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피서산장 8

윤여동설 - 고구려 평양성은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평양성은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 - 최초공개 고구려의 도읍 평양성이 과연 지금의 어디인지를 밝히기 위하여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주장이 있어왔다. 지금의 북한 평양이 고구려의 평양성이라는 조선시대부터의 주장으로부터 압록강 북쪽 요양 또는 요하서쪽 조양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며, 하북성 승덕시 부근이 고구려의 평양성이라는 필자의 주장 등이 있는데, 이처럼 주장들이 많다는 것은 아직 고구려의 도읍 평양성을 정확히 찾지 못했다는 말과 같다. 만약 고구려의 평양성을 정확히 찾을 수만 있다면 우리 고대역사의 거의 전부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그곳이 바로 고조선의 왕검성이었기 때문에 고조선의 중심지를 알 수 있게 되고, 위만조선, 한사군의 위치를 찾을 수 있게 되며, 삼한, 삼국..

카테고리 없음 2009.05.25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정통성은 남한이 이었다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정통성은 남한이 이었다 우리의 옛 역사는 환인시대, 환웅시대를 지나며 홍산문화(요하문명)를 꽃피웠고, 고조선에 이르러 청동기문화를, 다시 한과 위만조선, 부여시대에 이르러 철기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부여는 다시 고구려가 되고, 고구려는 한사군 중 임둔군, 낙랑군, 구현토군(낙랑동부도위)과 요동군, 대방군을 흡수함으로써 대제국이 되었다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당하고, 발해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되고, 발해는 다시 요·금·원·청·중국으로 이어지게 된다. 위만조선은 다시 한 무제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고 한사군이 되었다가 고구려에 복속되고, 한은 다시 삼한(마한, 진한, 변한)으로 나누어지게 되고, 마한에서 백제가, 진한에서 신라가, 변한에서 가야가 건국되었다가 통일신라가 되고, 통일신라가 ..

카테고리 없음 2009.05.14

윤여동설 - 고구려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 고구려와 낙랑의 접촉 기록은 3대 대무신왕 15년(A.D.32) 4월 조에, 낙랑왕 최리가 언급되고,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면서 시작되는데, 사실은 서기 30년에 이미 낙랑동부도위 땅을 고구려가 빼앗았던 듯하다. 그리고 대무신왕 20년(A.D.37) 조에, "왕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는 기록이 나타나고 다시 27년(A.D.44) 조에, "가을 9월 한나라(후한) 광무제가 군사를 보내 바다를 건너와 낙랑을 치고 그 지역을 빼앗아 군현을 만드니 살수 이남이 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라는 기록이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기록의 의미를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낙랑..

카테고리 없음 2009.02.18

윤여동설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윤여동설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고구려 대무신왕에게는 호동이라는 아주 잘 생긴 왕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전해지고 있어 우리는 그들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지금까지 매우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의 사랑은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앞서 전한 왕실의 외척이었던 왕망은 서기 9년 1월 10일에 이르러 쇠약해진 전한(前漢)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나라인 신(新)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에 오르는데, 이 혼란기를 틈타 낙랑군태수(조선사람이 그 땅을 되찾아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였던 최리는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했던 한사군의 한 군이었던 전한낙랑군 땅과 낙랑동부도위 땅을 ..

카테고리 없음 2009.01.29

윤여동설 - 최리의 낙랑국은 중국 하북성 승덕시 일원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최리의 낙랑국은 중국 하북성 승덕시 일원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낙랑국(樂浪國)  전한(前漢) 때 처음으로 낙랑군(樂浪郡)을 두었다.    응소(應邵)는 이것이 "고조선국(古朝鮮國)"이라 했다.  신당서(新唐書)의 주에는, "평양성(平壤城)은 옛 한(漢)나라의 낙랑군(樂浪郡)"이라고 했다.  국사(國史 : 삼국사기)에는,  "혁거세 30년에 낙랑 사람들이 신라에 투항해 왔다. 또 제3대 노례왕(弩禮王 : 유리왕) 4년에 고구려의 제3대 무휼왕(無恤王 : 대무신왕)이 낙랑을 멸망시키니 그 나라 사람들은 대방(帶方: 북대방)과 함께 신라에 투항해 왔다.    또 무휼왕(無恤王) 27년에 광호제(光虎帝 : 후한 광무제)가 사자를 보내어 낙랑을 치고 그 땅을 빼앗아 군현을..

카테고리 없음 2009.01.23

윤여동설 - "왕검성(王儉城)" 그곳은 과연 지금의 어디인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왕검성(王儉城)" 그곳은 과연 지금의 어디인가? - 최초주장                                  우리 역사 5천년의 중심지 왕검성의 위치   왕검성(王險城)이란 고조선의 두번째 도읍의 이름이다.  첫도읍은 우수하지원의 아사달, 세번째 도읍은 백악산의 아사달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 고조선의 도읍들의 위치를 잃어버렸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든 고조선의 도읍들과 특히 이 왕검성을 꼭 찾아내야만 한다.   우리가 이 왕검성의 위치를 꼭 찾아야 하는 것은 이곳이 바로 우리 한민족 5천년 역사의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고, 고구려의 평양성, 고려의 서경으로 이어져 우리의 고대 강역을 밝힐 수 있는 중심점이기 때문이다.  고조선은 크게 왕검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카테고리 없음 2008.06.15

윤여동설 - 고구려의 황성(黃城)과 장안성(長安城)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의 황성(黃城)과 장안성(長安城)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공개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부근의 지형도인데, 이 부근이 고조선의 왕검성, 고구려의 평양성, 황성, 장안성 그리고 고려의 서경으로 비정되는 곳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중심 강역은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쪽 북경 동쪽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이었고, 난하가 옛 패수이다.   백제는 대륙인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하북성 난하 부근에서 13대 근초고왕과 12대 계왕의 아들이었던 무광왕이 왕위다툼을 벌이다가, 패한 무광왕이 서기 365년경 한반도로 건너와 지모밀지에 도읍하고 다시 백제(반도백제)를 건국함으로써 한반도에 백제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고,   대륙백제는 근초고왕의 후손들이 왕위를 이어..

카테고리 없음 2008.02.03

윤여동설 - 우리의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은 무엇을 가지고 논쟁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우리의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은 왜 우리 고대사에 대해 끝없는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최초주장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승덕시 봉추산 지금 우리 역사의 상고사와 고대사에 대한 정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야사학은 우리 고대사의 중심이 대륙이라 하고, 강단사학은 한반도라 한다. 그리하여 강단사학에서 우리 고대사에 대한 연구발표를 하면 재야사학은 그를 인정하지 않고 거침없이 반도식민사관이라 매도하고, 재야사학에서 우리 고대사에 대해 기존 역사 인식과 다른 새로운 주장을 하게 되면 강단사학은 노인네들이 역사소설을 쓰고 있다고 치부해 버린다. 이들은 왜 같은 우리 역사를 연구하면서도 역사의 중심점을 보는 시각이 대륙과 한반도로 확연히 다르게 ..

카테고리 없음 2007.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