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읍루 10

윤여동설 - 의문의 기록 삼국사기 기록 속 백제 신라와 말갈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의문의 기록 삼국사기 기록 속 백제 신라와 말갈의 위치 - 최초주장    삼국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곤혹스러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신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말갈과의 수많은 접촉기록인데, 이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석할 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년(B.C.17) 조를 보면,   봄정월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말갈이 우리의 북부 국경에 연접되어 있으며 그곳 사람들이 용기가 있고, 거짓이 많으니 우리는 병기를 수리하고 식량을 비축하여 그들을 방비할 계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하고,   또 13년(B.C.6) 조를 보면,   여름5월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나라의 동쪽에는 (신라가 있고, 서쪽에는) 낙랑이 ..

카테고리 없음 2016.10.07

윤여동설 - 부여 북쪽 약수(弱水)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부여 북쪽 약수(弱水) 찾기 - 최초주장 후한서 부여국전을 보면, “부여국은 현토의 북쪽 1천여리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 서쪽은 선비와 접하였고, 북쪽에는 약수(弱水)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부여전에는, “부여는 장성의 북쪽에 있는데, 현토에서 1천리 거리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 서쪽은 선비와 접했고, 북쪽에는 약수(弱水)가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진서 부여국전에는, “부여국은 현토의 북쪽 1천여리에 있다. 남쪽은 선비와 접했고, 북쪽에는 약수(弱水)가 있다”라고 공통적으로 부여의 북쪽에 약수(弱水)가 위치하고 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이는 역사적 사실일 것인데, 우리는 아직 그 기록 속 “약수(弱水)”를 찾지 못하고 있었고, 그리고 후한..

카테고리 없음 2015.06.06

윤여동설 - 말갈 동쪽의 바다(대해)는 동해가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말갈 동쪽의 바다(대해)는 동해가 아니다 - 최초주장 [대흥안령 동쪽의 바다(대해) 흔적 : 지금은 수없이 많은 내륙의 호수들만 남아있다] 우선 말갈(숙신, 읍루, 물길)의 위치에 관한 사서들의 기록을 보면, “읍루는 옛 숙신국이다. 부여의 동북쪽 1천여리에 있는데, 동쪽은 대해(大海)에 닿고, 남쪽은 북옥저와 접했으며, 북쪽은 그 끝을 알 수 없다[후한서 읍루전]” “읍루는 부여의 동북쪽 1천여리에 있다. (동쪽은) 대해에 닿았으며, 남쪽은 북옥저와 접하였는데, 북쪽은 그 끝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삼국지 읍루전]” “숙신씨는 일명 읍루라고도 하는데 불함산 북쪽에 있다. 부여에서 60일쯤 가야하는 거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대해에 닿았고 서쪽으로는 구만한국과 접해 있으며, 북쪽 끝은 약수에까..

카테고리 없음 2015.05.30

윤여동설 - 고대의 태백산(太白山)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태백산(太白山)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후한서 읍루전을 보면, “읍루는 옛 숙신국이다. 부여의 동북쪽 1천여리에 있는데, 동쪽은 대해에 닿고 남쪽은 북옥저와 접했으며, 북쪽은 그 끝을 알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당서 흑수말갈전을 보면, “흑수말갈은 숙신(肅愼) 땅에 사는데, 또한 읍루(挹婁)라고도 하고, 원위 때에는 물길이라고도 했다. 직선으로 경사(장안)에서 동북쪽으로 6천리에 있는데, 동쪽은 바다에 접하고, 서쪽은 돌궐에 닿았으며, 남쪽은 고구려, 북쪽은 실위와 접했다. 수십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추장들이 각각 자치적으로 다스린다. 잘 알려진 것이 속말부로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태백산(太白山)에 이른다. 도태산(徒太山)이라고도 하는데, 고구려에 접했다. 속말수에..

카테고리 없음 2013.02.16

윤여동설 - 지두우(地豆于)는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지두우(地豆于)의 위치 - 최초주장   지두우(地豆于)는 과연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역사연구자들이 기를 쓰고 이 지두우의 위치를 찾으려 하는 것은 장수왕 때의 고구려 강역을 밝히는데 이 지두우의 위치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위서(북위, 후위) 거란전을 보면, 고구려 장수왕은 서기 479년(북위태화3년)에 유유와 공모하여 이 지두우를 빼앗아 나누려 하였다고 했기 때문에 기록대로라면 당시 고구려는 이 지두우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두우는 과연 지금의 어디쯤에 위치했던 나라였을까?      위서 권100 열전제88을 보면,  “지두우국(地豆于國)은 실위 서쪽 1천여리에 있다. 소와 양이 많고 명마가 산출된다. 짐승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

카테고리 없음 2011.07.30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의 동부여 유화태후릉 참배루트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의 동부여 유화태후릉 참배루트를 밝힌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6대 태조대왕 69년(A.D.121) 조를 보면,  “겨울 10월 왕이 부여(동부여)에 가서 태후의 사당에 제사지냈다(冬十月 王幸扶餘 祀太后廟)” 라고 기록되어 있고,   “11월 왕이 부여로부터 돌아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태후란 고구려의 건국시조 주몽왕(추모왕)의 어머니인 유화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때에 이르러 고구려의 태조대왕이 직접 동부여까지 가서 유화태후의 능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앞서 주몽이 동부여에서 무슨 큰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잡히면 죽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졸본부여로 급히 도망치게 되는데, 이때 주몽은 어머니인 유화와 임신한 부인 예씨를 동부여에 그대로 남겨..

