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하북성 역현 7

윤여동설 - 전국시대 연나라의 태자 단(丹)과 형가(荊軻)가 살았던 곳은 지금의 어디일까?

윤여동설 - 전국시대 연나라의 태자 단(丹)과 형가(荊軻)가 살았던 곳은 지금의 어디일까? [전국책 권제29 연1을 보면, "소진이 장차 합종을 하기 위하여 북쪽으로 유세를 떠나 연 문후에게 말하기를 "연나라는 동쪽으로 조선, 요동이 있고, 북쪽으로 임호, 누번이 있으며, 서쪽으로 운중, 구원이 있고, 남쪽으로 호타, 역수가 있으며, 땅이 사방 2천리입니다.................남쪽으로 갈석, 안문의 풍요로움이 있고, 북쪽으로 대추, 밤의 이익이 있어 만약 무슨 일이 있어 농사를 짓지 못한다 하여도 대추와 밤을 먹는다면 백성들의 먹거리가 족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전국시대 연나라의 위치를 비정해 볼 수 있습니다.] 형가(荊軻)는 전국시대 연나라 태자 단(丹)과 공모한 후 진왕을..

카테고리 없음 2013.05.10

윤여동설 - 춘추전국시대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은 어디를 말하는가?

윤여동설 - 춘추전국시대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은 어디를 말하는가? 전국책 권제29 연1을 보면, 소진이 연나라의 문후에게 말한 기록이 있어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한다. 기록을 보면, "蘇秦將爲從 北說燕文候曰 燕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 南有呼 易水 地方二千餘里 帶甲數十萬 車七百乘 騎六千疋 粟支十年 南有碣石 門之饒 北有棗栗之利 民雖不由田作 棗栗之實 足食於民矣 此所謂天府也 (소진이 장래 합종을 하기 위해 북쪽으로 가서 연나라 문후에게 말하기를, 연나라는 동쪽으로 조선요동이 있고, 북쪽으로는 임호누번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운중구원이 있고, 남쪽으로는 호타역수가 있어 땅이 사방 2천여 리입니다. 갑옷 입은 병사가 10만이요, 전차는 7백대이며, 말은 6천 필이고, 10년 간 ..

카테고리 없음 2011.07.01

윤여동설 -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다투었던 탁록벌판의 원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다투었던 탁록벌판의 원래 위치를 찾았다 - 최초주장 [1번은 현재 중국 사람들이 지명을 이동시켜 만들어 놓은 탁록이고, 2번은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다툰 진짜 탁록벌판이다] 원동중의 삼성기 신시역대기는 14세 자오지(慈烏支)환웅을 치우천왕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너무도 많은 세월이 흘러 그의 생몰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당시 치우천왕이 황제헌원과 탁록의 벌판에서 국운을 건 전쟁을 했었다는 이야기는 설화가 되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전해지고는 있다. 그러나 그 탁록벌판이라는 곳이 정확하게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대명일통지 순천부 조를 보면, 탁주(涿州)가 순천부 서남 140리에 있는데, 춘추전국 때는 연나라의 탁읍이었고, 진(秦)나라 때는 ..

카테고리 없음 2011.01.03

윤여동설 - 고려 사신들의 연경(燕京) 사행로를 밝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 사신들의 연경(燕京) 사행로를 밝힌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권제37 잡지 제6 지리4 고구려 백제 조를 보면, 『통전에 이르기를 “주몽이 한나라 건소2년에 북부여[필자주 : 동부여의 오기이다]로부터 동남방[필자주 : 서남쪽의 오기이다]으로 가서 보술수를 건너 흘승골성에 이르러 자리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고로써 성씨를 삼았다” 고 하였으며, ☆ 삼국사기 찬자들이 인용했다고 밝히고 있는 통전의 기록이란 통전 권186 변방2 동이하 고구려 조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곳에는 “朱蒙棄夫餘 東南走渡普述水 至紇升骨城 遂居焉 號曰句麗 以高爲氏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의미는 ”주몽이 부여를 버리고 동남쪽으로 달아나 보술수를 건너 흘승골성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고로서 성씨를 삼았다” ..

카테고리 없음 2010.06.28

윤여동설 - 지금의 북경은 옛 연경, 옛 북평이 아니라 고대의 요동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지금의 북경은 옛 연경, 옛 북평이 아니라 고대의 요동이었다 - 최초주장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북경과 연경을 동일한 장소로 이해하지만 사실 그것은 틀린 것이다.   북평은 옛날 중국 세력들이 서안이나 낙양 등에 도읍하고 있을 때 그 동북쪽인 하북성 평원 지역을 일컫던 이름이었는데, 춘추전국시대부터 선비족인 연나라가 차지하고 도읍을 하게 되어 연경(燕京)이라고 불리웠던 곳이다.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등 북방세력들이 흥기하여 남하한 후 연경을 차지하고  도읍을 건설했는데, 요나라는 남경석진부라 했고, 금나라는 중도대흥부라 했으며, 원나라는 대도라 했고, 후일 명나라의 영락제가 북경을 건설하고 “북경순천부”라 명명하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연경”이라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렇게 ..

카테고리 없음 2009.09.22

윤여동설 - 원나라의 대도(大都)는 지금의 북경이 아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원나라의 대도(大都)는 지금의 북경(北京)이 아니었다 - 최초주장 [위 : 지금 중국에서는 하북성 장가구시 장북에 있는 위 옛 성터를 원나라의 중도성터(원 중도유지)라 한다]  [위 : 중국에서 원 중도성터(원 중도유지]라고 하는 곳의 발굴된 현장모습인데, 사실 이곳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대의 기록에 나타나는 옛 황룡국의 도읍성터이다][좌표 동경114도37분16초 북위41도17분34초]    일반적으로 우리는 원나라의 대도(大都)가 지금의 중국 북경(베이징)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작 중국에서는 원나라의 중도(中都)가 북경이 아닌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700리쯤 떨어져 있는 하북성 장가구시 장북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며, 지금 “원 중도유지(元 中都遺址, 가로세로 각 550m..

카테고리 없음 2009.09.14

윤여동설 - 백이, 숙제의 나라 고죽국은 하북성 역현(易縣)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이 숙제의 나라 고죽국은 하북성 역현 부근 - 최초주장      전설 속 백이, 숙제의 나라 고죽국은 과연 어디에 위치했던 나라였을까?  특히 우리는 고죽국이 기자조선의 위치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위치를 찾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고죽국의 위치를 확실하게 밝혀 줄 유물이 출토된 적이 없다.   그리하여 고죽국의 위치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옛날 은나라 말기 고죽국(孤竹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에는 큰 왕자 백이, 둘째 왕자 숙제 그리고 또 하나의 셋째 왕자가 있었다.  그런데 왕이 죽으면서 둘째 왕자인 숙제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노라 하고는 죽게 되었는데, 둘째인 숙제는 "형이 있는데 내가 어찌 왕위에 오를 수가 있는가?" 하면서 왕위를..

카테고리 없음 2007.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