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추모왕 10

윤여동설 -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직계혈통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직계혈통도 - 최초주장 시조 추모왕(성은 해씨 이름은 주몽, 고구려 건국시조) ↓ ↓ 아들 2대 유리왕(성은 해씨 이름은 유류) 딸 추모왕의 공주 ↓[구려 고여달[高閭達)과 혼인] 고여율(高如栗) 외손자 ↓ 고막래(高莫來) 외증손자 ↓ 손자 3대 대무신왕 고추가 고재사(高再思) 외고손자 4대 민중왕 증손자 5대 모본왕 (유리왕은 막내아들 여진이 비류수에 빠져 죽은 후 이복여동생의 증손자이고, 죽은 막내아들 여진 또래인 고재사를 양자로 삼았던 듯하다. 그리하여 삼국사기 태조대왕 조에 재사가 태조대왕 궁의 아버지이고, 유리왕의 아들이라 기록될 수 있었을 것이다. 재사의 원래 성씨는 고씨, 왕위에 오르지 않았는데, 그의 장자인 태조대왕 궁이 고구려 6대 왕위에 오름으로써 이때 ..

카테고리 없음 2011.08.02

윤여동설 - 백제는 건국된지 768년 만에 멸망했다?

윤여동설 - 백제는 건국된 지 768년 만에 멸망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어 서기 668년에 당나라의 침공을 받고 도읍인 평양성을 함락당하고 보장왕이 항복함으로서 멸망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고구려가 건국된 지 705년 만에 멸망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당나라의 가언충이라는 사람은 서기 668년 시점에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이 되었다고 당 고종에게 보고한 내용이 사서에 기록되어 전하고 있어 이 기록의 사실여부에 대하여 고려시대 때부터 논란이 되어 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가언충은 고구려의 역사를 말할 때 북부여의 건국시조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하고 천제의 자리에 오른 기원전 232년부터를 고구려의 역사로 보고 서기668년에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이 되었다고 말..

카테고리 없음 2011.04.22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설과 700년설의 진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설과 700년설의 진실 - 최초주장 고구려가 건국된 지 705년 만에 멸망했다고 하는 것이 "고구려 700년설"이고, 900년 만에 멸망했다고 하는 것이 "고구려 900년설"이다. 고구려 700년설은 삼국사기에 고구려가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어 서기 668년에 멸망함으로써 705년간 존속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대두된 설이고, 고구려 900년설은 신당서 고구려전에 시어사 가언충이 당 고종에게 보고하는 말 중에 "고구려가 한(漢)나라 때부터 나라가 있어 지금 900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대두된 설이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조에는 또 고구려가 멸망한 후 문무왕이 신라로 망명해 온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삼는 책명문에 "공의 태조 중모왕은 덕을 북쪽 산에 쌓고 ..

카테고리 없음 2009.06.04

윤여동설 - 추모왕(주몽왕) 탄생설화와 고구려 건국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추모왕(주몽왕) 탄생설화와 고구려 건국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를 보면 주몽을 추모(鄒牟) 또는 중해(衆解)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가장 정확할 것으로 여겨지는 호태왕 비문에도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추모왕(鄒牟王)"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왕의 시호는 동명성왕이 아니라 추모왕이었음에 틀림없다. ☆ 삼국사기에는 주몽을 동명성왕이라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서 졸본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과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추모왕을 혼동한 결과이다. 이는 당시의 기록인 국강상광개토경 평안호태왕 비문에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동명성왕이라 기록하지 않고 추모왕이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또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

카테고리 없음 2009.04.12

윤나영 - 고구려 유리왕의 일생(1)

[고구려 건국지 졸본 풍광] [고구려 유리왕이 옮긴 두번째 도읍 국내와 위나암성] 윤나영 - 고구려 유리왕의 일생(1) - 삼국건국의 아침(윤나영 지음, 경향미디어)에서 발췌-     고구려 유리왕은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왕(추모왕)의 장자로서 태어난 곳은 동부여이고, 때는 기원전 58년이었으며,   유리가 태어나기 전인 이해 봄에 그 아버지 주몽은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갔다.  그리고 유리왕의 할머니인 유화가 죽은 해는 기원전 24년이었고,   유리(후일의 유리왕)가 어머니인 예씨와 친구인 옥지, 구추, 도조와 동부여를 탈출하여 졸본에 도착한 때는 기원전 19년 4월이었다.  따라서 유리는 약 40세의 나이에 졸본으로 아버지 주몽을 찾아와 고구려의 태자에 봉해졌다는 말이 되고, 예씨 역시 20세쯤의..

