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요동 7

윤여동설 - 고대 요동(遼東)을 중심으로 찾아보는 우리 삼국의 원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 요동(遼東)을 중심으로 찾아보는 우리 삼국의 원래 위치 - 최초주장     “요동(遼東)”은 “요수(遼水)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요동은 우리 고대 역사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요동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면 우리의 역사강역을 찾아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요동(遼東)”은 우리의 역사강역을 찾아내는 비밀의 열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우리는 지금 한반도 북쪽 요동반도 부근을 요동이라 하며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왔던 곳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곳은 명· 청시기에 지명을 옮겨 놓은 곳이지 고대의 요동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의 요하도 고대의 요수가 아니고, 요하하류는 고대의 요택이 아니다. 지금의 요동반도는 고대의 왜국이었다..

카테고리 없음 2014.07.20

윤여동설 - 북연의 풍홍이 고구려로 망명하여 머물렀던 평곽과 북풍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북연의 풍홍이 고구려로 망명하여 머물렀던 평곽과 북풍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수왕 15년(A.D.427) 조를 보면,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에 이르러 고구려 장수왕이 황성으로부터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겼음을 알 수 있고, 장수왕 23년(A.D.435) 조를 보면, “위(북위)나라 사람들이 연나라를 빈번히 공격하니 연(북연)나라에서는 위험이 날로 절박하였다. 연나라 임금 풍홍이 ‘만일 사태가 위급하게 되면 동쪽의 고구려에 잠시 의탁하고 있다가 후일을 도모해야겠다’ 생각하고는 비밀리에 상서 양이를 우리나라에 보내 망명을 요청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장수왕 24년(A.D.436) 조에는, “여름 4월에 위나라가 연나라의 백랑성(..

카테고리 없음 2012.10.19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 때 쌓은 요서10성의 축성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 때 쌓은 요서10성의 축성 위치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2년(A.D.49) 조를 보면,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우북평이라고도 한다),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하였더니 요동태수 채동이 은의와 믿음으로 대하므로 다시 화친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그로부터 6년 뒤인 태조대왕 3년(A.D.55) 조를 보면, “봄2월에 요서에 10개 성을 쌓아 한나라 병사(한나라의 침공)에 대비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모본왕 때 북평(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했을 때 요동군과 요서군의 일부지역을 후한으로부터 빼앗았음을 알 수 있고, 태조대왕 때 이르러 그곳을 수비하기 위하여 요서지역에 10개의 성을 쌓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물론 이때 태조대왕은..

카테고리 없음 2012.06.10

윤여동설 - 춘추전국시대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은 어디를 말하는가?

윤여동설 - 춘추전국시대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은 어디를 말하는가? 전국책 권제29 연1을 보면, 소진이 연나라의 문후에게 말한 기록이 있어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한다. 기록을 보면, "蘇秦將爲從 北說燕文候曰 燕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 南有呼 易水 地方二千餘里 帶甲數十萬 車七百乘 騎六千疋 粟支十年 南有碣石 門之饒 北有棗栗之利 民雖不由田作 棗栗之實 足食於民矣 此所謂天府也 (소진이 장래 합종을 하기 위해 북쪽으로 가서 연나라 문후에게 말하기를, 연나라는 동쪽으로 조선요동이 있고, 북쪽으로는 임호누번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운중구원이 있고, 남쪽으로는 호타역수가 있어 땅이 사방 2천여 리입니다. 갑옷 입은 병사가 10만이요, 전차는 7백대이며, 말은 6천 필이고, 10년 간 ..

카테고리 없음 2011.07.01

윤여동설 - 당 태종 고구려 요동 침공시의 주둔지 마수산(馬首山)을 찾았다

윤여동설 - 당 태종 고구려 요동 침공시의 주둔지 마수산(馬首山 : 말머리산)을 찾았다 [마수산으로 비정되는 곳으로서 말이 구유에 입를 넣고 먹이를 먹고 있는 것 같다. 하필 그곳에 도로가 나고 건물이 지어져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서기 645년 당 태종은 고구려 침공을 하기 위하여 정주(定州)를 출발하여 요택을 지나고, 요수를 건너 "마수산(馬首山)"에 진을 쳤다고 사서들은 전한다.     그리고는 고구려의 요동성(遼東城) 공격에 나서게 되는데, 요동성이 견고하여 함락 시킬 수가 없자 성 밖에 흙을 져 날라 메꾸어 결국 요동성을 함락 시키고는 그곳을 요주로 바꾸게 되는데, 요동성이 함락될 때 고구려군 1만여명이 죽고, 1만여명의 군사와 남녀백성 4만여명이 포로로 잡혔고, 군량 50만석..

카테고리 없음 2010.10.11

윤여동설 - 고구려 안시성(安市城)을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안시성(安市城)을 찾았다 - 최초주장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안도 용강현(龍岡縣) 건치연혁 조를 보면, “고황룡국(古黃龍國)으로서 고구려가 병합하였고, 고려에서는 황룡성(군악이라고도 했다)이라 하였다. 후에 지금 이름(용강)으로 고치고 현으로 만들었는데, 본조(조선)에서는 그대로 따랐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평안도 용강이 옛날에는 황룡국이었음을 알 수 있고, 성곽 조를 보면, “안시성(安市城)은 오석산(烏石山)에 있는데, 현의 치소와는 5리 떨어져 있으며, 험하고 견고하기가 비할 데가 없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1만2천5백80척이며 안에는 샘 열 개가 있는데 합쳐 흐르고 군창이 있다. 세상에서 이 성을 당 태종이 친히 치려하였으나 함락 시키지 못하였다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

카테고리 없음 2010.03.08

윤여동설 - 포상8국은 어디에 위치했었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포상8국은 어디에 위치했었을까? - 최초공개 "포상8국(浦上八國)"이라는 기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10대 나해이사금 14년(A.D.209)년 조에, "가을 7월에 포상8국이 공모하여 가라(加羅)를 침범하자 가라왕자가 구원해 주기를 요청해 왔다. 왕이 태자 우로와 이벌찬 이음으로 하여금 6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해 주도록 하였는데, 8국 장군들을 격살하고 포로 6천여 명을 잡아 돌아왔다"라고 하면서 나타나는데, 삼국사기 열전 물계자전에는, 신라 10대 나해이사금 때 "8포상국이 공모하여 아라국(阿羅國: 아라가야)을 치니 아라에서 사신을 보내 구원해 주기를 요청해 왔다. 이사금이 왕의 손자 나음을 시켜 부근의 군과 6부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해 주도록 하였는데, 곧 8국의 병사들이 패..

카테고리 없음 2009.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