카테고리 없음 2011.03.01

윤여동설 - 옥저(북옥저,남옥저,동옥저)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옥저(북옥저,남옥저,동옥저)의 위치 - 최초공개 옥저는 셋이 있었는데, 북옥저와 남옥저 그리고 동옥저였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이 옥저의 위치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후한서 동옥저전을 보면,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다. 동쪽은 대해까지이고 북쪽은 읍루와 부여, 남쪽은 예맥과 접했다” “(한)무제가 조선(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옥저땅으로 현토군을 만들었다. 뒤에 이맥의 침략을 받아 군을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고는 옥저를 현으로 고쳐 낙랑동부도위에 속하게 하였다” “또 북옥저가 있는데 일명 치구루라고도 하는데, 남옥저에서 8백여리 떨어져 있다. 그 풍속은 모두 남옥저와 같으며, 국경의 북쪽(필자주 ; 원본은 남쪽으로 되어 있으나 오기이므로 필자가 바로 잡았다)으로 읍루와 접..

카테고리 없음 2011.01.24

윤여동설 - 발해국의 중심강역은 연해주가 아니라 대흥안령산맥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발해국의 중심강역은 연해주가 아니라 대흥안령산맥이었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 말갈 발해(발해국) 조를 보면, 통전(通典)에 이르기를, "발해(발해국)는 본래 속말말갈이다. 그 추장 조영(祚榮)에 이르러서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스스로 진단(震旦)이라고 했다. 선천 연간(현종의 임자년:712)에 비로소 말갈(靺鞨)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오로지 발해(渤海)라고 일컬었다. 개원 7년(己未:719)에 조영이 죽자, 그 시호를 고왕(高王)이라 했다. 세자가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명황은 그를 책봉하여 왕위를 잇게 했다. 사사로이 연호를 고치고 드디어 해동(海東)의 큰 나라가 되었다. 그 땅에는 5경(五京), 15부(十五府), 62주(六十二州)가 있었다. 후당 천성 초년에 거란(契丹)이 이곳을 쳐서 깨뜨렸..

카테고리 없음 2009.05.03

윤여동설 - 미인들의 나라 동옥저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미인들의 나라 동옥저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후한서 동옥저(後漢書 東沃沮)전 동옥저(東沃沮)는 고구려 개마대산(蓋馬大山)의 동쪽에 있다. 동쪽은 큰 바다까지이고, 북쪽은 읍루(挹婁)와 부여(夫餘), 남쪽은 예맥(濊貊)과 접했다. 그 땅이 동서는 좁고, 남북은 긴데, 땅이 사방 천리의 절반쯤 된다. 토질은 비옥하며,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어, 오곡이 잘 자라 밭에 씨를 뿌리면 농사가 잘된다. 읍락에는 우두머리(長帥)가 있다. 사람들의 성질은 정직하고, 강건하며, 용감하다. 창을 잘 다루어 보병전을 잘한다.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은 (고)구려와 유사하다. 장사지낼 때에는 큰 나무 곽을 만드는데, 길이가 10여장이나 되며, 한쪽 끝 부분을 열어놓아 문을 만든다. 새로 사람이 죽게되..

카테고리 없음 2009.03.20

윤여동설 - 숙신에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숙신에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었다 - 최초주장      [아이산 정상 마을 천지진(天池鎭)과 화산호들]   진서 숙신씨 전을 보면,  "숙신씨는 일명 읍루라고도 하는데, 불함산 북쪽에 있다.  부여에서 60일쯤 가야하는 거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대해에 닿고, 서쪽으로는 구만한국과 접했으며, 북쪽 끝은 약수에까지 이른다.   그 땅이 매우 넓어 사방 수천 리에 뻗쳐 있다.  심산궁곡에 살며, 그 길이 험준하여 수레나 말이 통행하지 못한다. 여름철에는 나무 위에서 살고 겨울철에는 땅굴에서 산다.........(중략).................  그 나라의 동북쪽에 있는 산에서 산출되는 돌은 쇠를 자를 수 있을 만큼 날카로운데, 그 돌을 채취하려면 반드시 먼저 신에게 기도해야 한다"라고 기록..

카테고리 없음 2007.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