카테고리 없음 2008.12.08

윤여동설 - 주몽과 유리가 동부여에서 졸본으로 도망친 진짜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주몽과 유리가 동부여에서 졸본으로 도망친 진짜 이유 - 최초주장 고구려의 건국시조 주몽은 동부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유화부인이고, 아버지는 북부여 해모수 천제의 증손자인 해불리지(필자주 : 혹시 해불리지의 아들의 오기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이다. 해불리지가 압록강가를 지나다가 하백(어부)의 딸인 유화를 겁탈하여 임신시키게 되고, 유화의 아버지인 하백은 시집도 안간 처녀가 임신했다 하여 자기 집에서 내쫓아버린다. 그리하여 유화는 동부여로 가서 주몽을 낳게되고 그곳에서 살게된다. 세월은 흘러 주몽은 자라 동부여 왕궁의 말지기가 되고, 예씨라는 여인과 혼인을 하였는데, 예씨가 임신 중에 있을 때 갑자기 주몽이 동부여에서 졸본으로 도망치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동..

카테고리 없음 2008.08.31

윤여동설 - 해(解)씨와 고(高)씨 두 성씨로 이어진 고구려왕들의 원래 성씨와 이름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해(解)씨와 고(高)씨 두 성씨로 왕위가 이어진 고구려왕들의 원래 성씨와 이름 - 최초공개   시조 추모왕(鄒牟王) : 해추모(解鄒牟), 해주몽(解朱蒙), 해중해(解衆解)※ 호태왕 비문에 추모왕이라 기록되어 있어, 추모란 이름이 아니라 시호일 가능성도 있고, 삼국사기에는 주몽이 나라를 세워 국호를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따라서 고(高)씨로서 성씨를 삼았다고 했으나, 실제 초기 고구려 왕실의 성씨는 해모수의 성씨인 "해(解)"씨였고, 고(高)씨로 왕실의 성씨가 바뀐 것은 6대 태조대왕 때부터이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주몽의 시호를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 기록한 것은 졸본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과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추모왕을 혼동한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이름을 추몽(鄒蒙)이라고도 기록하고 있..

카테고리 없음 2008.08.25

윤여동설 - 태조대왕을 알면 고구려의 초기역사가 보인다(2)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태조대왕을 알면 고구려의 초기역사가 보인다(2) - 최초주장 고구려의 왕권교체 - 연노부(소노부)와 계루부 고구려 705년 역사에서 왕위 계승에 있어 성씨가 바뀐 시기로 추정해 볼 수 있는 때는 해씨인 모본왕에서 고씨인 태조대왕으로 왕위가 이어지는 시기 밖에는 없다. 따라서 모본왕 이전은 해씨였을 것이고, 태조대왕 이후는 고씨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삼국사기에도 5대 모본왕을 해우 또는 해애루로 기록하고 있고, 4대 민중왕을 해색주, 3대 대무신왕을 대해주류왕이라고도 한다라고 하여 그의 성명이 해주류였음을 확인해 볼 수 있고, 또 유리왕은 그 아버지 주몽의 원래 성씨가 해씨였으므로 그 아들인 유리왕 역시 해씨인 것이다. ☆ 주몽은 북부여의 건국시조 해모수의 고손자이므로 당연히 그의 원래 ..

카테고리 없음 2008.03.16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 존속설과 부흥운동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 존속설과 부흥운동 - 최초주장 우리 민족 역사에서 가장 광대한 강역을 일구었던 고구려의 멸망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 우리가 지금도 매우 넓은 강역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데 당나라 사람인 가언충이라는 사람은 고구려비기라는 예언서에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 만에 80대장에게 멸망당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다고 하고, 고구려가 멸망한 서기 668년이 건국된 지 꼭 900년이 되는 해였다고도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이상한 것은 어떻게 서기 668년이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이 되는 해라고 말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우리의 역사 상식으로는 ..

카테고리 없음 2007.10.09

윤여동설 - 삼국 건국시조 탄생설화의 새 해석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 건국시조 탄생설화의 새 해석 - 최초주장 [신라 시조 혁거세의 어머니 파소(사소라고도 한다)공주로 추정되는 천후성모상] 고구려 건국시조 추모왕의 혈통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를 보면 주몽을 "추모 또는 중해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호태왕 비문에도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추모왕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시호는 동명성왕이 아니라 추모왕이었음에 틀림없다. ☆ 삼국사기에는 주몽을 동명성왕이라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서 졸본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과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추모왕을 혼동한 결과이다. 이는 국강상광개토경 평안호태왕 비문에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동명성왕이라 기록하지 않고 추모왕이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

카테고리 없음 2007.10.07