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양직공도 백제국사 8

윤여동설 – 충남 공주(公州)의 옛 이름 고마나루 중 “고마”는 곰이 아니라, 도성(都城), 치성(治城)이라는 의미인 “고마(固麻)”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충남 공주(公州)의 옛 이름 고마나루 중 “고마”는 곰이 아니라, 도성(都城), 치성(治城)이라는 의미인 “고마(固麻)”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 - 최초주장 [양직공도 백제국사] 양직공도 백제국사조를 보면, "所治城曰固麻 謂邑曰檐魯 於中國郡縣 有二十二檐魯分子弟宗族爲之旁小國有叛 波卓 多羅 前羅 斯羅 止迷 麻連 上巳 文下 枕羅 等 附之(치성을 고마라 하고, 읍을 첨로라 하는데, 중국의 군현과 같은 것이다. 22첨로가 있는데, 주변 소국의 반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왕의) 자제와 종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파탁·다라·전라·사라·지미·마연·상사·문하·침라 등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양서 백제전을 보면, "號所治城曰固麻 謂邑曰檐魯 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有二十二檐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之(치성을 고마라 부르고,..

카테고리 없음 2023.09.17

윤여동자료실 - 양직공도(梁職貢圖)속 왜국사신(倭國使)의 꼬락서니

윤여동자료실 - 양직공도(梁職貢圖)속 왜국사신(倭國使)의 꼬락서니 [양직공도 왜국사 : 맨발에 둘둘 말아 묶은 치마 ㅋㅋ 이게 바로 6세기 초에 양나라에 온 왜국 사신의 옷차림이었다. 사신의 옷차림이 저 정도였다면 당시 왜국의 문화 수준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백제국사 : 왜국사신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당시 어느 나라가 문명국이었는지 금방 비교가 가능하다] [활국사] [파사국사] [구자국사] [등지국사] [주고가국사]

카테고리 없음 2019.07.20

윤여동설 - 한국 역사학계는 왜 “첨로(檐魯)”를 담로라 하고, “현토군(玄菟郡)”을 현도군이라 하는 겨?

윤여동설 - 한국 역사학계는 왜 “첨로(檐魯)”를 담로라 하고, “현토군(玄菟郡)”을 현도군이라 하는 겨? [양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백제사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또 진(晉)나라 말기에 고구려가 요동을, 백제가 요서 진평현을 차지했었다는 사실, 백제에 22첨로가 있었다는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는 양직공도 백제국사] 우리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틀린 줄 알았으면 고치면 되는 것인데,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말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반적인 예를 들어보자. 우리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은 “백제에 22담로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원전인 양서(梁書) 권54 열전 제48 제이 백제전을 보면, “其國有二十二檐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之”라고 쓰여 있고, 양직..

카테고리 없음 2018.02.03

윤여동설 - 백제와 북위는 지금의 어디에서 싸웠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와 북위는 지금의 어디에서 싸웠을까? - 최초주장 남제서 백제국전을 보면, 백제 동성왕이 남제에 사신을 보내 전쟁에서 공을 세운 신하들의 관작을 요청한 표문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백제가 488년에 일어난 북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490년에 남제에 보낸 표문에는, 면중왕 저근을 도장군 도한왕으로, 건위장군 팔중후 여고를 영삭장군 아착왕으로, 건위장군 여력을 용양장군 매로왕으로, 광무장군 여고를 건위장군 불사후로, 행건위장군 광양태수 겸장사 고달을 용양장군 대방태수로, 행건위장군 조선태수 겸사마 양무를 건위장군 광릉태수로, 행선위장군 겸참군 회매를 광무장군 청하태수로 임명해달라고 하자 그를 승인하고, 동성왕에게도 그 할아버지 모도왕이 받았던 작위와 같은 사지절도독 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 ..

카테고리 없음 2012.02.11

윤여동설 - 새로 밝히는 “백제요서군(百濟遼西郡)과 백제진평군(百濟晉平郡)”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새로 밝히는 “백제요서군(百濟遼西郡)과 백제진평군(百濟晉平郡)”의 위치 - 최초주장 송서 동이전 백제국전을 보면, “백제국은 본래 고려(고구려)와 함께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있다. 후에 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통치한 곳을 진평군(晉平郡) 진평현(晉平縣)이라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 송서는 서기 420-479년까지 존속했던 유송 60년 간의 역사서로서 심약이 남제 무제의 명을 받아 488년에 완성하였다. 백제가 요서군과 진평군을 경략하였다는 내용을 최초로 기록하였다. 양서 동이전 백제전을 보면, “그 나라는 본래 구려(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다. 진(晉 265-419)나라 때에 구려(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 역시 요서군(遼西郡)..

카테고리 없음 2012.02.04

윤여동설 - 백제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된 나라이다.  그런데 백제(百濟)와 낙랑(樂浪)은 백제가 건국된 시점부터 국경을 직접 접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재위 4년(B.C.15) 조를 보면, "가을 8월 낙랑에 사신을 보내 우호관계를 맺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재위 8년(B.C.11)조에는, 온조왕이 낙랑과의 접경지역에 마수성을 쌓고 병산에 목책을 세우자 낙랑태수가 사람을 보내 낙랑을 침공하려 하는 것이냐고 항의하면서 의심하지 않게 하려면 성과 목책을 헐어버릴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런데 온조왕이 그 요구를 거부하자 그 일로 인하여 백제와 낙랑사이에 화친이 깨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화친이 깨어진 재위 11년(B...

카테고리 없음 2009.02.13

윤여동설 - 근초고왕을 알면 백제(대륙백제)가 보인다(3)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근초고왕을 알면 백제(대륙백제)가 보인다 (3) - 최초주장 [2편에서 계속] 백제의 근초고왕은 실제로 요서 진평현 땅을 차지했었다   송서 백제국전을 보면, "百濟國 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 其後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晉平郡晉平縣(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후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했고, 백제는 요서를 차지했다. 백제가 다스리던 곳을 소위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백제가 요서 진평군 진평현 땅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고,   양직공도 백제국사를 보면,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麗略有遼東樂浪 [百濟]亦 [略]有遼西晉平縣 自晉已來常修蕃貢(백제는 옛날에 왔던 마한의 속국이었다. 진나라 말기에 [고]구려가 요동, 낙랑을 ..

카테고리 없음 2008.01.31

윤여동설 - 백제의 22첨로는 어디를 말하는가?

윤여동설 - 백제의 22첨로(檐魯)는 어디를 말하는가?    우리가 "담로"라고 읽고 있는 글자는 나무목변(木)에 "이를 첨(詹)" 자로서 집의 처마라는 의미의 "처마첨(檐)"자이지 담자가 아니다. 따라서 "첨로"라고 고쳐 읽는 것이 옳다.   처음에 어느 학자가 글자형태가 비슷한 처마첨(檐)자와 멜담(擔)자를 혼동하여 첨로를 담로라고 잘못 읽었고, 그후 어느 역사학자도 옥편을 찾아 확인해 보지 않은 채  앵무새 마냥  계속해 담로라고 되뇌이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지금 당장 옥편을 찾아 확인해 본다면 필자의 주장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양서 백제 전을 보면,  "號所治城曰固麻 謂邑曰檐魯 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有二十二檐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之(치성을 고마라 부르고, 읍을 첨로라 하는데 이는 중국의 군현과 ..

카테고리 없음 2007.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