필자주 : 이 강이 바로 고대의 요수였다)로부터 동북쪽으로 요하까지는 원래 우리의 고조선, 삼한, 삼국, 고려 땅이었고,   한반도는 고려를 이어 건국된 조선이 대륙의 개경으로부터 한반도의 한양(현 서울..

카테고리 없음 2015.04.05

윤여동설 - 환국, 배달국, 고조선(왕검조선)의 중심지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국, 배달국, 고조선(왕검조선)의 중심지 찾기 - 최초주장 위 지도를 보면 우리 민족의 중심강역이 지금의 대흥안령 줄기 남쪽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환국의 중심은 우하량 선사유적지가 있는 능원 부근으로 보이고, 환웅 배달국의 도읍 신시(神市)의 위치는 태백산 신단수 아래라고 하였는데, 내봉골 적봉 부근으로 비정되며, 고조선(왕검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의 위치에 대해서는, 규원사화 단군기에, “여러 고을 땅의 길흉을 판단하여 도읍을 태백산 서남쪽(필자주 : 동남쪽의 오기가 아닐까?) 우수하 언덕에 정하고 왕검성이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태백산 부근이 고조선(왕검조선)의 중심강역이었음을 알 수 있고, 또 “우수하 가에 산지 10년 만에 도읍을 백산의 남쪽과 패수의 북쪽으..

카테고리 없음 2013.09.06

윤여동설 - 고대의 태백산(太白山)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태백산(太白山)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후한서 읍루전을 보면, “읍루는 옛 숙신국이다. 부여의 동북쪽 1천여리에 있는데, 동쪽은 대해에 닿고 남쪽은 북옥저와 접했으며, 북쪽은 그 끝을 알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당서 흑수말갈전을 보면, “흑수말갈은 숙신(肅愼) 땅에 사는데, 또한 읍루(挹婁)라고도 하고, 원위 때에는 물길이라고도 했다. 직선으로 경사(장안)에서 동북쪽으로 6천리에 있는데, 동쪽은 바다에 접하고, 서쪽은 돌궐에 닿았으며, 남쪽은 고구려, 북쪽은 실위와 접했다. 수십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추장들이 각각 자치적으로 다스린다. 잘 알려진 것이 속말부로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태백산(太白山)에 이른다. 도태산(徒太山)이라고도 하는데, 고구려에 접했다. 속말수에..

카테고리 없음 2013.02.16

윤여동설 - 발해의 건국지 동모산(東牟山)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발해의 건국지 동모산(東牟山) 위치 찾기 - 최초공개   [발해 중경현덕부 추정지 : 내몽골 파림우기]   구당서 발해말갈 전에,  “조영은 마침내 그 무리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가서 읍루(필자주 : 원문은 계루로 되어 있으나 오기이므로 필자가 고쳤다)의 옛 땅을 차지하고 동모산(東牟山)에 웅거하여 성을 쌓고 살았다.  조영이 굳세고 용맹스러우며, 용병을 잘하자 말갈의 무리 및 고구려의 남은 무리가 점점 모여들었다.  성력(A.D.698~699) 중에 스스로 진국왕(振國王)에 올라 돌궐에 사신을 보내 통교하였다.  그 땅은 영주(營州) 동쪽 2천리에 있으며, 남쪽은 신라와 접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신당서 발해 전에는,    “발해(渤海)는 본래 속말말갈(粟末靺鞨)로서 고(구)려에 부속..

카테고리 없음 2009.05.08

윤여동설 - 발해국의 중심강역은 연해주가 아니라 대흥안령산맥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발해국의 중심강역은 연해주가 아니라 대흥안령산맥이었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 말갈 발해(발해국) 조를 보면, 통전(通典)에 이르기를, "발해(발해국)는 본래 속말말갈이다. 그 추장 조영(祚榮)에 이르러서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스스로 진단(震旦)이라고 했다. 선천 연간(현종의 임자년:712)에 비로소 말갈(靺鞨)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오로지 발해(渤海)라고 일컬었다. 개원 7년(己未:719)에 조영이 죽자, 그 시호를 고왕(高王)이라 했다. 세자가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명황은 그를 책봉하여 왕위를 잇게 했다. 사사로이 연호를 고치고 드디어 해동(海東)의 큰 나라가 되었다. 그 땅에는 5경(五京), 15부(十五府), 62주(六十二州)가 있었다. 후당 천성 초년에 거란(契丹)이 이곳을 쳐서 깨뜨렸..

카테고리 없음 2009.05.03

윤여동설 - 말갈(숙신,읍루,물길 여진)은 서랍목륜하(시라무렌강) 부근에 위치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말갈은 서랍목륜하(시라무렌강) 부근에 위치했다 - 최초주장 말갈은 숙신이요, 읍루요, 물길이요, 여진이다. 그런데 이 말갈의 위치에 대하여 우리는 지금 한반도 동북쪽 연해주지역이라 하고 있으나, 이것이 과연 역사적 사실인 것일까? 후한서 읍루전에는, "읍루는 옛 숙신국이다. 부여의 동북쪽 1천여 리에 있는데, 동쪽은 큰 바다에 닿고, 남쪽은 북옥저와 접했으며, 북쪽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라고 그 위치가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읍루전에도, "읍루는 부여의 동북쪽 1천여 리에 있다. (동쪽은) 큰 바다에 닿았으며, 남쪽은 북옥저와 접했는데, 북쪽은 그 끝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라고 후한서와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이러한 기록을 보고는, 부여는 백두산 북쪽 길림성 지역으..

카테고리 없음 2008.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