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한사군 26

윤여동설 - 위만조선의 도읍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위만조선의 도읍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 최초공개 원봉 2년(B.C.109) 한나라는 섭하를 보내어 (조선의) 우거를 회유하였으나 끝까지 수긍하지 않고, 조서를 받들지 않았다. 섭하는 돌아올 때 국경인 패수(필자 주 : 이때 한나라와 위만조선의 국경이 패수일 수는 없고 살수이어야 맞다. 만약 패수일 경우 패수 동쪽에 바로 위만조선의 도읍 왕검성이 위치했었다는 말이 된다. 사실이 이러했다면 위만조선은 도읍을 동쪽으로 멀리 옮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인데, 위만조선은 멸망할 때까지 왕검성에 도읍하고 있었다)에 이르자 사람을 시켜 전송나온 조선의 비왕장을 죽이고 즉시 강을 건너 요새로 돌아와서 천자에게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고 보고하였다. 천자는 그것을 잘한 것으로 여겨 나..

카테고리 없음 2008.12.05

윤여동설 -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루지 못한 사랑

윤여동설 - 고구려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왕자와 낙랑왕 최리의 딸 낙랑공주의 이루지 못한 사랑 [호동왕자와 낙랑공주가 밤을 지새웠을 낙랑국왕성 전경도] 우리는 지금 고구려 대무신왕의 맏아들인 호동왕자와 낙랑왕 최리의 딸인 낙랑공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를 매우 안타깝게 ..

카테고리 없음 2008.09.05

윤여동설 - 대무신왕 - 무력을 귀신처럼 휘두른 전쟁의 신

대무신왕 - 무력을 귀신처럼 휘두른 전쟁의 신 고구려 3대 대무신왕의 아버지는 유리왕이요, 어머니는 다물국왕 송양의 작은 딸로서 유리왕 23년(A.D.4)에 태어났다. 유리왕은 처음에 송양의 큰딸을 왕비로 삼았는데, 첫 아들인 도절을 낳고는 그 후유증으로 바로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 뒤 화희와 치..

카테고리 없음 2008.09.03

윤여동설 - 동부여는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동부여는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위 : 내몽골 정람기 동북쪽에 위치한 대형고성터. 지금 중국에서 원 상도유지라고 하고 있으나 사실 이곳은 옛 예성(濊城)이었을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위 : 내몽골 정람기에 위치한 고성터로서 지금 사랑성(四郞城)이라 부르고 있다]    부여는 아주 오래된 나라의 이름이다.  옛날 고조선의 건국시조 단군 왕검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장자는 부루, 둘째는 부소, 셋째는 부우, 막내는 부여(夫餘, 扶餘)였는데, 단군왕검이 왕검성의 서쪽지역을 부여에게 영지로 내려주게 되어 나라 이름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부여는 고조선이 멸망하자 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북부여는 고구려 왕실에 혈통..

카테고리 없음 2008.06.29

윤여동설 -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위만조선과 한사군은 지금의 어디에 위치했었을까? - 최초공개   [위 : 산의 굴곡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축성된 승덕시 피서산장 성벽]  『조선왕 만(위만)은 옛 연나라 사람이다.  연(燕)나라가 강성할 때 진번조선을 공략하여 귀속시키고 관리를 두고 요새를 쌓았었다. 진(秦)나라가 연나라를 멸망 시켰을 때 조선은 요동(遼東)의 외곽에 속하게 되었다.  한(漢)나라가 흥기하자 그곳이 멀고 수비하기가 어렵다하여 요동의 옛 요새를 다시 수리하고 패수(浿水)까지를 경계로 정하여 연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연나라왕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위만)도 1천여 명의 무리와 함께 상투(추결)를 틀고, 만이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요새를 넘어 달아나 패수를 건너 망명하여 진나라의 빈땅인 상하..

카테고리 없음 2008.06.17

윤여동설 - 한사군(漢四郡)은 한반도에 설치되지 않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사군(漢四郡)은 한반도에 설치되지 않았다 - 최초주장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발해의 산해관 노룡두이다. 앞에 관광객을 싣고 노룡두와 해신묘 앞바다를 한바퀴 돌며 구경 시켜주는 모터보트가 한가롭게 놓여있다.] 지금 우리 모두는 위만조선의 도읍이었던 왕검성(왕험성이라고도 한다)이 북한의 평양을 말하는 것으로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다. 그리하여 한 무제가 기원전 108년에 순체와 양복이란 두 장군을 보내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네 조각으로 나누어 설치한 한사군이 지금의 북한 지역을 나누어 설치되었다고 역사를 이해한다. 즉 육군인 순체는 지금의 요하 쯤에서 출발하여 압록강, 청천강을 건너고, 대동강을 건너 왕검성으로 향했고, 수군인 양복은 산동반도를 출발해 동쪽으로 서해(황해)를 건너 대동강..

카테고리 없음 2007.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